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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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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1.02 15:28

2020년 가을,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세연┃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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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 김한주]



#1. 베트남 이주민 

뚜이안 씨 가족


초등학교 2학년‧3학년인 두 딸과 경기도에 사는 이주여성 뚜이안 씨는 방과 후 활동교사인 다문화 강사였지만, 코로나19로 일이 끊겼다. 고용보험에 들지 못해서 정부의 긴급고용안정자금도 받지 못했다. 다른 일을 찾아봤지만, 식당 같은 서비스업종은 코로나19로 일감이 없었다. 겨우 단기일자리를 찾아도 등교하지 못하는 두 딸을 돌봐야 하니,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경기도가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에서도 이주민은 제외된다. 모든 초‧중학생 대상 아동돌봄 특별지원인 ‘비대면 학습지원금’도 이주아동에겐 지급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살길이 막막하지만, 최소한의 보호나 지원조차 받을 길이 없다.



#2.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시멀 씨*


시멀 씨는 2015년부터 여주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고용허가제 취업기간인 3년을 일하고, 1년 10개월 연장해서 총 4년 10개월간 한곳에서 일했다. 주변에 더 나은 조건의 공장도 있었지만, 사업장을 바꿀 수 없었다. ‘성실 외국인노동자 재입국 취업제도’에 따라 다시 한국에서 일하려면 한곳에 머물러야 하니, 불만이 있어도 참고 일했다. 그런데 고용 만료 직전인 5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재입국해서 일하려면 사장이 ‘재고용 신청’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고용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취업기간 50일 연장’ 조치를 내렸지만, 이마저 7월에 만료됐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항공편조차 마땅치 않다. 정부가 체류기간 만료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농어업에서 한시적으로 일하는 ‘계절근로 신청’을 받았지만, 800명밖에 일할 수 없다. 조만간 방법을 찾지 못하면, 시멀 씨는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민이 되어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이 된다.



#3. 동티모르 이주노동자 

아폴리 씨**


전북 군산 개야도에서 2년 넘게 어업노동자로 일한 아폴리 씨는 그간 하루도 쉴 수 없었다. 하루 평균 14시간 넘게 일했고, 날씨 때문에 배가 못 떠도 육지에서 다른 일을 해야 했다.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는 노동시간 제한이나 휴일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기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니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게다가 선원법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도 받지 못하고, 한국 선원 임금의 70% 정도만 받는다. 이마저 임금 통장을 선주가 갖고 있어서, 돈이 필요하면 선주에게 ‘가불’ 받아야 했다. 욕설과 폭력도 종종 경험하지만, 신분증을 선주가 보관하고 있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4.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다비 씨


경기도 이천의 농장에서 일하는 다비 씨는 지난 8월 초 집중호우로 숙소가 물에 잠겨 율천 실내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체육관에 모인 이재민 72명 중 50명이 다비 씨 같은 이주민이었다. 근처 다른 농장에서 일하는 고향 친구도 숙소가 침수돼 율면고등학교로 대피했는데, 거기 모인 30명의 이재민 모두가 이주민이라고 했다. 침수된 그들의 숙소 모두 논밭의 비닐하우스라서 벌어진 일이다. 다비 씨는 ‘기숙사’라고 부르는 비닐하우스에서 1인당 30만 원가량의 월세를 내고 동료들과 함께 살았다.


앞서 아폴리 씨 사례처럼 다비 씨도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지만,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번 침수를 겪은 후 평소에도 감전 등이 우려돼 불안했던 숙소에 더는 살고 싶지 않아 농장을 옮기려 했지만, 사장이 허락하지 않는다. 다비 씨는 여전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더해, 숙소에서도 편히 쉴 수 없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5. 예멘 난민 신청자 

다나트 씨


2018년 전쟁과 굶주림을 피해 제주도로 입국해서 난민 신청을 한 다나트 씨는 난민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어 경기도 오산으로 이주했다. 2019년 난민 인정률이 0.4%에 불과했으니 이것이라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제한되고 불안한 일자리이긴 하지만, 어찌어찌 일하며 안정된 삶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그도 일자리를 잃었다. 재취업하려면 출입국사무소의 취업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실업과 이직이 반복되면서 매번 허가를 다시 받아야 했다. 봄에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자 건강보험 미가입 외국인이라며 마스크를 살 자격조차 받지 못했다. 이제 마스크는 살 수 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더 힘들다. 정부의 코로나19 지원책은 다나트 씨에겐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 난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충분히 경험한 다나트 씨에게 코로나19는 더 큰 차별과 소외로 다가온다.



2020년 코로나19 시대,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다.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드러낼 수 있지만, 등록되지 않아 드러나지 않는 ‘불법체류자’ 미등록 이주민의 삶은 더욱 고달프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팬데믹이 특정 국적 및 인종 그룹에 대한 낙인, 차별, 혐오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우려하고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노력을 주문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코로나19 관련 국제인권규범을 보급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에서 이런 규범은 통하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조선족‧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낙인찍기처럼,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애당초 이주민들의 경제적 재난은 심각했지만, 정부 지원책은 이들을 배제하면서 어떤 안전망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도, 이주여성도, 이주아동도, 난민도 차별받고 소외돼선 안 된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기본 명제를,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 이주공동행동 기자회견(2020년 6월 30일) 참고.


**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어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결과(2020년 10월 7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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