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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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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33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5.12 12:57

김충선


차갑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탈의실에 들어선다. 앞서 일을 그만둔 이의 사물함을 찾아, 그이 이름을 지우고 내 이름을 적는다. 사나흘 지나면 마카는 조금씩 지워지겠지만, 비뚤어질까 또박또박 적어 넣는다. 뒤축이 꺾인 안전화가 내 앞에 던져지면, 그제야 작업복도 후줄근하다는 걸 깨닫는다. 뭐, 신고 있는 슬리퍼도 누군가 신던 걸 받은 거다. 뭔가 말하려고 하자, 파견업체의 대리라는 자는 “조금만 참으면, 곧 새 걸로 내주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아무 말 없이 아래층 현장을 한 번 내려다본다. 시끄러운 기계는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하고, 무표정한 사람들은 저마다 손을 재빠르게 놀리고 있다.

반장은 내게 별다른 걸 묻지도 않고 또 다른 이에게 데려간다. 그네들은 대충 일만 시켜놓는다. 알려주는 것도 뭐 별스러울 것이 없고, 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기계와 박자를 맞춰서, 부족하다면 채워주고, 뱉어놓으면 조립하고. 그러면 그만이다. 어디에 들어가고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몰라서 머리맡에 매달린 차트들을 기웃거리면, 어느새 알람이 울고 있다. 일을 가르쳐 준 이가 다가와 뭐라고 한다. “그런 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러게, 내가 그걸 안다고 뭐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부품이 멕시코나 베트남으로 간다는 걸 안다고 해서 내가 그네들에게 “한국 공단의 파견직에게는 신던 쓰레빠를 준다”고 일러바칠까? 이 부품이 엔진의 기초라는 사실을 아는 게, 내 임금을 올리는 기초가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혹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까. 그래, 하루 여덟 시간만 이대로 일한다면야, 내 손가락이 여섯 개면 좋겠다는 멍청한 생각대신 보람 비슷한 걸 느낄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까, 그런 걸 알아서 뭘 한다는 말인가? 대답 대신 더 빨리 손을 놀린다.

죽어라 했더니, 야식 먹으라고 종이 울린다. 전에 일했던 공장은 야식이 형편없었다. 사내식당이 없어 밥을 외부에서 가져다 먹었다. 저녁에 지은 밥과 남은 반찬을 두었다 먹는 거라 밥은 누렇고, 반찬은 섞여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찌개를 휴게실 바닥 버너 위에 데우고 있으면, 관리자들은 나와서 피자나 치킨, 탕수육 따위를 시켜먹곤 했다. 탕수육을 시킨 놈이나, 그 옆에서 알맹이 부서진 찌개를 휘젓던 놈이나 세상에 한심한 놈들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식판을 받은 이들이 “풀밭이네”, “국이 맹탕이네” 하며 저마다 푸념이다. 나는 풀밭이든 맹탕이든 모두 같은 밥반찬을 받아든 게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첫날이라 출근 카드를 찍지 않아서, 반장에게 확인 서명을 받아야 했다. 식당을 나서는 반장을 쫓아가 부탁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충고한다. “파견직은 뭐 그냥 대충대충 받으면 되지, 서명까지 받느라 그래?” 나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경첩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카드보관함의 문짝을 닫자, 아까 했어야 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껏 시키는 대로 대충대충 왔습니다. 열두 시간 꼬박 서서 일하는 나는 저만치서 경적을 울려대는 통근버스를 무슨 난민처럼 달려가서 타고, 당신과는 다른 줄에 서서 카드를 찍고, 22일에 찍힐 글자가 23일 찍힌 걸 어찌해야 하나 안절부절 못하다가, 작업교육은 개코나 대충 기계 앞에 세워졌습니다. 손가락이 찍혀서 피가 흘러도 행여나 그만두려고 쇼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대충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일했습니다. 정규직이 되기 전에 먼저 신선이 되라고 차려준 염소밥상을 대충 우겨넣고 다음 공정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임금까지 대충 받으라니요?”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한들 무슨 소용인가. 가만히 있는 게 신상에 이롭다.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힐 일이다. 그래, 집에 가자.

잽싸게 라면을 하나 끓이고, 얼린 밥을 돌려서 밥상 앞에 앉는다. 밥상에 대고 하루를 고해 바친다. 나도 새 작업복을 요구할 수 있다. 나도 필요한 교육을 요구할 수 있다. 적절한 임금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불편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애써 내 발에 스스로 올무를 죄는 일은 하지 않는다. ‘퇴사 삼 개월’이라는 말은 상식이다. 정당한 요구는 유별난 짓이고, 유별나게 굴면 곧 퇴사다. 그러면 다시 파견업체를 전전하며 삼 개월을 허비해야 한다. 계속 일을 하려면, 내 편을 들어선 안 된다. 그렇게 나는 필요한 말들을 감추고, 정해진 선을 넘지 않으면서 말수가 줄었다. 이 조용함을 나는 평온하다고 느낀다. 평온이 싫지가 않다. 상다리를 접으면서 야간조 하루가 미지근하게 끝난다. 오전의 햇살도, 과일트럭의 느릿한 녹음 광고도, 다 미지근한 것 같다.

내가 떳떳하게 내 편을 들어 내 자존과 안전, 임금과 여유를 요구할 때가 올까. 모두들 스스로 넘지 않던 선을 넘어, 감춰둔 말들을 꺼내 야단이 나는 날이 올까. 그런 때가 저만치 있기라도 하면, 가서 다만 하루 이틀이라도 더, 이만큼 데려오고 싶다.


* 50인 이하 소규모영세업체가 대부분이고 저임금ㆍ장시간노동이 차라리 자연스러운 반월시화공단. 일상의 삶마저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그 곳에서 김충선님은 3년 넘게 파견직으로 일하다 최근 정규직이 됐습니다. 주야 맞교대에 잔업, 특근까지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지만, 공단노동자들의 배제된 권리를 되찾고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청년노동자다. 고단하지만 ‘꿈’을 잃지 않는 삶, 김충선님의 글을 격호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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