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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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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악,

정규직 양보론으로 컴백하다

정권은 유한하나 노동유연화는 영원하다

 

이주용정책국장


 

정권은 유한하나 조국은 영원하다.” 526,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정부의 장관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박근혜정부로부터 이어진 국정운영의 연속성은 유지한다는 의미였다. 그저 빈말이 아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우리의 삶과 직결된 핵심 문제, 곧 노동에 있어서만큼은 지난 20년간 지속된 하나의 기조가 관철된다.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정권은 유한하나 노동유연화는 영원하다.”

노동 존중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고 취임 직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신정부. 얼핏 보면 노동유연화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대통령이 약속한 정규직화의 실체는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 아니다. 무기계약직, 자회사 직원으로의 채용 등 직접고용 책임은 피하고 임금과 처우는 오히려 악화시키는 형태다. ‘정규직화로 포장한 평생 비정규직인 것이다.

이 비정규직 대책과 맞물려 따라오는 것이 바로 정규직 양보론이다.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변경하는 대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을 후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정부 출범 직후부터 경제신문과 보수언론은 일제히 독일, 일본, 네덜란드 등의 모델을 거론하며 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임금을 공격하라고 주문한다. 박근혜의 노동개악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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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의 칼날은 정규직을 향한다

지난 525,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김영배 부회장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비난하며 비정규직 차별은 정규직 강성노조 탓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경총에 반성부터 하라며 쏘아붙이자 언론은 일제히 정부와 경영계 간 기싸움이 벌어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시장전략 역시 기본적으로 정규직 양보론에 근거한다. 지난 46, 문재인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은 바로 이 경총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무역협회 등 자본가단체들과 회동하고 이들의 노동유연화 요구를 수용했다. 당시 이 대책단을 이끈 단장이 현재 신정부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용섭이다.

이보다 앞선 323, 대한상공회의소는 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통해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신 정규직에 대한 각종 보호제도를 낮출 것을 요구했다. 이용섭이 밝힌 노동유연화는 이에 대한 화답이었다. 문재인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삭감을 감내하며 고통분담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조선일보가 관련 기사에서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양보해야 한다고 했던 노무현의 발언을 상기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신정부의 노동정책은 정규직 양보론과 노동유연화라는 자본의 요구를 바탕에 둔 것이다.

그렇다면 신정부에 대한 경총의 반발적 언사는 무엇 때문일까?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단체들은 생색에 그치는 정부대책 자체보다 이런 제스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열망을 촉발하는 점을 더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앓는 소리를 할 뿐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직접 나무라자 경총은 정부정책 반대가 아니라 노동계에 대해 한 말이라며 변명하듯 본질을 드러냈다. 주 공격대상은 노동계로 표현한 정규직이라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 ‘정규직 양보론과 노동유연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흔히 노동개혁으로 포장된다. 이는 지난 20년간 신자유주의와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현상이며 이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계급투쟁, 곧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전형적인 공세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추가적인 노동유연화로 대응하는 것, 저임금-불안정 노동체제를 만든 자본의 책임은 지워버리고 정규직을 희생양으로 몰아가 결국 노동의 하향평준화를 도모하는 것이 현 시기 노동개혁의 본질이다.

대선시기부터 자본과 언론은 재벌개혁 여론을 노동개혁 프레임으로 대체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정규직 과잉보호로 비정규직 차별이 심해졌다고 주장하며 이들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2008년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도 독일이 낮은 실업률과 70% 수준의 고용률을 달성한 이유가 바로 독일판 노동개혁인 하르츠 개혁 덕분이라는 것이다.

2002년 시작된 하르츠 개혁의 핵심은 미니-(Mini-Job)’으로 불린 비정규직 단기 일자리 확대 등 전면적 노동유연화였다. 당시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이던 슈뢰더 정부는 2003어젠다 2010’이라는 노동개혁정책을 추가 발표하며 쉬운 해고와 실업수당 삭감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2004년에는 파견법 개정으로 간접고용과 파견노동을 급속히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폭 늘어난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을 대체했다. 낮은 실업률과 고용률 73% 신화의 진실은 바로 불안정 노동의 팽창이었다.

하르츠 개혁 이후 15, 독일의 현재는 대안이기는커녕 노동유연화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독일의 비정규직 비율은 40% 수준으로 유럽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치이며 비정규직 임금수준 역시 정규직 대비 50~60%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이 저임금 노동자로 집계되며, 노동빈곤층 역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자본과 언론이 그토록 갈망하는 하르츠 개혁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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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생존과 소멸의 갈림길에서

하르츠 개혁은 노동유연화를 주장하는 세력에게 예전부터 각광받던 단골소재였다. 이미 노무현은 2005년 당시 독일의 노동유연화를 가리켜 과감한 개혁 승부수라고 치켜세우며 앞장서 본받고자 했다. 노무현정부는 파견법 개악과 기간제법으로 비정규직을 폭발적으로 양산하며 이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당장 박근혜정부에서도 하르츠 개혁은 다시 대안적 모델로 떠오르며 박근혜 노동개악의 근거를 제공했다.

이처럼 노동유연화와 정규직을 공격하라는 래퍼토리는 십 수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반복된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격이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는다는 점이다. ‘기득권’, ‘귀족노조프레임이 먹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규직 중심의 개별사업장 임금단체협상으로 고착화된 정규직 노동운동의 관성도 한몫했다.

지난 20년간 공공부문과 민간사업장을 가리지 않고 외주화, 사내하청, 파견노동 등 갖가지 형태로 비정규직이 현장에 만연했지만, 정규직 노동운동 내에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함께 나서기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임금과 고용을 유지하는 완충지대로 여기는 심리가 팽배해졌다. 최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사내하청 노조분리 사태나 자동차 판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노동자들과 경쟁관계라는 이유로 금속노조 가입을 무산시킨 사건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극단적 사례를 보여주었다.

자본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정규직 파괴는 정해진 수순이다. 정규직이 스스로 임금을 깎고 노동조건을 양보한다 한들, 자본은 그 다음의 양보와 후퇴를 요구할 것이다. 마침내 정규직이 사라질 때까지. 비정규직 철폐와 온전한 정규직화는 이제 비정규직을 넘어 정규직 생존의 문제다. 각개격파로 다 같이 비정규직의 굴레에 갇힐 것인가, 자본에 맞서 함께 싸워 함께 쟁취할 것인가. 생존의 키는 정규직 노동운동 스스로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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