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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4.30 22:08

노랑나비

 

노랑나비가 날아든다. 가슴에도 한 마리, 머리에도 한 마리 앉았다. 거리는 온통 노란 물결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노랑나비가 된다. 봄이 오면 거리는 노란 개나리꽃으로 덮인다. 그늘진 길가 구석구석이 노란 서양민들레 꽃으로 밝혀진다. 노란 꽃 사태 속에 노랑나비가 날아들면 봄 풍경은 완성된다. 올해는 4월이 다 가도록 또 노란 봄꽃이 다 지도록 나비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 가슴에 단 노랑나비 배지를 먼저 보았다.

노랑나비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나비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볼 수 있지만 봄에 더 나타난다. 노랑나비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건 노랑나비 애벌레가 먹는 먹이식물이 어디서나 흔히 자라는 토끼풀, 아까시나무, 개자리, 벌노랑이, 돌콩 따위 콩과식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나비가 되어 날아드는 꽃도 개망초, 민들레, 토끼풀처럼 사람 사는 둘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노랑나비는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 노랑나비가 좋아하는 토끼풀이나 아까시나무, 개자리, 개망초가 다 개항 이후 국내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그걸 보면 노랑나비는 옛날보다 요즘 더 사람 가까이서 살게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노랑나비가 사람들에게 정말 친숙하게 된 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싸움에서 노랑나비가 희망과 연대의 상징으로 쓰이면서부터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는 노랑나비로 뒤덮였다. 머리에 꽂고 가슴에 달고, 노랑나비 색종이에 희망을 담아 붙였다. 노랑나비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집회에도 날아들었다. 잊지 않기 위해 어디나 노랑나비를 붙였고, 4년이 지나면서 누구나 노랑나비를 보면 바로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었다.

노랑나비는 흰나비과에 속하는 나비다. 흰나비과엔 노랑나비 말고도 노란색 나비가 많다. 남방노랑나비, 극남노랑나비, 멧노랑나비, 각시멧노랑나비도 있고, 우리나라 나비 가운데 가장 흔한 배추흰나비나 큰줄흰나비도 노란색을 띠다 보니 자주 노랑나비로 착각하기도 한다. 거꾸로 노랑나비 암컷에는 백색형과 황색형이 있는데, 백색형 노랑나비 암컷을 배추흰나비로 잘못 아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고 연대하기 위해 붙이는 노랑나비는 노랑나비뿐만 아니라 남방노랑나비, 멧노랑나비와 노란색을 띤 배추흰나비를 다 아울러 이르는 것일 게다.

노랑나비는 오래 전부터 사람에게 친숙했던 나비다. 옛 그림에는 노랑나비가 자주 나온다. 나비를 즐겨 그렸던 조선시대 화가 남계우의 그림에도 노랑나비가 빠지지 않는다. 노랑나비는 전설 속에도 나온다. 병자호란 때 황해도 신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죽은 황아무개의 이야기다. 황아무개는 수백 명의 의병을 모아 적군에 맞서 싸웠지만, 힘에 부쳐 결국 죽고 말았다. 황아무개를 장사 지낼 때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슬피 울자, 노랑나비 한 마리가 마치 황아무개의 혼령인 듯 날아왔다. 그래서 그의 무덤에 노랑나비를 같이 묻고, 노랑나비 무덤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배추흰나비는 배추 따위 작물에 피해를 주어서인지 옛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노랑나비도 콩이나 완두 같은 작물에 피해를 주지만 그 피해가 크지 않고 또 콩과식물 잡초들을 더 잘 먹어서인지 옛 사람들도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노란색은 소박한 색이다. 봄을 알리는 색이다. 봄을 대표하는 노란색 개나리꽃에서 꾸밈없는 소박한 서민의 모습을 보게 되듯이, 날개에 봄을 닮아 날아오는 노랑나비 역시 소박하고 친근한 나비다. 노랑나비는 희망과 연대의 상징이 되었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늘 노랑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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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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