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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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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평화를 잠식한다

‘평화협정’으로 대체가 우선 과제


배성인(한신대)┃서울


칸트는 전쟁이 전혀 없는 영원한 평화를 확실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세계시민으로서 '세계공화국' 하에 통합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칸트는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들에 의해서 구성되는 국제연맹의 설립을 제창한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에게도 전쟁은 “문명의 질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공동의 국제기구만이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해왔다. 그들이 꿈꾼 국제연합의 가치다.

하지만 한반도에게 국제연합은 분단 구조의 근원이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 첫날 안보리는 유엔 역사상 최초로 ‘국제 평화의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부터 북한은 ‘유엔 헌장 7장’의 낙인이 찍힌 범죄국가가 됐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북한의 핵과 인권문제에 대해 유엔을 통해 비난하거나 제재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기원이 되었다.

결국 유엔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 남긴 유산이란 바로 ‘범죄국가 북한’이다. 그 동안 유엔은 ‘처벌적’ 접근으로 일관해 북한을 범죄화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해결을 요원하게 한 것이다. 유엔은 현재도 인권문제 등으로 북한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면서 처벌 기능만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에게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난센스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준전시상태이면서 한반도 불안정의 근원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노력은 국제사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선행돼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우선적인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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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대립·국제적 요소 복잡하게 얽힌 문제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내적인 요소와 국제적인 요소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신자유주의는 한반도의 긴장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고 대내외적 복잡함은 불안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내부적인 요소와 국제적인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 내적인 요소는 분단 이후 지속된 남북한의 정치적 불신과 군사적 대결이다. 또한 미국의 군사전략과 일본, 중국 등 주변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군사력 증강 과정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 보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필요한 대안으로 그 동안 평화협정 체결, 남북한 신뢰구축과 군축, 한반도 비핵지대화 그리고 동북아 다자간 안보체제 등이 논의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의 우선순위나 유기적 관련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정책대안으로서 현실성을 지니지 못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유발시키는 구조적인 요인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된다. 그리고 평화협정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은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한반도 비핵지대화,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등의 과제와 상호 관련성을 가지면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구체적 실천으로 평화공간 만들어가야

하지만 실천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곳곳에 암초가 놓여 있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북핵문제와 동북아 안보 정세의 유동성 등으로 평화를 구축하는 설계와 과정이 쉽지 않게 되어 있다. 동북아라는 공간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을 논할 때 미국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동북아는 미국이 실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정치적 공간이다. 미국의 정치적 공간은 미군 기지와 미국 자본에 의해서 동아시아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한 공간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반도가 ‘평화의 공간’으로 창출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동아시아로 공간을 확장하여 친근하고 익숙한 그러면서도 바람직하게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핵무기의 폐지나 군비축소의 문제만이 평화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핵심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 경쟁, 불안, 공포, 이익 등 신뢰의 문제이며 정치적 문제다.

한반도에서 평화담론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보수 세력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다. 진보 진영의 평화담론은 보수 세력의 담론에 파묻혀 비 맞은 생쥐마냥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되어 버렸다. 그 결과 고양이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결국 열정과 의지 그리고 지혜로움으로 무장된 평화세력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져 가고 있는 형국이다. 보수 세력의 관념적인 언어, 자신이 의로움으로 가득 찼다는 착각 및 독선, 그리고 안보의 광기는 평화를 위협하고 있지만 허공 속에 묻히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광기는 평화를 가슴이 터져라 목 놓아 외치는 진보 진영을 과격함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절대 악으로 평가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 공권력을 포함한 물리력을 사용하여 더욱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이제는 광기, 폭력, 전쟁의 소용돌이와 심연에서 평화의 소용돌이와 심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폭력의 부재’로서의 평화, 부르주아지의 폭력이 지양된 평화를 강조했다. 그 동안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위기, 대립, 갈등, 합의, 파행 등을 반복해왔다. 이제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한반도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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