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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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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7.02 16:55

포스터 : 시각적 메가폰


송준호┃기관지위원회



각지고 굵은 선, 과장된 동작과 표정의 인물, 큼직한 구호와 빨간 별. 우리가 흔히 사회주의 국가의 선전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이런 편견과 무지를 깨뜨리는 책이 출간되었다. 메리 긴스버그 외 5명의 저명한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교수, 아티스트 등이 모여 만든 『공산주의 포스터』(오유경 옮김 / 412쪽 / 5만7000원 / 북레시피)가 그것이다. 314개에 달하는 컬러 포스터와 322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포함한 이 책은 2017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어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6월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이 책은 러시아/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1917~91), 몽골인민공화국(1924~92), 동유럽(1945~91), 중화인민공화국(194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1945~), 쿠바공화국(1959~)의 포스터를 이데올로기적 요소와 미학적 관점에서 비교·분석한다.



혁명의 꽃, 붉은 확성기


역사적인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한결같이 포스터의 선전적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포스터를 두고 “거리를 커다란 신문처럼” 수놓으면서, “프롤레타리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수단들”이라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적 이상의 일부”라고 말했고, 베트남의 쭈옹찐은 “예술은 프로파간다가 될 때만 진정한 예술”이라고 선언했다. 공산주의 미술 이론과 실천은 이러한 원칙과 태도 위에서 이해해야 하는 선전의 결과물이다.


혁명 직전 러시아, 북베트남, 중국, 몽골 등의 문맹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곧 혁명정권이 시각적 매체를 통해 인민을 이끌고, 교육하며,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주의적인 신인간,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 이를 위한 정책들을 민중이 낯설게 느낄수록 국가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들 앞에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높은 문맹률은 역설적으로 포스터의 호소력을 높이는 데에 일조했다. 이런 필요성에 의해 제작된 포스터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직접적이었고, 상징들은 즉시 인식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의 슬로건은 반복 가능하며 인민에 의해 쉽게 이해되었다. 공산주의 포스터 속 인민은 미래의 발전된 조국을 꿈꾸며 이를 위한 희생과 인내, 지도자의 영도를 따르는 충성심을 요구받았다. 적절한 인쇄 환경이 제공된다면 드로잉에서 인쇄까지 10시간 내에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에, 포스터는 TV와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이미지 매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당의 선전도구로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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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북레시피 출판사]



차이를 비교하는 즐거움


각 사회주의 국가는 공통된 상징적 모티프, 메시지, 양식을 공유했다. 오각의 별이나 붉은 깃발, 낫과 망치가 대표적이다. 이는 국제적 사상이었던 사회주의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자발적이든 타의든 대부분의 공산주의 정권과 포스터 디자이너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한편, 각 사회주의 국가는 그들의 문화적·민족적 상징을 자연스레 포스터에 녹여냈다. 이 책은 사회주의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놓치지 않는다. 북한은 날개 달린 말로 표현되는 천리마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몽골에서는 민족적 상징인 소욤보Soyombo를 붉은 별과 함께 배치했다. 중국은 고전소설인 『서유기』, 『삼국지연의』를 당대의 정치지형과 인물에 빗대어 활용했으며, 쿠바의 국민작가이자 독립의 사도로 추앙받는 ‘호세 마르티José Julián Martí, 베트남의 아버지인 호치민Hồ Chí Minh은 토착적인 영웅으로 민족적·국가적 기념일이나 축제 때 인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형식적으로도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고대 중국의 한대漢代에서 기원을 찾는 니엔후아年画*는 프로파간다를 위해 가장 많이 채택된 민속 미술이었다. 몽골의 경우도 전통적인 그림 양식인 주락zurak**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전통에 기반한 이야기와 이미지가 민중에게 더욱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혁명이 있어난 대부분의 국가는 식민주의를 경험했었기 때문에, 이런 민족주의적 상징들은 민중의 지지를 받기에 훨씬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간 있던 포스터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한 국가 또는 특정 사건을 다루어 왔다. 이 책은 공산주의 포스터 미술의 역사와 다양성에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최초의 시도다. 수록된 포스터는 혁명의 정당성부터 정책 홍보, 스포츠와 건강, 공중도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이들 포스터에는 당대의 정치상·생활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책이 “남한의 프로파간다 미술에 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출판물”***의 출현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 가정에서 쓸 수 있게 만든 한 장짜리 대중판화. 수호신, 이야기, 도시풍경이나 당대 사건이 소재로 등장했다.

** 유목민들의 생로병사를 하나의 화면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기법의 민속화 양식.

*** 메리 긴스버그,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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