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남긴 것

 

장혜경기관지위원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1020,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원회’)59.9%의 찬성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곧바로 정부는 국무회의(1024)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파기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론화위원회에서 원전 축소 찬성 비율이 53.2%(유지 35.5%, 확대 9.7%)로 나온 점이다. 이를 반영하여, 정부도 24일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문제와 탈핵문제는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신고리 5·6호기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이며, 친핵세력의 탈핵에 대한 공격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탈핵 로드맵도 매우 미진하다. 정부의 책임성 문제 역시 짚어봐야 한다.

 

잘못 꿰어진 첫 단추, 공론화위원회

정부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를 결정한다고 하자, 친핵세력은 보수언론을 총동원해, ‘전문가주의논리를 폈다. 원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시민이 원전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핵발전 문제에 대해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하며 핵발전을 유지·확대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핵마피아들의 몸부림이자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을 놓고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공론화위원회는 그 출발부터 구성, 운영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우선, 정부는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지키려 하기 보다는 공약 이행 여부를 공론회위원회에 떠넘겼다. 또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와 탈핵을 구분해 판단하라는 모순되는 발언과 주문을 함으로써,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탈핵은 추진하라는 상호 충돌하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오는 데 일조했다. 탈핵에 동의하는 공론화위원회 참여 시민들 중에 이미 공사가 진행된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선 매몰비용과 경제적 타격 등을 고려하여, 공사 재개에 찬성표를 던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는 구성과 운영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 공론화위원회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시민참여단은 구성될 때부터 공사 재개 찬성자가 9% 많게 구성되었다. 연령층에서 미래세대인 10대는 제외시켰다. 신고리 5·6호기 당사자 지역인 울산시민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적은 비율의 수가 배정되었다(인구규모가 비슷한 대전이 3.6%, 광주가 3.4%가 배정된 반면 울산은 1.4% 배정). 당사자 및 주변지역(부산, 경주)의 위험부담률을 고려하여 참여 비율에서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는 탈핵진영과 투쟁주체들의 주장은 묵살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핵발전에 이해관계가 걸린 한수원은 공론화위원회에 공식참여토록 하였으며, 공론화위원회 활동 기간 중 벌어진 한수원의 페이스북 홍보에 대해 어떤 제제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 운동본부등에서 공론화위원회의 편향성, 불공정성을 지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 로드맵, 탈핵시대를 열 수 있을까

공론화위원회 활동 이후 친핵세력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이 친핵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이들은 공론화위원회의 탈핵 권고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공론화위원회로 천문학적 비용이 손실되었고, 핵발전이야말로 에너지 주권을 지키는 것이자 효자수출산업·경제성장동력이라면서, 탈핵의 길을 틀어막고자 한다. 당연히 1024일 발표한 정부의 탈핵 로드맵도 흔들고 있다.

이들이 목소리를 높일 만큼 정부의 탈핵 로드맵은 우리 사회를 탈핵의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는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면서 탈핵을 하겠다는 것은 서로 모순된다는 점은 앞서 이미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24일 발표한 정부의 탈핵 로드맵에서 여전히 드러난다. 신규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원전안정성 강화 대책 수립,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현 7%에서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 발표의 요지인데, 이 계획엔 한계가 많다.

첫째, 건설예정이었던 신한울 3,4(울진), 천지 1,2(울진) 건설은 중단하지만, 건설 중인 신한울 1,2(울진), 신고리 4,5,6(울산)는 계속 건설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또 사고위험성이 높은 노후원전에 대해서는 수명연장을 하지 않겠다고만 했지, 조기 폐쇄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 결과 문재인정부 기간 동안 핵발전소는 5개가 더 늘어난다. 공론화위원회가 건설 재개 시 안전기준 강화를 요구한 것에 비해, 안전기준 강화의 구체적 내용도 비어 있다. 공론화위원회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한수원은 유럽수출 원전인 EU-APR과 신고리 5·6호기의 안전기준에 차이를 두고 있다. 지진지대이자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 지역에, 그것도 안전기준에서 수출원전과 차이를 두는 핵발전소가 어찌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한 구체 대책을 정부는 내놓아야 한다. 핵발전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고준위핵폐기물 대책도 정부 발표에서는 빠져 있다. 결국 이번 공론화위원회가 남긴 것은 탈핵의 길을 열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핵마피아 세력를 무력화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무책임하고 모순적이며 안이한 정부의 탈핵정책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교훈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