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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에서 길을 찾다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대학원생노조의 이야기


신정욱┃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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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페이스북]



출범 초창기에 주변 동지들에게 대학원생노조를 소개했을 때, “정말 힘들겠다”라거나 “쉽지는 않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모 토론회에 나갔을 때는 한 패널참가자로부터 ‘노동3권 모두가 아닌 단결권 실현을 목표로 하는 여러 노조가 생기고 있고, 대학원생노조가 그 (전형적) 사례’라는 얘기도 들었다. 의욕이 앞섰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조직의 한계를 미리 긋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 보면 조직이 무럭무럭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다.


몰아치는 현안을 하나둘 대응하다 보니, 어느덧 대학원생노조도 출범 3년 차를 맞게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조직을 성장시키고자 많은 사람이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조합원 수가 적은데 심지어 전국조직이고, 활동가의 생계비 보전조차 안 되는 열악한 재정조건을 떠안고 있으며,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아 교섭 전망이 불투명한 조직이다.


대학원생노조 지부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대학 현장에서 다양한 조직화 사업을 진행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전면 비대면 강의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그저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국회 앞에 차려진 학교


오랜 시간 고민하고 동지들과 토론을 거친 후, 대()국회 투쟁계획을 지부 대의원회에 제출했다. 코로나에 가려졌지만, 현안은 너무도 많았다. 일단 경북대 실험실 폭발사고 이후 피해 학생을 외면한 학교 당국을 규탄하는 한편,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와 학생연구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위해 산재보험법 개정 요구가 필요했다(<변혁정치> 107호(6월 1일 자) 기사 “대학원생도 노동자다, 산안법을 적용하라!” 참조). 또한, 일반 직장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위계적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벌어진 전남대의 성폭력 피해자 2차 가해 사건(피해 학생이 성폭력 사실을 학교 당국에 알리고 조치를 요구했지만, 별다른 보호조치 없이 도리어 피해자에게 사건 관련 공개토론회에 참석하라고 통보하는 등 피해자 신원이 드러날 2차 가해를 자행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후속조치를 이행하는 한편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법률 통과도 절실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노동자(조교, 학생연구원, 학회 간사, 대학 강사 등)의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통해 교육비 부담을 줄이면서 대학 구성원의 처우와 연구환경도 개선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했다.


국회 앞에서 농성한다는 소식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약간은 미지근하기도 했던 반응 속엔 ‘우리가 왜? 우리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의원들은 투쟁의 필요성과 과제, 목표에 대해서 모두 동의해 주었다.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투표는 가결되었다. 조합원 총단결의 힘으로 우리는 어쩌면 한겨울까지 이어질 농성을 24일째(10월 30일 기준) 진행 중이다.


우리 조합원 모두 농성은 처음이다. 처음이기 때문에 낯설고,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투쟁 판이 벌어지니까 조합원들이 하루하루 변하는 게 느껴진다. 날짜가 쌓이면서 이제는 제법 농성을 즐기는 조합원들도 생겨났다. 국회 앞에서 종일 떠드는 하이트진로 버스 아저씨의 멘트를 따라하기도 하고, 옆집 농성장 동지들과 담소를 나누는 조합원도 생겨났다. 농성장에서도 대학원생들의 일상이 계속 이어진다. 농성장에 와서 온라인 수업을 듣기도 하고, 밀린 과제를 하기도 한다. 농성장을 우리 공간으로 여기고 챙기는 조합원들도 늘어났다. 농성장에 부족한 물품을 조합원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서로의 고생을 나누려고 농성장지킴이를 자원하고 있다. 앞으로의 투쟁전술과 대응 계획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기도 한다. 한 달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다. 왜 파업이, 투쟁 현장이 ‘노동자의 학교’라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투쟁을 하니까 길이 보인다. 농성장을 거점으로 조합원들이 모이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겁다. 우리의 투쟁을 통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걸 함께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실제로 대학 학생연구원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법제도 개정의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우리 투쟁을 지지해주는 수많은 연대의 끈을 확인하면서, 고질적이었던 재정 문제도 조금씩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 왜 수많은 선배 동지들이 ‘기획 투쟁’을 이야기했는지 이제야 이해된다. 싸움판을 만들어야 우리의 처지가 바뀐다.


이제 남은 건 ‘대학 내 힘없는 약자’에 불과했던 대학원생도 뭉쳤을 때, 싸웠을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최종 확인하는 일이다. 국회 앞 농성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까지 이어나가고자 한다. 처음 하는 농성투쟁이지만, 여러 동지들의 연대와 응원에 힘입어 씩씩하게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 마침내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 버티며 싸울 것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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