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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

죽음의 공장이 된 병원을 멈추자

 

전진한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하루에 세네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서울아산병원 입사 6개월 차인 박선욱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의 일부다. 고인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태움으로 고통 받았다. 부족한 교육을 받고 중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다. 유족들은 활달하고 자신감 넘치던 고인이 병원에서 일하며 점차 우울해 했다고 비통해 했다. 그런데도 서울아산병원은 고인이 원래 예민하고 우울한 성격이었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분노를 샀다.

그러자 매일 같이 태움과 과로노동에 시달려 왔던 간호사들이 침묵을 깨기 시작했다. 추모제에 모인 수백 명의 간호사들은 우리를 활활 태운 연료로 병원이 운영되고 간호사들은 재가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움직임은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동대책위’) 결성으로 이어졌다.

 

노동자와 환자를 쥐어짜는 돈벌이 병원

서울아산병원은 하루 평균 외래 환자가 1만 명이 넘고 지난해엔 매출액 1조 원 이상, 순이익 789억 원을 기록한 거대 병원이지만, 간호사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규간호사들은 16시간씩 일한다고도 알려진다.

한국의 병상 수 대비 간호사 인력은 OECD 평균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태움이 벌어지는 이유는 선배 간호사들이 도저히 신규 간호사를 교육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간호사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진짜 가해자는 이 구조를 만들고 이익을 얻어온 병원과 이를 방조해온 정부다. OECD 국가 대부분은 공공병원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민간병원이 90% 이상이다 보니 인력을 줄이거나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병원은 인건비가 4050%에 이르기 때문에 (제조업은 약 5%) 특히 그래왔다.

일하다가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은 처음이 아니다. 육체적 과로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야간노동으로 인한 수면장애, 만성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밥 먹을 시간과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생기는 위장장애, 방광염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병상 확대와 과잉진료를 부른 의료영리화 또한 살인적 노동 강도의 주원인이다. ‘의료 군비경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간이 소유한 병원들의 규모 경쟁은 심각하다. 괴물처럼 커져버린 서울아산병원은 2,700병상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고, 한국의 병상 수는 OECD 평균의 2.5배나 돼 버렸다. 늘어난 병상들은 불필요한 과다 진료와 처치, 수술로 손쉽게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료비가 가장 빠르게 오르고, 1인당 외래진료를 받는 횟수도 가장 많은 나라다. CTMRI도 많고, 다빈치 로봇수술 같은 안전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값비싼 의료기기도 많다. 건물과 설비에는 과다 투자하고 노동력에 투자하지 않는 자본주의적 이윤창출 구조 속에서, 환자들은 비용을 강탈당하며 건강을 잃고 병원 노동자들은 과잉진료에 동원되어 초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간호대 정원 확대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이는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간호사 배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평균 5.4년 만에 병원을 떠나고, 병원은 그 자리를 저임금 신규 간호사들로 돌려 써 왔다.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예비 인력을 늘리는 것은 병원 자본가들이 요구해온 정책일 뿐이다.

 

모두의 생명을 위한 투쟁

시민사회단체들과 간호사들이 모인 공동대책위는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병원의 책임 인정과 사과, 산업재해 인정,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간호사들을 혹사하고 산업재해를 방조한 서울아산병원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또 간호인력 충원 등을 위한 박선욱 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간호사 뿐 아니라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가 1명 많아질 때마다 환자사망률이 8%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호사가 많을수록 환자의 합병증이 줄고, 재원일수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병원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인과 치료의 경계를 물으며 불안과 압박 속에 일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영리화된 의료체계에서 환자 치유의 공간이어야 할 병원은 점점 죽음의 공장에 가까워진다.

서울아산병원에 반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에는 신입 간호사 채용 면접에 참여한 예비간호사들에게 고인의 사건을 언급하며 신입 생활을 어떻게 버틸 것인지 물었다고 알려졌다. 죽지 않고 버틸 수 있겠냐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여태껏 사과 한 번 없이 오로지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병원을 향한 문제제기는 계속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병원이 간호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도록 강제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인력충원을 전제로 하지 않은 조치들은 결국 무용지물이기 쉽다.

간호사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나섰고 우리 모두의 삶과 안전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여기에 손잡고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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