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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은

곧 체제의 심장을 향한다

2018년 이란의 반정부 시위를 지켜보며

 

최재훈경계를넘어


59-국제_이란 반정부 시위01.jpg

  

평소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지리적인 개념으로서의 중동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또 다른 명칭이 아랍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치게 된다. 굳이 복잡하게 따져볼 필요 없이 분명히 틀린 상식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인구가 3천만 명을 훌쩍 넘는 소수(?)민족 쿠르드를 비롯해 그 지역에는 아르메니아, 앗시리아, 투르크멘 등 여러 다양한 민족들이 수천 년 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랍민족이 다수가 아닌 두 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대 다수가 페르시아 민족인 이란과 유대인들이 주류를 형성한 이스라엘(참고로 이스라엘 시민권자 가운데 약 25%는 아랍인들이다)이 바로 그들이다.

 

이란 vs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그리고 미국

다들 알다시피 20세기를 거쳐 오면서 이들 두 나라는 아랍 국가들 틈바구니에서 지역의 주요한 행위자로 자리매김해왔고, 아랍 국가들의 큰 형님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그리고 투르크 민족의 터키와 지역의 맹주 자리를 놓고 경쟁해왔다. 그런데 근래 몇 십 년 사이에는 민족이 아닌 종교를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 왕정국가들(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 등)의 이슬람 수니파 연합과, 이란을 중심축으로 해서 이라크-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연결되는 시아파 연합, 갈수록 유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노골화하는 이스라엘, 이러한 삼각구도의 경쟁 관계가 형성돼왔고 그들 서로 간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왔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과 2015년부터 본격화된 예멘 내전, 그리고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두 나라가 본격적인 밀월 관계를 형성해 공동으로 이란에 맞서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7년 연말부터 2018년 연초에 이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만면에 희색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신난 건, 다름 아닌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대이란 강경파들이었다. 대선 운동 기간 때부터 2015년에 미국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이 이란과 체결한 핵 합의(정식 명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가리켜 역사상 최악의 협정이라고 악담을 퍼부어 온 트럼프는 이란의 시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얼마나 신이 났던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자신의 트위터에다 올렸다.


마침내 이란 국민들이 잔인하고 부패한 이란 정권에 맞서 행동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바보같이 이란에게 건네준 돈은 죄다 테러리즘과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국민들은 먹을 게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인권도 없다.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이스라엘 대사를 역임한 대니얼 샤피로는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에 대이란 강경파인 마크 두보위츠와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핵 합의에 대해 오랫동안 견해를 완전히 달리해왔다...그러나 당파나 핵 합의에 관한 입장을 떠나 모든 미국인들이 잔인하고 부패한 통치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이란인들의 열망을 지지해야 한다는 데 있어서는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의견일치를 이뤘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1979년 수립된 이슬람 공화국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는 점에서는 공화당원이건 민주당원이건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금세 열기가 가라앉아 버린 찻잔 속의 태풍 같은 형국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거다. 과연 왜일까?

 

2009년과 2018년은 무엇이 다른가

그간 이란의 정치와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번 반정부 시위 소식을 접하고 필시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대선에서 강경파인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가 개혁파인 미르 후세인 무사비를 29%라는 예상 밖의 큰 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던 2009년의 이른바 그린 무브먼트말이다. 그러나 보안경찰과 혁명수비대, 흔히 바시지(동원대)라 불리는 친정부 폭력배들의 거센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각자의 집 지붕에서 구호를 외치다 사라지는 숨바꼭질 시위를 벌이면서까지 몇 달 동안 끈질기게 버텼던 당시와 불과 보름 만에 급격히 가라앉은 이번의 시위 지속 기간의 차이, 그리고 한 번에 최대 3백만 명을 기록했던 2009년과 아무리 많아도 천 명을 넘기기 힘들었던 2018년 시위의 규모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때와 지금의 시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2009년에는 대중 시위가 수도 테헤란을 중심으로 주요 대도시를 무대로 했던 반면, 이번에는 1228일 처음으로 시위가 시작된 인구 2위의 도시 마슈하드를 제외하고는 중소도시와 시골마을들에서 주로 시위가 벌어졌다는 점이 달랐다. 자연스레 시위대의 면면 또한 달라서, 2009년에는 대도시의 세속주의 성향의 교육받은 자유주의 중산층들이 조직적으로 시위를 이끌었던 반면, 이번에는 보수적이고 신앙심이 강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중하층 노동자들이나 실업자들이 별다른 지도부도 없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오히려 작년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를 지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대도시 중산층들은 이번 시위와는 거리를 두거나 심지어는 비판적인 입장을 표출하기도 했다. 개혁에 반대하면서 현 정부를 공격해온 보수파들이 시위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실제로 시위 초기에는 그런 도시 중산층 개혁파들의 그런 의심도 영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보수 이슬람 강경파들이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텃밭이던 중소도시와 시골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해 아주 관대한 모양새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헬멧을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시위대들을 사냥하듯이 체포해 마구 두들겨 패고 끌고 가는 장면으로 전 세계적인 악명을 떨쳤던 2009년의 강경보수파 폭력배들이나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이자 사실상의 실권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보위하는 혁명수비대원들도 이번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가 본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슬람 보수 강경파 배후설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시위대들 사이에서 로하니(대통령)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와 더불어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성직자들에게 죽음을, 혁명수비대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수도 테헤란에서는 시민들이 하메네이의 집을 향해 행진하다가 경찰에 막히자, 그의 사진을 찢고 불태우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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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은 곧 체제의 심장을 향한다

그렇다면 이제 시위가 촉발된 원인과 배경이 좀 더 명확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2015년 서구 열강들과의 핵 합의를 통해 중도 개혁파인 하산 로하니 정부가 기대했던, 그리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핵심은 다름 아닌 경제의 재건과 성장, 일자리 창출이었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가 한국 정부를 압박해 이란의 석유 수입을 금지하도록 강제했던 것과 같은 강력한 경제제재로 인해 하루 150만 배럴까지 떨어졌던 이란의 석유수출이 이제 하루 250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때마침 석유수출 가격도 60달러 이상으로 올라가 안정화됐고, 그 덕분에 이란의 경제 성장률은 2015년의 2퍼센트 성장에서 이듬해 6.4퍼센트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렇게 나아진 경제 상황은 온돌방의 윗목만 훈훈하게 데웠을 뿐, 아랫목은 여전히 냉골인 채 그대로였다. 실업률은 2015년의 10퍼센트에서 지난 해 12퍼센트로 오히려 증가했고, 그 중에서도 청년 실업률은 28.8퍼센트에 달했다. 또한 공식 물가상승률만 해도 경제성장률에 육박하는 5퍼센트였으나, 서민들에게 지급되던 석유와 등유, 식량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석유 가격은 50퍼센트, 달걀과 닭고기 가격은 40퍼센트나 급등했다. 반면 정부는 연말에 새해 예산안을 짜면서 서민들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이슬람 성직자들과 종교기관에 지원하는 돈은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나날이 궁핍해지는 삶에 지친 중하층 노동자들과 실업자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고질적인 부패문제 또한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구의 경제제재 기간 동안 급성장한 지하경제는 나날이 규모를 키워갔으며, 프랑스의 에너지기업 토털과 미국의 보잉사 같은 해외기업과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고위 공무원들과 성직자들은 두둑이 뒷돈을 챙겼다.

중하층 노동자들과 서민들은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정부 보조금 인상과 일자리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관료와 자본가, 성직자들의 배만 불리는 이 정권을 바꾸자, 불평등하고 부패하고 폭압적인 체제를 뒤집어엎자, 하는 결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이란의 반정부 시위 열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급속도로 식어버린 게 사실이다. 흔히들 지도부와 조직을 갖추지 못한 자연발생적인 시위의 한계를 그 원인으로 지적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체제 변혁보다는 개혁을 추구하는 도시 중산층 엘리트들의 외면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한다. 어쩌면 이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던 촛불시민들이 정권교체 후에 적폐청산이나 제도개혁 등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계급 간 불평등과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은 상대적으로 도외시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 현실과 닮아있는 듯하다. 한국과 이란 두 나라의 계급 운동이 동시에 극복해야할 과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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