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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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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33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5.12 13:00

남구현(한신대 교수)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발발된 금융위기의 전모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01년 이후의 저금리정책은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확산, 부동산가격 상승, 투기열풍 확산을 초래했다. 2004년 이후 금리인상(1.0%→5.25%)으로 부동산거품이 꺼지자 부채상환이 힘들어지면서 금융회사 부실을 초래했다. 결국 2007년 뉴센트리 파이낸셜사의 파산신청을 시작으로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AIG 구제금융신청 등 6개월 사이 미국내 1~5위권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한 것이다.

이에 미 연준은 달러발행과 국채구매를 통해 투기금융자본에게 구제금융 20조 달러를 제공했다. 그리고 저금리정책을 통한 화폐량 증대와 달러화 가치하락, 수출증대를 통한 국제수지 개선을 시도하였다. 소위 양적완화 정책으로 불리는 금융 화폐적 해법으로, 금융자본의 손실을 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한편 자국위기를 지구적으로 외화하는 방식이다.

2011년 그리스 재정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연장선에 있다. 보수언론은 복지포퓰리즘을 원인으로 돌리지만, 복지가 많은 북유럽이 아니라 복지가 적은 남유럽 국가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유로존 가입자격(예산적자 GDP 3%, 부채율 GDP 50% 미만)을 갖추기 위해 골드만삭스에서 100억 달러를 빌리는 등 국가부패, 기업탈세, 자본유출로 인한 재정악화 등이 원인이다. 또 제조업이 취약하고 서비스업 비중이 75%나 되는 취약한 경제구조에서 경제위기 여파로 인한 관광수입마저 축소되었다. 여기에 유로화로 화폐통합이 되어 금융화폐정책을 사용할 수 없어 그리스국채는 정크본드가 되었다. 급기야 2009년 재정적자 전망치가 3.7%가 아니라 12.7%이고, 국가채무가 110%에 이를 것이라 보고되자 공황에 빠졌고, 위기는 스페인 포르투갈 등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2012년 1,100억 유로를 지원받으면서 긴축재정을 강요당했고, 2015년 초 국채를 발행했으나 다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해법으로 제시된 유럽식 양적완화 정책은 금융화폐적 수혈과 조절을 통해 위기에 대처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같다.


대안이라고 제출됐던 케인즈주의ㆍ복지국가적 논의들은 이미 낡은 것

이러한 과정들을 볼 때 몇 가지 주목할 점들이 있다. 2008년 위기는 금융위기에서 재정위기로 전화되었고, 지금은 지구적인 자본의 장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이전의 위기들과 달리 금융투기화된 자본 그 자체가 이윤을 실현하지 못해 직접적인 위기원인이 되었다. 위기해결을 위한 해법으로 제시된 양적완화정책 과정에서 국가는 자본살리기에 벌거벗고 나섰다. 이전의 케인즈주의는 재분배정책을 통해 유효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려했다면, 지금의 ‘국가개입주의’는 직접적인 자본수혈로 이윤을 확보해 주었다. 일종의 우파 케인지안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개입과 규제는 악이라는 자유(시장)주의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온 세계에 유포되던 것이 바로 어제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국가가 구세주가 되었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뒤집던 예의 습관대로 시장만능주의는 자본을 위한 국가 개입주의로 바로 대체되었다. 위기는 사회화되었고 지구적 수준으로 외화되었다.

노동자민중투쟁 역시 지구적 수준에서 격화되었다. 미국에서는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99%의 반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벌어졌고, 유럽에서는 총파업과 격렬한 가두투쟁이 터져 나왔다. 이와 함께 새로운 정치운동이 등장하였다. 기존의 사민주의를 비판하고 반자본을 표방하는 좌파세력들이 그것이다. 독일의 좌파당 Die Linke Partei,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 NPA, 영국의 레프트 유니티 등이 유럽의 중심부에서 나타났다면,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운동에 이어 그리스의 시리자 등은 남미와 남유럽의 주변부에서 등장하여 집권에 이르렀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운동들이 바로 자본주의 모순을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일단 자본주의를 개량하는 것에 그친 기존의 사회주의운동을 비판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지형변화를 고려할 때 이제까지 흔히 대안이라고 제출되었던 케인즈주의, 복지국가적 논의들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월러스틴이나 피케티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저자들 역시 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의 덫>을 쓴 마르틴과 슈만은 하이예크와 케인즈, 영미식 시장자유주의와 유럽식 사회적 규제, 시장과 민주주의 또는 국가규제를 대비하면서 결론적으로 ‘민주적 유럽연합’ 또는 사회적 유럽 social europe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월러스틴도 지구화 이후 세계를 삼각 구조로 보면서 미국 헤게모니 아래의 단일세계체계가 무너지고 유럽헤게모니로 가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남북문제에 착목하여 다보스와 포르투알레그레 사이의 대립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남쪽의 진보적 정권을 강조하는 한편 교육, 의료 영역에서의 탈상품화를 추가하고 있으나 크게 보면 유럽식 자본주의를 해법으로 보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피케티도 해법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 경제성장과 이윤을 대비하면서 이윤이 경제성장을 넘어서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 아래, 자본소득과 임금소득을 구분하여 불평등한 분배에 대해 지적하면서, 해법으로 자본세 증세와 사회국가 social state를 제출하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세계적 수준 이해 부족, 과거 회귀적 대안들 반복

사회적 유럽, 탈상품화, 복지ㆍ사회국가 등 과거 회귀적인 대안들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세계적 수준에서의 이해가 부족하고, 최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자본주의 축적조건의 변화와 맞물려 이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전략의 하나로 여러 가지 가능한 전략 중에 채택된 것으로 자본주의의 과거 역사 속에 채택되었던 파시즘 또는 케인즈주의 전략처럼 역사ㆍ사회적 맥락 속에서 선택된 하나의 전략이다.

신자유주의 등장은 자본주의 등장 이래 크게 세 가지 변화 과정 속에 위치지울 수 있다. 첫째로, 자본주의 등장 이래 민주주의가 확대되었고, 보통선거권을 쟁취하면서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 가능성이 열리고, 그 결과 국가를 매개로 한 노동자정치의 제도화와 케인즈주의적 재분배정책이 가능해졌다. 이는 세계적인 공황을 맞아 파시즘이 등장, 공격당했으나 파시즘의 패배로 끝났다.

둘째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와 함께 모순이 주변부로 외화되면서 중심부에서는 복지국가적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주변부 혁명과 제3세계의 등장, 그리고 주변부의 자원을 무기로 한 반발, 이는 오일 쇼크로 불리는 1970년대 세계적 공황을 불러일으켰다.

셋째로, 앞의 두 가지, 즉 민주주의 확대와 노동자정치 발전, 그리고 복지국가적 발전에 대한 반동으로서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등장하여 내부적으로는 쥐어짜기가 진행되었고, 외부적으로는 자본지구화가 진행되었다. 지구화는 중심부 자본의 이해가 관철되는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결과로 2008년 위기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지금의 위기는 ‘지구적’ 자본의 위기이자 지구적으로 축적된 ‘자본’ 그 자체의 이윤율 확보의 위기이다.


자본주의 사회 성과는 자본주의 자체 모순 지양 과정에서만 새로운 사회 건설 원동력 될 것

지금 다시 ‘국가’와 ‘복지’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한 세대를 거치면서 삶이 힘들어졌다는 의미에서 이해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본다면 ‘국가개입주의적’ 또는 ‘복지국가’적 관점에서 제출되었던 대안들은 이미 과거에 한계를 드러내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부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시기에 요구되어지는 것은 ‘부정의 부정’이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닐 것이다.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신자유주의에 의한 부정이 요구될 것이며, 이럴 경우 모순은 지양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위기가 지구적이며, 점차 저하하는 이윤율과 악화되는 축적조건 아래 자본 투기화ㆍ금융화가 원인이 되어 2008년의 금융위기가 터졌고, 국가에 의한 수혈과 금융화폐적 양적완화정책이라는 대증요법에 의지하고 있고, 그 결과 국가재정위기로 진전되어 국가개입주의적 대책이 힘들어졌다는 조건들을 고려할 때 이제 자본을 넘어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착취를 끝장내고, 무계급 사회로의 전망 속에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 나가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어느 때 보다도 지금 시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와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등장 이래 세계사에 유례없는 생산력 증대라는 부르주아지의 성취는 그것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부가 최대한의 이윤추구라는 자기 목적과 이윤율 저하라는 내적인 법칙 사이의 충돌을 일으키면서, 주기적인 위기 속에 자기증식의 유일한 기반인 노동을 쥐어짜야만 하는 운명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지금 사회가 성취한 생산력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등장 이래 확립된 형식적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라는 내용과 충돌해 왔으며, 위기상황에는 국가가 취하고 있는 계급중립적 형식은 무너지고, 국가의 계급성은 벌거벗고 모습을 드러내 왔다.

시장만능주의자는 본질적으로 기업프렌들리한 정책을 펴는 국가의 지지자다. 계급모순이 종식되면서 민주주의는 실질 민주주의의 확대를 통해 완성되어 갈 것이며, 민주주의의 형식성에 내용을 채우는 과정은 노동자계급이라는 사회적 주체의 직접정치가 실현되는 과정, 즉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가 주어질 때 필요 충족의 원칙은 최대한의 이윤추구라는 자본의 원칙과 충돌해 왔으며, 복지의 확대는 항상 경제성장의 ‘보충적’ 개념 속에서만 이루어졌다. 자본주의적 모순이 지양되면서 필요의 원칙은 전체 사회의 주도적인 원칙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룩해 놓은 성과, 즉 생산성의 향상, 민주주의의 확대, 복지국가의 등장은 이제 거꾸로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을 지양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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