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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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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2001, 그때는 영상 배급의 주요 매체가 16비디오 테이프였다. 제작이 완료되면 6디지털 완성본을 16비디오 테이프 복사집에 넘기고, 며칠 후 복사된 테이프가 사무실로 몇 박스 들어오면, 테이프 끝에 있는 복사방지 태그를 떼고, 인쇄된 내지와 스티커를 테이프에 붙인다. 그런 다음, 테이프 케이스를 감싼 비닐 사이로 제목과 내용이 쓰여 있는 내지를 삽입하면 배급할 하나의 테이프가 완성된다. 제법 부피가 커서 배급할 테이프 박스들을 쌓으면 사무실이 가득하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이 단순 작업이 제작의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좋았다. 그것이 완전한 끝이니까.

이렇게 완성된 테이프는 대부분은 한 달 내에 사무실에서 자취를 감춰 필요한 사람들의 손으로 전달된다. 우리는 배급 분량을 미리 계산해서 복사를 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난 후 2달쯤 뒤에 누군가 작품을 찾으면 잔여분이 없어 사무실 편집 작업기를 이용해 소량의 복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수백 개의 배급테이프를 한 달도 아니고 근 10년이 넘게 껴안고 있다가 이사를 갈 때마다 조금씩 버려, 결국 3번의 이사 끝에 완전히 처분한 작품이 있었다. 제 시간에 배급을 못해서다.

 

정부와 노동자 간 피할 수 없는 대결

<바보공화국의 똑똑한 노동자들1,2>*2001년 해외매각으로 인한 노동자의 구조조정 투쟁에 관한 작품이다. 전년도에 이미 법정관리가 들어간 대우자동차를 정부는 이 해 초봄에 GM으로 헐값에 넘기면서, GM과 계약서에 사인하기에 앞서 노동자 1,750명을 정리해고 했다. 정부로서도 대우자동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했듯이, 노동 쪽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은 밀고 들어오는 구조조정 전선을 단 한 차례도 막아내지 못하면서 점차 뒤로 밀려나고 있었기에, 노동운동진영은 이 해 봄 대우자동차 투쟁에 전력을 다했다.

해외매각의 문제점과 정리해고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는 온갖 홍보물과 선전물과 교육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중 압권은 투쟁의 중반을 향하고 있던 410, 투쟁 중인 노동자를 경찰이 진압하면서 짓밟고 끌고 가는 모습이 당시 대우자동차 영상패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힌 충격적인 영상물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는 뉴스보다는 다소 분석적인 교육물이 필요하다는 데 민주노총과 의기투합했다. 딱 이것만 했으면 괜찮았을텐데, 우리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원래의 뉴스보다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뉴스가 다루지 못한 모든 것을 만드는 방식으로 갔다.

당시 정부와 노동자 양쪽 다 사활을 건 직접적인 대결이었기 때문에, 내일의 투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김대중 정부의 폭력성을, 해외매각의 문제점을, <바보>1편에 담았고, 이것에 맞서 노동진영은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지, 대우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가족들은 또 어떤 방식으로 투쟁에 함께했는지를 <바보>2편에 담았다. 원래 우리는 한 작품으로 기획했는데, 분석과 선동과 감동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담아내려는 욕심에 80분이 넘어가는 긴 작업이 돼 버렸다. 당연히 이 작업을 완성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렸냐면, 우리가 작업을 끝냈을 때는 이미 투쟁이 끝나 있었다.

 

시공간을 넘는 우리의 작업은 없다

투쟁을 노동자시민들에게 알리고, 투쟁 주체들을 독려하기 위한 영상물이 투쟁이 종료된 후에 나오니, 완성도를 떠나서 쓸모없는 영상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배급도 전혀 안 됐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가져 온 모든 책임은 우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다. 많은 작업자들이 몇 개월 동안 일한 비용들은 우리의 몫이 됐고, 이후 우리가 재정 악화로 좀 더 싼 사무실로 이사를 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사무실 한 켠에는 배급 못한 수백 개의 테이프가 쌓였다. 예전에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던 테이프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고, 그것을 볼 때마다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었다. “뭣이 중헌디!” 우리가 만드는 모든 작업들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너무나 제한적이고 유한한 어떤 것이었다. 그 시간에 그 공간에 필요한, 어떤 명분을 놓치면 결국 아무 것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자각이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에서 그나마 우리가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이다.

 

*<바보 공화국의 똑똑한 노동자들> : 20017/87/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노동자뉴스 제작단

1(43)_코너1 : ‘경찰공화국, 폭력공화국’(20), 코너2 : ‘바보공화국의 장사하는 법’(23)

2(44)_코너1 : ‘위기에 선 공화국’(32), 코너2 : ‘공화국의 노동자 가족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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