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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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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1.02 16:27

상속되어야 할 

이건희의 유산은 없다


김태연┃대표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죽음


지난 10월 8일 저녁, 택배노동자 김원종 씨가 배송업무 중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그는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 6~7시간의 분류작업을 하고 나서, 400여 개의 택배를 밤 10시까지 배달하는 장시간 중노동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범삼성재벌 가문에 속하는 CJ그룹 CJ대한통운의 특수고용 비정규노동자였다. IMF 경제위기 직후 정부와 자본의 비정규직화 공세에 밀려 특수고용 비정규노동자로 전락한 택배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렸다. 그 결과 김원종 노동자가 사망했고, 그의 사망 전후에도 택배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졌다. 택배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국가는 특수고용 노동자 정규직화와 노동3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택배노동자 김원종에게 국가는 원망 덩어리일 뿐이었으리라.


한편, 6년 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던 삼성재벌 이건희 회장이 10월 25일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배당금으로 4,748억 원을 받았다. 그가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있던 지난 6년간 받은 배당금 총액만 해도 2조 원에 달한다. 그는 삼성재벌 2대 총수로, 아들에게 3대 총수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에버랜드와 삼성SDS에서 변칙 사채를 발행해 이재용의 지분을 불법으로 불려 나갔다. 검찰과 법원을 비롯한 국가는 그의 범죄를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덮어줬다.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에게 국가는 봉이었다. 어쩌면 그가 곧 국가였을지도 모른다.


48세의 택배노동자 김원종 씨가 유산으로 무엇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 71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그야말로 죽을 정도로 해봤자, 계속 낮아진 건당 수수료, 각종 명목의 대리점 중간착취, 하루 절반의 무임노동(분류작업), 택배차량 운송비, 배상금 등으로 인해 무엇을 남기고 말고 할 게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는 남긴 것이 너무 많아 파악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일단 명백한 유산으로는 18조 2천억 원어치로 추산되는 삼성전자(지분율 4.26%),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6%) 등의 주식이 있다. 과거 삼성특검 과정에서 이건희가 숨겨둔 차명 자금 4조 5천억 원을 찾아냈다. 그중에서 주식인 2조 3천억 원을 제외한 2조 2천억 원이 무기명채권 등으로 있을 것이다. 비자금 조성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부동산‧현금‧차명계좌‧예술품 등 여러 형태의 유산이 있을 것이다.



이건희 유산은 범죄수익


삼성재벌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자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상속세다. 주식 18조 원에 대한 상속세가 11조 원가량 될 것이다. 대부분이 이재용 일가의 삼성재벌 지배권 장악과 직결되는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주식이므로, 팔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래서 이미 언론에서는 이재용 일족이 10조 원의 상속세를 5년 분할로 납부할 것이며, 이재용 일족의 연간 배당금 7천억 원으로는 부족하므로 배당금을 올릴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의 주가도 오르고 있다.


그동안 재벌 세습 과정에서 총수일족은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삼성재벌 이병철이 사망한 후 상속재산을 고작 273억 원이라고 발표하고 세금으로 꼴랑 176억 원을 납부해 세상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낸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LG재벌 구광모 회장이 4대 세습을 하면서 증여‧상속세를 좀 많이 내자 ‘훌륭한 재벌’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이재용 일족은 낼 수밖에 없는 상속세를 내면서 여러 가지를 챙기려 할 것이다. 그동안 3대 세습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로 떨친 오명을 덮어버리고 ‘양심 있는 기업가’로 등극하려 할 것이다. 국정농단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불법행위 관련 재판에서 구속을 피하기 위한 포석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건희의 유산이 세법에 따라 온전히 상속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이건희는 문화재단을 이용한 불법 증여, 차명계좌, 비자금 조성 등으로 2대 세습을 했다. 따라서 2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건희의 재산은 사실상 그 자체가 범죄수익이다. 이건희의 유산 20조 원은 이재용 일족이 상속세를 내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환수해야 할 범죄수익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재벌 범죄수익 및 사내유보금 환수특별법 제정 운동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이건희의 진짜 유산은 

재벌체제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의 진짜 유산은 20조 원의 재산이 아니라 재벌체제다. 재벌체제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농민 등 기층 민중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기반으로 국내외 대주주들의 배를 불리고 총수일족이 부를 독점하는 체제다. 소수의 대주주와 총수일족에게는 살맛 나는 세상이겠지만, 노동자민중에게는 죽을 맛 나는 세상이고, 택배노동자와 반도체노동자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죽음을 부르는 체제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재벌이 중심에 서서 재벌체제를 키우고 굳혀 왔다. 역대 정권과 유착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를 만들어 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기 위한 제도와 정부정책을 도입했다. 노조파괴와 노동법 개악을 이건희와 삼성재벌이 앞장서서 사주했다. 살인적인 철거현장 배후에 이건희의 삼성물산이 있었고, 한국 농업을 궤멸시키는 개방정책을 이건희의 삼성이 입안했다. 한국 사회는 이건희 죽음 앞에서 유산 상속을 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의 유산은 철저히 청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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