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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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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1.02 15:44

민자 발전소 확대,

이제는 멈춰야 한다


구준모┃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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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개편’이라는 이름의 

사유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 전반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사유화(통칭 ‘민영화’) 정책은 에너지 부문에서도 ‘구조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다. 사유화 정책을 처음 시도한 것은 김영삼 정부(1993~1998년) 때였다. 대대적인 사유화 방안이 제출되고 정부 연구용역도 수행됐지만, 그 결과는 한국전력공사(한전)와 가스공사 등에 대해 ‘수직 분할이 불가’하며 ‘상당 기간 공기업 체제 유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8년부터는 에너지 부문도 사유화 조치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전력과 가스 분야는 ‘주요 매각 대상’으로 주목받았는데, 1999년 9월 김대중 정부는 한전의 발전(전력 생산) 부문에 대한 분할 매각 방침을 발표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가스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한전 분할과 관련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은 국회 상정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결국 2000년 12월 8일에 통과됐고, 그 결과 2001년 4월 2일에 한전에서 발전 분야가 6개의 자회사(남부발전, 중부발전, 동서발전, 서부발전, 남동발전, 한국수력원자력)로 쪼개지기에 이른다.


이러한 ‘구조 개편’ 시도에 맞선 반발의 움직임도 있었다. 2002년에는 가스‧발전‧철도 3개 부문 노조가 파업을 통해 사유화 정책의 문제점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가스 분야의 경우 국회에서 ‘가스산업 구조 개편 관련 3개 법안’이 표류하게 됐고, 2003년 4월에는 철도 역시 노사협의를 통해 기존의 민영화 방침을 전폭적으로 수정하는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발전산업에서는 2003년 3월까지 한국전력에서 분할한 6개 발전 자회사 가운데 우선 매각 대상으로 선정된 남동발전에 대한 실사를 저지하려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전개됐다. 그 결과 같은 해 3월 28일에는 국내외 자본으로 구성된 4개 컨소시엄이 입찰 포기를 선언하면서 남동 발전 매각이 중단됐다. 이에 정부는 바로 증시 상장을 꾀했지만, 이것 역시 연기돼 버렸다.


당시 남동발전 매각을 둘러싼 입찰 포기의 원인은 ‘국내외 증시 상황의 불안정성’과 ‘노동조합의 투쟁’ 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전력 같은 망(네트워크) 산업에서 분할 매각 및 경쟁을 도입하려는 정부 정책 자체의 모순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일어났던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는 사유화의 부작용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2000년 5~6월에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주 남부 도시) 등지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전기요금은 3배 가까이 올랐다. 2001년 1월 중순에는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에 대규모 정전이 일어났다. 결국 주 정부가 송전선 부문을 직접 인수해 실질적인 국유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에서 전력거래를 통해 시장을 조작하던 엔론 사는 부도덕성을 이유로 파산을 선고받게 된다. 이러한 사고는 구조 개편 단행 후 채 3년도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유화의 부정적 사례는 미국만이 아니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사건들이 에너지 사유화 정책의 기조를 일정 정도 수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2004년 남동발전 매각 중단, 2004년 노사정위원회의 ‘배전 분할 중단’ 선언, 철도 산업 분할 경쟁 정책의 후퇴 등이 그것을 반영했다.



우회적 사유화, 

민자 발전 확대


그러나 사유화 정책의 중단이나 후퇴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을 뿐이었다. ‘구조 개편’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철회, 에너지 공공성의 재확립 같은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분할 매각 위주의 구조 개편만 잠정 중단했을 뿐, 에너지 산업에서 ‘민간자본의 참여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기조는 계속해서 관철됐다. 2004년 이후 추진된 에너지 정책의 기조는 ‘우회적 사유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우회적 사유화의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민자 발전 허용과 확대’였다.


사유화 정책과 마찬가지로, 민자 발전 사업의 확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1996년 “민자 발전 사업 기본계획” 수립과 1998년 3월 24일 “민자 발전에 대한 외국인 전면 투자 확대” 등의 정부 방침이 그 출발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 사업을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이름으로 구체화했으며, 국내 민간 발전시장 전면 개방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즉, 한편에서는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의 분할 사유화를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 개방을 요구한 자본의 입장이 관철된 것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내외 자본의 실질적인 진출, 즉 시장 개방과 경쟁의 영역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이렇듯 민자 발전의 확대는 전력산업 사유화 정책의 일환이었으며, 실질적인 시장 개방을 확대하는 양상과 동시에 자본이 전력산업에 진입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두드러졌으며, 현재 민자 발전은 설비 규모로 볼 때 전체의 약 1/3 정도를 차지하는 수준이 됐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2016년 기준 ‘기타 발전회사’들의 설비 용량 비중은 26%에 달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및 지자체가 소유한 집단에너지 설비와 신재생에너지도 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하다. 민간 발전회사인 포스코‧SK‧GS, 중국기업인 MPC LNG 복합화력, 그리고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석유화학 등 전력 다소비 기업의 자가용 설비가 ‘기타’ 항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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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발전의 설비 비중은 2009년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발전산업 시장 개방 정책, 즉 ‘신규설비를 중심으로 한 민영화’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본격적으로 LNG 복합화력을 민간기업에게 대폭 허용했다. 2011년 순환 정전 사태가 발발하자, LNG뿐 아니라 석탄화력에까지 대기업‧재벌의 진입을 허용했다. 이로써 포스코‧GS‧SK 그리고 삼성까지 총 8,000MW 규모의 민간 석탄화력발전이 승인을 받고 현재 건설에 돌입한 상황이다. 건설 중인 LNG 및 석탄화력 설비까지 고려하면, 발전 부문에서 민간자본의 설비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발전 공기업에 대한 소유권 매각만 중단됐을 뿐, 신규 민간 발전소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개방해 경쟁을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 전환의 걸림돌, 

민자 발전


현재와 같은 전력거래구조는 민간 발전사의 이윤을 온전히 보장해주고, 발전 공기업의 수익은 한전과 연동해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석탄‧탈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한, 탈석탄과 탈원전을 책임지고 있는 발전 공기업은 수익성 측면에서 더욱 위축될 것이고, 민간 발전사들은 여전히 상당한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다. 게다가 탈석탄‧탈원전과 함께 재생에너지 비중이 더욱 늘어난다면, 전기요금 역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요금 인상은 민간 발전사들의 수익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게다가 한화그룹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에너지 재벌‧대기업은 재생에너지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에겐 에너지 전환조차 ‘이윤을 늘릴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민간 LNG발전소와 석탄발전소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라도 퇴출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강제할 것이며, 그것에 따른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결국 민간 발전사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에너지 전환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이 베트남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참여하면서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는데(그러자 삼성은 재빠르게 ‘탈석탄 선언’을 내놓았지만, 베트남에서의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는 지속하기로 했다), 이들 에너지 대기업은 지금도 국내 곳곳에서 화석연료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앞서 확인했듯 이미 국내 발전 설비 용량의 1/4을 차지하고 그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민간자본 발전소가 계속 돌아간다면,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을 진정으로 추진하려 한다 한들 무망한 일이 된다.


특히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설계 수명이 30년 이상이기 때문에, 지금 짓고 있는 발전소들은 대부분 2050년대까지 가동하게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능한 한 빨리 폐쇄해야 하는데, 이런 목표와 신규 석탄발전소의 건설은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국가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사업권을 매입해 중단시키는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국유화 방식의 재공영화를 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안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사회운동이 뒷받침될 때만 실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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