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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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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7.15 12:42

삼성이 죽였다

노동자의 삶이었던 공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빼앗겼다


푸우씨(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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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죽었다. 그녀의 삶이었던 ‘노동’이 되레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병든 그이에게 회사는 모질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야멸찼다. 회사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만 했다. 늙은 아버지가 회사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을 때, 아픈 걸 왜 회사 책임으로 묻냐고 되레 호통칠 때, 치료비에 보태라며 동료사원들에게 모금한 돈을 생색내듯 의의양양하게 건넸을 때, 그녀는 어땠을까.

그녀를 살리기 위해 고된 장거리 운행도 마다하지 않고 속초와 수원을 오가는 아빠의 택시 뒷좌석에서, 마지막 바튼 숨을 내뱉는 것으로 유미는 유언을 대신했다. 그렇게 싸늘히 식어갔다. 유미는 아빠와 엄마에게, 삼성에게, 동료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작년 8월21일 고등법원은 ‘고 황유미, 이숙영의 백혈병 사망은 산업재해’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송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2명의 사건에 대해서는 마침표가 찍혔다. 그러나 제한된 판결 속에서 같이 소송에 나섰던 5명 중 3명의 유족과 피해자(고 황민웅, 피해생존자 송창호, 김은경)는 산업재해 불승인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해 여전히 법정싸움을 진행 중이다. 그동안 삼성은 일관되게 그들의 백혈병 사망과 투병 등이 자신들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기 바빴다. 산업재해 보상여부를 두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오히려 보조참가인인 삼성이 날뛰었다. 삼성이 고용한 대형로펌의 변호사들은 병든 노동자와 유가족의 속을 몇 번씩 뒤집었다. 삼성은 2인1인조로 일하던 두 명의 노동자가 동시에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 중요한 사건조차 별일이 아닌 것처럼 호도했다. 빈혈만 있어도 입사가 되지 않는 곳, 그렇게 건강한 사람들만 입사할 수 있는 곳 삼성반도체. 그곳에서의 삶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유미와 또 다른 유미들

‘황유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후, 수많은 또 다른 ‘유미들’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았다. 유미씨의 죽음을 계기로 2007년 구성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반도체 공장 주변을 돌며, ‘유미들’을 찾았다. 삼성반도체에서 발생하는 직업병과 유해위험한 작업환경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제보를 받기 위해 주력했다. 그러나 국정원보다 정보력이 뛰어나다는 삼성의 노무관리 체계 속에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은 반올림이 건네는 유인물과 손길을 피하기 바빴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애써 받아든 유인물은 회사 입구 관리자가 보는 앞에서 휴지통에 쑤셔 넣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조금씩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2015년 현재 반올림에 접수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제보는 200건을 훌쩍 넘어섰다. 그 중 상당수는 유미씨와 같은 삼성반도체에 다니고 있거나, 다녔던 이들이다.

‘유미들’은 하나같이 아프거나, 병에 걸려 힘겹게 투병중이다. 오롯이 ‘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들에게 찾아온 몹쓸 병은 모든 것을 헝클어뜨렸다. 투병 중에 당사자가 아픈 사실을 제보했다가 결국은 고인이 되어 유족이 대신 연락해오는 일도 있다. 단순한 ‘제보의 건’으로 남기엔 하나하나 사무치는 아픔들. ‘제보 숫자’는 바로 그/그녀들의 노동이고, 삶이다. 수많은 관계와 의미, 그들이 만든 삶 속에서 놓였던 기록, 사진, 추억, 희망, 미래, 꿈… 그 모든 것을 담기엔 부족하기만 하다.


삼성이 책임져야 한다

작년부터 삼성반도체는 직업병 피해자와의 교섭에 나섰다. 7년만이다. 그러나 아직 해결된 것은 없다. ‘사과, 보상, 재발방지’라는 당연한 사회적 요구가 교섭 의제로 설정되고 조정위원회를 거치며 지금은 유미씨의 죽음으로부터 8년째이다. 조만간 조정위원회가 3자(삼성반도체, 가족대책위, 반올림)의 입장을 조율한 권고안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각별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삼성은 유미와 유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삼성이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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