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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7.15 13:06

사람 살려야 하는 ‘복지’

생사 가르는 ‘저울’로

‘차별의 낙인’ 장애등급제, 폐지가 답이다


양유진(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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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의 역사는 ‘장애인의 날’의 역사와 같이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법인 ‘심신장애자복지법’이 만들어진다. 이 법을 기반으로 1988년 11월1일부터 전국적으로 장애인등록제도가 시행된다.(심신장애자복지법 시행 이후 장애인 등록제를 전면화하기 위해 1982년 장애등급기준이 발표되고, 1987년 장애등록제도가 시범 실시됐다.) 1989년에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되고, 이를 통해 일본과 같은 방식의 장애등급제가 제도화됐다.

장애등급제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5가지 장애유형(지체, 시각, 청각, 언어, 정신지체)에 대하여 그 중증도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로 분류했다. 장애유형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현재는 15개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장애유형이 확대되고, 등급을 나눔으로써 장애인 복지가 보다 효율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보다 전문적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등급과 장애유형이 세분화될수록 도리어 장애등급 판정 과정은 엄격해졌다. 그 결과 장애인의 생존은 더욱 위협받게 됐으며, 사람을 살려야하는 복지가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저울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입증됐다.


‘목숨’ 걸린 문제…효율성 따질 건가

그렇다면 장애등급제는 어떻게 장애인에게 ‘생사의 저울’이 되었을까?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복지법의 핵심이며, 장애인과 연관된 모든 복지서비스의 근간이 된다. 따라서 장애등급제 폐지는 현행 장애인복지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장애등급제의 문제는 장애인복지법 전체의 문제로 이어진다. 장애등급제(장애인 복지)의 문제점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장애등급제는 그 자체로 ‘차별의 낙인’이다. 그 어떤 복지제도도 수급 당사자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있지 않다. 오직 장애인에게만 몸에 등급을 매김으로써 낙인을 찍고 있으며, 등급으로 장애인복지 체계가 설계되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둘째, 장애등급제는 의료적 기준의 기능손상으로 ‘장애’를 정의한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 1항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규정한다. 기본적으로 장애를 ‘기능의 손상’에 초점을 맞추고, 개인적이고 의료적인 기준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모든 장애인 관련 복지정책은 이러한 관점에 맞춰 설계되고 시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능의 손상만으로 정의하면 장애로 인해 차별받는 구조를 설명할 수 없다. 즉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말도 있듯 장애는 사회적 관점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장애등급과 가구소득이라는 두 가지의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적 기준과 경제적 기준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하는 선착순 복지다. 장애유형과 정도, 소득수준, 생활환경 등과 관련되어 적절한 또는 필요한 서비스가 연결되고 있지 않다.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필요한 서비스를 아예 지원받지 못한다. 복지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제공되어야 하는데, ‘가장’ 중증인 장애인, ‘가장’ 가난한 장애인(가족)이어야만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넷째, 행정편의주의와 권리제한의 문제가 있다. 장애등급제는 복지서비스 당사자인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의 ‘효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 아마도 행정적으로 더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필요에 따라 복지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2014년에 장애등급 3급이었던 故송국현님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복지 수급 당사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이들의 목숨과 연결돼 있으며, 이는 ‘효율성’과 비교될 수 없는 부분이다.


박근혜, ‘폐지’ 공약 내걸고 당선 후 나몰라라

2012년 말 대선후보들은 모두 장애등급 폐지를 공약으로 채택했고, 당시 박근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아닌, ‘단순화’를 추진하고 있다. 겉으로는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어 기존의 1~6등급까지의 등급이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으로 나눈 것에 불과할 뿐 예산의 확대와 권리보장 및 강화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장애인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등급제 개편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현재 장애인복지체제에서 배제된 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가 개편되더라도 결국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에서는 이러한 장애등급제 단순화가 아닌 장애등급의 실질적인 폐지와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애인권리보장법’으로부터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 다음호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내용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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