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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불안정 노동의 집합소인가

학교에서 마주하게 되는 비정규직 사회의 민낯


장인하┃서울(전교조 조합원)



장면 1.


작년 중간고사를 치른 뒤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선생님들과 밥을 먹으며 내년에는 몇 학년 담임을 맡고 싶은지, 어떤 업무를 선호하는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교사들은 지금의 고단함을 달래고자 심심치 않게 이런 대화 소재를 꺼내곤 한다. 그런데 대화 도중 어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칫하시고는 “내년에도 여기 있을 수 있으면”이라고 하면서 본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은 기간제로 일하는 교사였다. 내년에도 근무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장면 2.


요새 나는 학교에서 자유 학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자유 학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외부 강사님들이 원활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다. 2년째 이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는데, 올해는 교육청에서 작년과 다른 지침이 내려왔다. 강사님들은 보통 여러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시는데, 강사님들께 일주일에 총 몇 시간의 수업을 하는지 확인하고, 수업 시간이 주당 15시간을 넘을 경우 해당 강사와 계약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었다. 강사들이 주당 15시간 이상 수업을 하게 될 경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 주휴수당, 연차, 퇴직금 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또한 무기계약 전환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보면, 학교라는 곳의 민낯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그 민낯의 당사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울 때가 있고, 때로는 그 민낯 때문에 밑도 끝도 없이 화가 나기도 하고, 가끔은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게 되기도 한다. 위의 두 장면은, 작년과 올해 내가 마주한 ‘비정규직 집합소’인 학교의 민낯이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노동자 절반은 비정규직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학교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교사로 처음 부임한 작년 한 해 동안만 해도 학교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겪은 비정규 노동과 관련된 일화들이 끝없이 떠오른다.


‘학교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기간제 선생님들과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외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교 곳곳에 있다. 정규직 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이겠다고 교육청에서 채용한 행정실무사 선생님들, 정규직 영양교사‧사서교사‧상담교사와 똑같은 일을 하는 영양사‧사서‧전문상담사 선생님들, 청소노동자들, 당직을 서는 고령의 당직 기사님들, 이미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재된 자유 학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자유 학기 강사님들, 역시나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인 학교 스포츠클럽 강사님들, 방과 후 수업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방과 후 수업 코디 선생님들, 과학 수업에서 과학 실험을 보조해주는 과학 실무사 선생님들.


앞서 말한 분들은 모두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서울의 평범한 중학교에서 날마다 마주치는 노동자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 비정규직인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 수업과 돌봄을 담당하는 강사님들까지 일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실제로 노동조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학교에서 일하는 전체 교직원(88만여 명) 중 비정규직은 약 43%(38만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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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총파업을 지지하는 전교조 부천중등지회 선생님들]



끔찍한 학교의 고리를 끊는 것은 투쟁과 연대


방금 이야기한 것은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를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 그리고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 등 구체적인 현실로 넘어가게 되면 학교는 더욱더 끔찍한 공간이 된다. 불안정 노동의 집합소이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 되어버린 학교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과 배제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학교에서, 좋은 교육이 애당초 가능하긴 할까? 어제까지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기간제’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급식실 노동자들을 그저 ‘밥하는 아줌마’로 인식하게 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게 될까? 대통령이 ‘노동 존중’을 외쳐봤자(그 말조차 지키지도 않는 허상으로 끝났지만), 학교는 일상 속에서 학생들에게 ‘노동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내면화한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는 양질의 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다. 차별과 배제에 반대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학교가 도리어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고 있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그 투쟁에 힘차게 나섰다. 이제 정규직 교사 노동자들이 연대로써 이 차별적 구조에 함께 저항할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교와 거리에서 7월 3‧4‧5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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