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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7.15 12:55

가혹한 영화

영화보다 가혹한 현실


이원호┃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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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해 2010년 출판된 손아람 작가의 소설 <소수의견>은 단숨에 읽힐 정도로 아주 재미있는 법정 소설이었다. 하지만 2010년 1월에서야 355일 만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용산참사와의 시간적 거리감이 가까워서인지, 참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했다.

소설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고 기다리던 「소수의견」이 드디어 개봉했다. 개봉 연기가 대형 배급사(CJ)가 권력에 주는 선물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논란 끝에, 배급사가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제작을 완료한 지 2년 만에 개봉한 것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감독과 영화사측은 용산참사 영화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며 ‘허구의 사건’을 다루는 법정드라마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영화는 실화를 그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용산참사 사건의 주요 쟁점인 재개발이나 경찰 진압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실제 사건에서 벌어진 권력 행태의 일부만을 차용, 허구의 사건과 인물을 구성해서 소설이 보여주었던 ‘재미있는 법정드라마’를 구현했다. 영화사측의 용산참사와의 거리두기는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허구’이기만 한가

철거민을 변호하며 국가의 유죄를 증명하려 한 주인공 윤진원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 윤계상은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의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권력의 모순을 드러내며 ‘국가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묻게 한다. 영화에서 권력기관과 권력자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소수’가 ‘다수’가 되는 것을 막는 일에 권력을 남용한다. 법정의 진실 공방을 통해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되면서 진실이 밝혀지지만, 권력은 여전히 그 진실을 묵살한다.

허구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더 가혹했다. 영화에서 차용한 용산참사의 실제 사건과 비교해보면 현실의 모순은 더욱 뚜렷하다. 영화에서 "부녀자 살인 사건을 확대 보도하게 만들라"는 청와대발 여론조작 지시가 담긴 문건은 용산참사 사건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2009년 1월말 당시 청와대는 “용산참사 사건의 여론 관심을 돌리려 군포 연쇄 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고 경찰에 지시하며 여론조작을 위한 매우 구체적인 홍보방법을 지시했다. 이후 언론은 이례적으로 피의자의 신원까지 공개하며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연일 보도해 용산참사 사건을 희석시켰다.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도 실재했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1만여 쪽 중에 검찰은 경찰 수뇌부에 대한 조서 약 3천 쪽의 열람을 거부했다. 영화에선 수사기록 없이 재판을 진행하지만, 현실에선 변호인단까지도 불공정한 재판을 거부하며 법정 싸움을 해야 했다. 이에 법원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서라도 용산재판을 강행하려 했고, 이에 새로 변호인단을 선임해 수사기록 없는 재판을 진행해야 했다.

영화에서 국민참여재판 신청에 검찰이 60명 넘는 증인을 신청해서 참여재판을 방해하려 한 것도, 실제 용산재판과 일치한다. 일반인 배심원들을 재판기일 동안 격리해 집중 심리를 진행해야하는 참여재판의 성격상, 다수의 증인을 심문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검찰이 법원의 증인 축소 명령을 받아들여 국민참여재판이 성사되지만, 용산참사 재판에서는 61명이나 증인을 신청한 검찰이 중복되는 증인을 철회하지 않아 참여재판이 무산됐다.

또 영화에서 진행된 재정사건 재판도 현실에서는 무산됐다. 재정사건은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 사건을 직접 법원에 기소 요청해 재판을 할 수 있는 절차다. 용산참사 당시 검찰은 무리한 진압 논란에도 경찰을 무혐의 처분하며 기소하지 않았고, 이에 철거민측은 경찰을 기소해 재판해 달라며 법원에 재정사건을 신청했다. 영화에서는 경찰책임자가 재정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오지만, 용산참사 사건에서는 재정신청도 기각됐다. 심지어 진압작전 지휘 책임자인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무전기 꺼 놨다”는 책임회피 서면답변서 만으로 검찰 조사조차 받지 않고 무혐의 처분됐다.

어떤가? 이쯤되면 영화보다 더 가혹한 현실 아닌가.


반복되는 냉혹한 현실 직시해야

문제는 그 현실이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라는 과거 사건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이 「소수의견」은 ‘용산참사’ 영화가 아니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국가와 거대한 권력의 음흉한 카르텔은 용산참사에서도, 강정마을과 밀양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서, 그리고 이름조차 명명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권력에 맞선 처절한 외침에서도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이 영화는 용산참사 영화이기도 하다. 용산참사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만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용산참사를 검붉은 화염에 뒤덮인 ‘2009년 1월20일’의 과거 사건만으로 기억하는 순간, 참사는 반복된다. 용산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온당한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용산참사는 어제가 아닌 현재의 일이고, 우리에게 올 내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소수의견」은 한 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버겁고 두려워서, 회피할 수도 있는 가혹한 현실의 조각 몇 개를 허구적 장르와 영화적 재미를 통해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나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이지만 현실에서 도망치고 않고 회피했다가도 다시 부딪혀 본 윤진원(윤계상 분), 장대석(유해진 분), 공수경(김옥빈 분)처럼, 소수의견은 우리를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조심씩 대면하도록,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끌어들이고 있다.

* 필자가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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