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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새벽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새벽 630, 익산. 어둠이 이제 막 걷힌 공장 정문, 몇백 명의 경찰들이 완전무장을 했다. 이 모습에 노동자의 아내들이 긴장하고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불안해한다. 경찰들이 포크레인으로 정문을 부수고 일제히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내들이 울부짖는다. 우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도 운다.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끌고 나와 닭장차에 밀어 넣는다. 공장 옥상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노동자들이 소리 높여 구호도 지르고 노래도 불러보지만, 머릿속은 분노로 치밀어 오르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른다.

 

다음 날 새벽, 대전. 이미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를 차단한 경찰이 포크레인으로 공장 문 앞에 노동자들이 쌓아 놓은 바리케이드를 부수기 시작한다.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들이 공장 안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친다. 경찰은 순식간에 노동자들을 끌고 나와 복도에 꿇린다.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곤봉으로 툭툭 친다. 이윽고 굴비 엮듯 노동자들을 줄줄이 엮어 닭장차로 끌고 간다. 아내들이 울부짖고, 어린 아들이 아빠를 따라 닭장차에 올라타려 한다.

 

같은 날 새벽, 경주. 경찰이 공장 안으로 쳐들어가려 하나, 공장 안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투쟁 중이던 노동자들이 막아낸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새날이 올 때까지를 다 부르기도 전에 최루탄이 터지고 공장 안은 삽시간에 연기에 휩싸이면서, 경찰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3시간 만에 진압한다. 가족들의 절규 속에서 경찰은 노동자 350명을 경찰차에 태웠다.

 

다음 날 새벽 530, 청원. 노동자들이 공장 안으로 진입하려는 경찰들을 향해 호스로 물을 뿌린다. 진입에 실패한 경찰들이 포크레인으로 공장 담을 때려 부수고는 공장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노동자들이 전원 스크럼을 짜고 공장 마당에 드러누워 저항해보지만 결국 경찰들에게 끌려나와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새벽길을 따라 경찰서를 향해 간다.

 

같은 날 새벽 630, 평택.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공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노동자들이 흩어진다. 옥상에서 이 모습을 보던 한 노동자가 소리친다.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닙니다. 이 아픔이 슬픕니다. 이렇게 무너집니다.” 세상에서 제일 우렁차고 싶지만 목이 메어 노랫소리가 커지지 않는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같은 날 새벽 530, 문막. 아직 가로등 불이 켜 있는 새벽안개 속을 뚫고 경찰버스들이 속속 도착한다. 최루탄이 터지고 포크레인이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경찰들이 안으로 뛰쳐 들어간다. 아내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새벽안개와 최루탄에서 내뿜은 연기를 뚫고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5시간 만에 끝까지 저항하는 노동자 한 무리를 끌고 나와 닭장차에 태운다. 가족들이 닭장차가 출발하지 못하게 막아선다. 420명이 연행됐다.


같은 날 새벽 530, 아산. 공장 안에는 800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포크레인이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최루탄이 터지고 페퍼포그가 공장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하늘에는 헬기가 떠돌고 있다. 공장 안의 불길 너머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른다.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 탓에 11시경에서나 체포 작전이 끝났지만 아직 옥상 위에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남아 있다. 경찰이 옥상 철문을 철퇴로 굉음을 내며 부순다. 그 소리를 들으며 옥상 위 노동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 부른다. 한 노동자가 힘차게 팔을 흔들며 노래한다. “어차피 우리는 한 배의 운명이니까. 우리가 건설할 세상을 향해 앞으로!” 그 노동자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돌아서 우는 동료들을 한 명씩 포옹한다. 이 투쟁을 책임지고 있는위원장이다. 경찰은 오후 3시쯤에 옥상의 지도부를 연행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 투쟁을 모두 진압하는 데 성공한다.

 

1998년 파업 16일째 만도기계 7개 공장에서 91일에서 3일까지 사흘간 새벽 무렵에 벌어진 일이다. 김대중정부에서 노동자 투쟁에 공권력을 투입한 첫 번째 사업장이다. 노동자의 새벽은 언젠가 한 번은 이런 새벽을 맞이한다. 아내와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고 흐느껴 부르는 동료의 피맺힌 노랫소리를 들으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새로운 노동자의 시작을 무겁게 결심하며, 그런 새벽을 맞이한다. 만도기계 노동자의 이 사흘간의 새벽을 우리는 <우리 다시 시작하자>*에 담아냈다. 노동자의 새벽, 그것은 어제와는 다른 노동자의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199811/ 30/ 제작 : 만도기계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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