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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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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역사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 교도소 고문 폭행에 항의 하는 마창지역 노동자들 [사진 : 마창노련]




지난 728일 박정기 어른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명복을 빈다. 아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독재자의 손에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에게 민주화된 세상이 뭐 그리 좋았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영화 <1987>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감동과 세대 공감을 가져온 영화에 대한 불온한나의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영화 상영 내내 등장인물에 대한 논란이 지속된 데서 온 불편함이었을까, 주변의 무너져가는 주체들을 견뎌야 하는 게 힘들어서였을까.

이부영 전 의원이 안유에게 훈장이라도 줬으면 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고, 어떤 이는 고문 가해자를 미화한 영화를 보지 말자고 하기도 했다. 영화는 그들의 이후 행적까지 추적해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역사는 잊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좋다. 영화 속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재야인사 이부영에게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던 안유 보안계장 말고, 교도소에서 노동자를 고문하고 폭행한 역사 속의 안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사건에 관한 글은 김하경, <마창노련사>를 참고하여 2010년 한내 뉴스레터에 실었던 것을 빌려왔다.)

 

마산교도소 노동자 폭행 사건과 보안과장

19905월 총파업 투쟁 한 달 동안만 170여 명이 구속되었다. 마창노련은 감옥 안에서 마창노련 운영위원회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지도부와 핵심 간부들이 대거 구속되어 있었다. 19907월에 교도소 내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711일 소내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구속노동자들을 교도관들이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가족들이 항의했다. 가족과 교도소 측은 폭행 근절을 합의했으나, 돌아서자마자 더한 폭행이 자행됐다. 새로 부임한 보안과장 안유는 가스총을 옆구리에 찬 채 사동을 수시로 돌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소자를 조사한다며 끌고 가 한쪽 다리를 못 쓸 정도로 두들겨 패기도 했다. 725일 조직폭력사범의 부인이 면회를 왔다가 남의 주민등록증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접견을 금지당하여 이에 항의하자 교도관이 부인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폭행 사실이 알려지자 재소자 40명이 단식에 돌입했다. 시국사범뿐 아니라 일반수도 함께했다. 교도소 측은 항의하는 재소자들을 끌고 가 보안과 지하실에 가뒀다.

이 사실이 전 사동에 알려지자 재소자들이 저녁밥을 거부했다. 보안과장은 재소자들을 잔디밭으로 끌어냈다. “한 사람 앞에 3~4명의 교도관들이 달라붙어 손에 수갑을 채우고 팔과 발목을 포승줄로 묶은 뒤 다리를 뒤로 제쳐 대퇴부와 연결되게 묶어서 두 손에 채운 수갑과 두 발을 허리까지 꺾어질 정도로 세게 당겨 연결시켜 묶었다.” 속칭 비녀꽂기 고문이었다. 통닭구이도 자행했다. 그리고는 한 명씩 들고 가 패며 진술서와 죄를 달게 받겠다는 각서를 강요했다. 10시경, 보안과장은 35명을 0.7평 징벌방에 네다섯 명씩 감금했다.

지역의 단체에서 200여 명이 모여 교도소 내 폭력만행 분쇄 및 범시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공대위는 보안과장과 폭행교도관에 대한 고소고발, 대한변호사협회의 진상조사단 파견요청 등 다양한 대응을 조직했다. 지역 여론이 안 좋아지자 교도소 측은 폭행 사실을 시인하고 폭행 근절 합의사항 이행을 약속하고 일부 재소자의 징벌 징계 해제, 부상자 외진 등에 합의했다.

 

노동자 역사를 정리하는 글이기에 본인도 미화되었음을 인정한 안유라는 인물에 대해 적었지만 더한 것은 무너진 주체들이다. 박종철이 죽음으로 지킨 선배 박종운은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에 세 번이나 도전해 낙방했다. 박종철 열사 영정을 들었던 1년 후배 오현규는 2006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산에서 구의원을 지냈다. 노동운동의 상징 사진이 된 1988년 전국노동자대회 후 노동자들이 면도칼로 손가락을 그어 쓴 노동해방깃발을 들었던 이석행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어디 있는가.

 

노동자 역사를 기록하는 <한내>에서 일하는 나는, 오늘도 김종배 동지(1999827일 운명)가 쓴 <전노협 백서> 서문을 새기며 반성한다.

 

우리는 전노협을 통해 1980~90년대를 들여다보며 우리 생에서 다시 그렇게 불꽃같은 세월과 마주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전노협이라는 노동자계급의 강렬한 빛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굴의 투지로 삶 전체를 부딪쳐 감으로써 자기를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자유롭고자 했던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인간들의 자본에 대한 투쟁이었다. 전노협백서를 바로 역사 속의 그들에게 바친다. 설사 그들이 지금은 탕아가 되고, 적이 되고, 자신들이 경멸했던 산업사회의 쓰레기가 되고, 노동귀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그들의 1980~90년대 삶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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