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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7.14 18:35


삼양동 갈치 파는 노점상 할매의 죽음

 

최인기서울

 


날씨가 덥다. 그날도 어김없이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지난 619일 오후 2, 과거에 노점상을 하던 서원자 씨(70)는 시간이라도 때울 요량으로 오랜 노점상 지인인 박단순 씨(62)를 만나러 삼양사거리로 향했다. 오후 두시 경 멀리서 한눈에 봐도 용역깡패인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노점상에게 용역은 저승사자처럼 두려운 존재다. 노점상뿐만 아니라 철거민에게도 용역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오래전 장사를 하던 서원자 씨도 홀로 용역에 맞서 싸우면서 붙여진 별명이 욕쟁이 할머니였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에서 뒹굴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사람 죽이는 강제단속

노점상에게 판매하는 물건은 혈육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한 그 무엇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노점에 벌여 놓은 물건들이 압수라도 당할라치면, 갈치 같은 수산물은 하루도 못 가 상해 버린다. 노점상은 단속반이 흩트려놓은 아이스박스 뚜껑을 덮고 돌아섰다. 몇 걸음 옮겼지만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서원자 씨는 사태가 심상찮음을 직감했다. 노점상에게 달려가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국민안전처가 전국에 폭염 특보를 내린 한낮에 벌어진 일이다. 40분 만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출혈로 이미 노점상은 뇌사 상태에 빠졌다. 노점상은 수술조차 해보지 못한 채 625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유명을 달리한 노점상의 이름은 고()박단순 님이다.

그는 서원자 씨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한때 함께 장사했기에 누구보다도 고() 박단순 님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농사만 짓고 살던 남편은 술에 의존하다 알코올중독으로 15년이 넘도록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매달 70만 원이라는 돈이 남편에게 들어간다. 설상가상 친정어머니도 병환으로 몸져눕게 되어 병간호와 부양까지 감당해야 했다. 결국, 친정어머니도 1년 전에 돌아가셨다.

예전 삼양동은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지만, 이제 아파트가 들어서고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자 사람들은 더 이상 거리의 노점상을 이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단속도 빈번해져 얼마 전에는 벌금 20만 원을 내고 물건을 되찾아 와야 했다. 그나마 손에 쥐어지는 수입이 하루 2~3만 원 벌이지만, 노점상을 그만두고 싶어도 예순 넘은 나이에 특별한 생계 수단도 없는 터라 거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회견이 열리던 날 서원자 씨는 노점상의 죽음을 알리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당시 3명의 용역반이 출동했고, 으레 해왔듯 물건을 빨리 다 치우라며 고() 박단순 씨에게 재촉했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뒤이은 이게 뭐냐, 얼음 다 녹는다. 뚜껑을 덮어놔야지.” 박단순 씨의 이 말은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노점 단속 자체가 폭력이라며 서원자 씨는 울먹였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죽음이지만 노점상들은 분노했다. 용역반의 횡포가 벌써 몇 년째란 말인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갔단 말인가? 왜 이런 참담한 일이 사라지지 않고 재현되고 있는가?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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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도 사람이다, 사람을 철거 말라

2017년에도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는 100억 원 이상의 노점상 강제철거예산이 편성되어 있다. 노점상에 대한 강제단속은 용역반에 의한 집행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 박단순 님의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백주대낮에도 거리는 이들에 의해 폭력적인 무대로 뒤바뀌곤 한다.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강제단속을 주도한 강북구청에 있다. 그러나 강북구청의 태도는 무책임하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지극히 비인간적이다. 유가족과 노점상들에게 당장 무릎 꿇고 사죄해야 마땅함에도, 강북구청은 수급권자인 고인에게 지급될 보상금 475만 원을 마치 선심 쓰듯 던져주고 이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나아가 폭력적 강제철거를 방지하기 위해 경비업법 및 행정대집행법을 전면개정해야 한다. 용산참사 이후 몇 차례 개정이 되었으나 용역반이 법을 어기고도 처벌받는 조항은 여전히 미흡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촛불항쟁 때 다소 잠잠했던 단속과 철거는 대선 직후 폭풍처럼 밀려들고 있다. 새 정부는 노점상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일관성 있는 노점 상생 대책을 마련해 전국 각 지자체에 통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같은 야만은 전국 곳곳의 노점단속 현장에서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점상들은 한낮 뙤약볕 아래 살인 단속에 맞서 싸우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 가난한 이들과 연대한 투쟁을 청와대 앞에서 이미 세 차례나 전개했다. 강북구청 앞에는 농성장을 차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용역 깡패의 해체, 경비업법 및 행정대집행법의 전면개정과 노점대책 수립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고, 백남기 농민의 문제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명을 경시한 정권의 말로가 어땠는지 벌써 잊었는가? 이제 노동자 민중이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더 이상 쫓겨나지 않고 차별받지 않기 위해, 나아가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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