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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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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25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4.11.18 17:25

대학 경쟁력 높인다는 명분, 결국은

국가책임 줄이고, 돈벌이는 허용…

강력한 권력 가진 이사회-총장 체제 구축

기업화에 맞서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없다


서울대 의사결정의 폐쇄성은 올해 들어 자주 논란이 되어 왔다. 상반기에는 총장추천위원회 정책평가에서 꼴찌 한 후보를 이사회가 총장으로 선택하면서 이사회에 대한 학내외의 규탄이 이어졌다. 7월에는 서울대병원장을 지내며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이 최초의 학외 이사장 자리에 올라 학내 구성원들을 술렁이게 했다. 오는 12월에는 이사의 1/3 이상이 교체되는데, 후임 이사 후보 추천부터 임명까지 모두를 스스로 진행하는, 사립대학보다 더 심한 ‘자기선출구조’를 자랑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와 다를 바 없는 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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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타파]


이러한 현상은 서울대가 ‘국립’대학 지위를 상실하고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법인화는 한나라당이 국회를 점거하여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후 2011년 12월에 시행됐다. 법인화 찬성론자들은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확보하고, 대학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국가 재정에서 독립하자고 했고, 정부도 얼씨구나 좋다며 이를 수용했다. 법인화가 꿈꾸는 변화는 ‘대학 재정에 관한 국가 책임 경감, 대학의 수익사업 허용,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이사회-총장 체제의 등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가 교육 재정을 책임지지 않고 시장에 넘기겠다는 점에서 공기업 경쟁력 강화, 민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발생했다. 2013년부터 국고에서 관례적으로 편성하던 추가 예산이 편성되지 않음에 따라 매학기 520여명이 수강하던 악기 과목들이 폐지됐다. 이후에는 일부 단과대학에서 전공강의마저 무더기 폐지됐다.


기업기부·부동산투기까지…돈되는 일 뭐든지

대학은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학이 지금보다 돈을 더 벌려면 산학협력(産學協力)과 기부금 확대에 진력할 수밖에 없다. 대학이 산학협력에 매달리게 되면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정작 자율적인 연구 수행 대신 기업이 더 많은 돈을 줄 프로젝트에 맞춘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의존도를 높이겠다는 ‘기부금’에도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대학이 자본가들에게 거액의 기부를 받고, 기부금으로 지은 건물의 운영권한을 수십 년간 제공한다. 기부자들은 값비싼 외부업체 식당과 각종 상업시설을 유치하고, 임대료를 자신들의 안정적인 수입기반으로 삼는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서울대는 부동산에도 손을 댔다. 시흥시로부터 20만평의 토지를 무상으로 양도받고, 아파트 분양 수익으로 그 일부에 캠퍼스를 짓는다는 구상이다. 20만평의 토지를 양도받는 조건으로 서울대는 교육시설, 기숙사를 시흥시에 짓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시흥 신도시의 흥행을 위해 시흥에 가겠다는 학내 구성원이 아무도 없음에도 서울대가 무리하게 계약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 및 교육기능을 수행해야 할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려면 학교 구성원의 반발을 무시하고 대학을 재편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이사회의 자기선출구조와 총장직선제 폐지 및 임명제 실시는 법인화 체제 구축 과정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총장직선제·학내민주주의 복원도 요원

국립대 구성원들의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이름만 바꾼 채 국립대 재정에 관한 정부 책임을 줄이고 대학의 수익사업과 적립금 축적을 허용하는 국립대 재정회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교육부는 국립대의 총장직선제를 모두 폐지해놓았다. 법인화와 재정회계법은 대학이 기업과의 유착을 강화하여, 혹은 스스로 기업이 되어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라고 강요한다. 학교 구성원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법인화와 재정회계법의 원점 재검토와 교육재정 확충 없이는 총장직선제와 학내 민주주의의 복원도 요원하다. 2011년 이후 이렇다 할 투쟁 한번 벌이지 못하고 있지만 수업권, 학내 상업화 문제, 부동산 투기 등 학생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법인화의 병폐에서부터 기업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시도하고, 법인화법-기성회계법안을 뒤엎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정주희┃학생위원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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