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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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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투쟁 이후 18년, 어느새 정년

현장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 

남들이 비웃어도 

의무를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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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는 겸연쩍은 듯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인터뷰를…”이라며 어색해했다. 

18년 전, 격렬했던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에서 노동조합 지도부의 일원으로 싸웠던 그는 

올해로 정년을 맞게 됐다. 그리고 18년 전 부도와 정리해고를 통보했던 그 회사는 

작년부터 다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벌였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격렬한 투쟁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문제가 대체 무엇일지.

이제 현장에서 보낼 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는 방관자로 남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그에게 ‘올해 정년퇴직하는 사람이 뭐하러 저러고 있냐’고 비웃고, 

누군가는 ‘후배들이 할 일을 아직도 하고 있냐’고 비아냥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덤덤하게 여전히 ‘현장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 대우자동차노동조합 부위원장, 그리고 변혁당 인천시당 당원인 박재근 동지를 <변혁정치>가 만났다.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 이후 18년이 지났다. 당시 대우자동차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투쟁 지도부 역할을 했는데, 올해가 벌써 정년이다. 지난 18년간을 돌아보며 소회를 먼저 말씀해주신다면?


A 대우차 투쟁 때를 생각해보면, 2000년 10월 정도에 노조 집행부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 시작하자마자, 한 10일쯤 지났나. 당시 우리 임금이 400% 체불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체불임금 해결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그런데 교섭에 들어가자마자 회사가 ‘부도 위기’ 얘기하면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구조조정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는 곧바로 11월부터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전 조합원 교육을 실시하려고 했다. 회사와 얘기도 마쳤는데, 교육 들어가기 하루 전날 회사가 부도 통보를 냈다. 당연히 조합원 교육도 불허했고. 그래서 노조 임원들이 공장마다 다 들어가서 라인을 스톱시켰다. 회사가 불허하더라도 우리는 강행해야 한다고 싸우면서 라인을 잡은 거다. 결국 회사는 그걸 ‘업무방해’라고 하면서 징계위에 회부했다. 이후 쭉 정리해고 저지 투쟁을 벌이다가, 결국 나는 2001년 4월 징계해고됐다.


이후 5년 반 정도 해고 생활을 하다가, 2006년 11월 17일 원직복직이 됐다. 정리해고 투쟁 과정에서 우리가 산곡성당에 들어가 있었는데, 당시 부사장이 찾아와서 사실 이런 제안을 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을 라인에 투입할 수 있게 해주면 정리해고자 복직시키겠다’고. 우리는 그런 제안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임기가 끝난 뒤 다음 집행부가 회사의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정리해고자는 복직됐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됐다. 대단히 아쉽고 뼈아픈 일이다.


2006년 말 원직복직한 이후에는 부평공장 조립1부로 돌아갔다. 라인에서 쭉 일하다가 중간에 금속노조 감사위원으로 4년간 일하기도 했고, 작년 2월에 다시 현장으로 내려와서 1년 4개월 정도 일하고 있다. 올해 정년인데 좀 아쉬운 건, 현장 투쟁을 복원해야 했는데 생각만큼 충분치 못했다. 올 1월부터 조립1부 중심으로 20여 명 정도 같이 투합해서 만들어보려 하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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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당시 모습.



“현장을 조직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작년부터 한국지엠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다. 군산공장 폐쇄에 이어 올해도 연구개발부문 법인 분리와 물류센터 폐쇄 등 공격이 이어지는데. 한편으로는 각종 현장 집회에서 조합원들의 불만과 분노가 느껴지지만, 안타깝게도 파업이나 전면적인 투쟁이 벌어지지는 못했다. 2001년의 경험과 비교해서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


A 회사가 구조조정을 통보했는데 집행부가 현장을 조직할 생각을 하지 않고, 회사와 교섭을 통해 뭔가 정리해보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집행부가 투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해야 하는 게 현장조직인데, 현장조직마저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투쟁을 통해 조직의 우월성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런 현장조직들도 거의 없었다. 활동가들마저도 소수 외에는 잘 움직이지 않고, 이건 비정규직 투쟁에 결합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 한두 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001년에 우리 집행부가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진행했지만, 결국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도 있고 해서 2002년 말 노조 집행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10년 정도 사측에 협조적인 집행부가 들어섰다. 더 이상 투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현장은 계속 회사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노동강도가 올라가면서 현장은 숨도 못 쉴 정도가 됐고.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3년에 한 번 정도씩은 대찬 투쟁을 벌여야 다음 세대의 활동가들도 양성되는데 그런 게 없었다. 투쟁이 없으니 활동가들도 발굴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투쟁적인 집행부가 만들어지기 어렵고. 이 악순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적극적인 현장 활동과 투쟁이 점점 사라진 것 같다.



Q 어쩌면 지금 한국지엠에서 가장 끈질기게 싸우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가장 외면당하는 사람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것 같다. 정규직 일각에서는 '비정규직 해고를 구조조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애써 사태를 무시하려는 흐름도 있었는데.


A 비정규직 투쟁에 정규직들이 결합을 잘 안 하는 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고 심지어 활동가들마저도 일부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현장조직들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을 외면했고, 이 문제를 나서서 제기하는 건 극히 일부 활동가들 정도다.


내 기억으로는 2003년도 이후 정도부터 현장 곳곳에서 비정규직 양산을 집행부가 합의해줬다. 그때부터 현장에서 아예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운영하는 곳들도 생겼고. 현장 내에 부서별로 회사 쪽에서 대의원들을 구슬려 각자 제멋대로 고용 관련 협의를 해버렸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늘린 게 관행이 돼 버렸던 것이다.



이대로는 암울하다,

현장에 새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Q 대공장 노동운동이 갈수록 회의적인 눈초리를 받고 있다. 구조조정 통보를 받아도 별다른 저항에 나서지 못하는 것 역시 노동조합 운동의 기세나 민주노조의 기풍이 꺾이는 결과가 아닐까. 2001년 이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한국지엠에서 정규직 노동운동의 뼈아픈 실책은 무엇인지,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A 현장조직이든 집행부든 회사와의 밀착 관계가 제일 큰 원인이라고 본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는데 방관하는 현장조직이나, 교섭에서 적당히 주고받는 식으로 마무리하려는 집행부나 대단히 문제다. 전면적 투쟁을 준비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좀 덜 양보하기 위한’ 교섭에 매달려 문제를 풀려고 하니까.


현대차나 기아차와 비교해보면, 한국지엠 현장조직은 이상하리만치 집행부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는다. 집행부가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선전물을 통해서든 뭘 통해서든 바로잡으려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가령 현대차에서는 현장조직들이 집행부와 날카롭게 각을 세우면서 활동하는데.


그렇다면 왜 그럴까. 노조 집행부 선거 때가 되면 현장조직 간에 암암리에 관행적으로 선거연대가 이뤄진다. 그러면서 현장조직들이 서로 비판을 자제하고 각을 세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다 보면 집행부의 오류를 비판하고 교정하는 현장의 자정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투쟁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런 건 잘 하지 않고 조직 유지하면서 선전물에 장밋빛 내용만 담긴다.


대공장 노동운동은 현재 상태로 간다면 암울하다. 뭔가 획기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사실 그게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공장 노동운동을 이대로 가만히 방치할 것인가, 그래서도 안 된다. 현장조직이든 현장 활동가가 됐든, 투쟁을 만들어나갈 사람들을 발굴하고 양성할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공장에서 새로운 활동가들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전망은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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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 내에서 비정규직 선전전에 함께하고 있는 박재근 동지.



Q 박재근 동지는 변혁당 당원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했던 활동가로서, 당원으로 가입하는 데에는 여러 고민도 있었을 텐데. 처음 변혁당에 함께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변혁당 당원으로 활동하게 된 이후,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나?


A 지금의 변혁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활동가들 몇몇과 가까워지게 됐다. 그러다가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가 생겼을 때 거기에 처음 참여하게 됐고, 그러면서 변혁당까지 오게 된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일반적인 활동가조직이 아니라 당이라는 큰 틀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2006년에 복직한 뒤로 현장에서 특별히 독자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나도 한동안 현장조직 내에서 활동했고, 현장조직 이외의 활동을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당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달라진 게 있다. 기존 현장조직 활동이 아닌 다른 방식의 현장 활동을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령 작년에 당원으로서 변혁당 정치캠프에 참여했는데, 4차 산업혁명과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관한 강좌가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이, 이런 주제로 교육과 토론을 하면서 나와 가까운 현장 활동가들이나 부서 내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모아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정치캠프 이후 인천시당과 함께 기획해서 교육도 열고, 현장 활동 어떻게 할 것인지 강연회도 진행해봤다. 그렇게 현장에서 20여 명이 모였고, 자연스럽게 ‘뭔가 새롭게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얘기도 나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조립1부 현장조직위원회”다. 예전에는 “소위원”이라고 부르던 건데, 물론 노동조합 규약에 나와 있는 공식 기구이고 원래 14~15명 되는 직장에 1인 이상 두게 돼 있었다. 그런데 2001년 파업 이후로는 거의 사문화돼서 한국지엠 내에서 그간 제대로 조직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우리가 20여 명이 모여 현장조직위원으로 등록하고 현장에 밀착해서 노동강도나 생산성 문제, 맨아워 문제 등 현안들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변혁당 창당 이후 인천시당의 활동을 비롯해 정치캠프처럼 당 전체가 움직이는 활동들을 계속 봐왔고, 당의 실천에 함께했다. 여태껏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변혁당 당원으로서 당연히 내 현장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계속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장조직위원회를 함께 만든 것은 그 고민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렇게 현장조직위원회를 통해 새롭게 현장 활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상당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정년이라고 활동 안 할 이유 있나


올해가 정년이지만, 앞서 말씀하셨듯 끝까지 현장 투쟁을 만들기 위해 현장조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주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활동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현장에서의 마지막 해를 어떤 활동과 투쟁으로 만들고 싶으신지?


A 나는 올해 현장조직위원회를 재건한 것이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현장에 대자보도 수차례 붙이고, 선전물도 냈다. 그러다 보니 사측과 맞서는 데 소극적인 대의원들도 이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고, 물류센터 폐쇄 반대 투쟁에도 함께 참여했다. 이렇게 분위기를 끌어올리면서, 사측이 현장을 결코 함부로 보지 못하도록 바꿔나가는 게 내 바람이다.


사실 올해 내가 이 활동을 하니까 주변에서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올해 정년퇴직하는 사람이 뭐하러 저러고 있나’, 혹은 ‘후배들이 할 일을 아직도 하고 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현장 활동에 소홀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이게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담은 된다. 내가 계속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곧 퇴직하면 이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활동가들을 계속 발굴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은 것 같긴 하다.



Q 아직 퇴직까지는 반년의 시간이 더 남긴 했지만, 정년을 앞둔 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일하는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현장이 지금 이 상태를 지속해선 안 된다. 뭔가 변해야 하고, 변하려면 그에 맞는 활동들이 필요한데 그런 활동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까지 비정규직 투쟁에 같이 결합했던 동지들 가운데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동지들이 반드시 좀 나타나서 현장을 바꿔내고 집행부도 바꿔내면 좋지 않을까. 현장을 바꾸고 바로 그 현장에서 활동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이나 프로그램, 이런 걸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 인터뷰 =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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