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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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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9.03 08:47

집파리

 


더위를 피해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음식점에 가서 앉아 있으려니,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집파리 한 마리가 자기도 밥 먹으러 온 손님인 양 밥상에 날아와 앉았다. 밥을 먹는 내내 집파리는 같이 밥을 먹자는 듯 끈질기게 밥상 위 음식에 들러붙었다.

예전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이런 음식점엔 집파리 대여섯 마리쯤은 늘 날아다녔다. 파리잡이 끈끈이도 몇 개 늘어져 있고 끈끈이엔 거뭇거뭇한 집파리가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여름 내내 집 안엔 집파리가 있었다. 더위에 지쳐 늘어져 있을 때면 어김없이 집파리가 날아와서 몸에 흐르는 땀을 핥았다. 성가신 집파리를 잡고 또 잡아도 어디서 또 그만큼 날아와 빈 자리를 채웠다. 뒷간과 장독엔 구더기가 끓었고 골목에 즐비했던 쓰레기통엔 파리가 떼로 날아다녀도 그걸 당연히 여기며 살았다. 그때는 맨손으로 집파리를 잡으며 놀았다.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파리가 끓었고, 그 파리의 90퍼센트 이상이 집파리였다.

요즘은 집파리가 확 줄었다. 도시에서는 보기조차 힘들다. 지난여름 집 안에 날아 들어온 파리 몇 마리는 모두 금파리 종류였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통에서 본 파리도 대개 동애등에나 쉬파리였다. 집파리가 줄어든 건 무엇 때문일까? 약을 뿌려서 없어진 것일까? 사람 사는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집파리가 줄어든 건 사람살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뒷간이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고, 장독과 쓰레기통이 사라졌다. 그렇게 집파리의 삶터도 사라졌다.

사람을 성가시게 하고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바이러스성 간염 따위 질병을 옮기는 집파리는 없어져도 괜찮은 것일까? 곤충학자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집파리가 없어진다면 우리 사는 둘레는 오물로 덮일 것이라고. 집파리는 손에 꼽히는 지구의 청소부라고 말한다. 오래 전 하수종말처리장에 갔었다. 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새까맣게 파리떼로 덮여 있었고, 입을 열면 파리가 날아들까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때는 시커먼 파리와 파리똥이 더럽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파리도 하수처리에 큰 몫을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농업기술원에서는 집파리가 많이 발생하는 축사나 쓰레기 처리장에서 집파리를 없애려고 파리 방제를 위한 천적 이용 방법을 연구했고, 집파리의 천적인 집파리금좀벌, 모가슴풍뎅이붙이를 대량 사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집파리를 없애는 연구 대신 집파리를 이용해서 음식물 쓰레기, 가축 배설물을 처리하는 쪽으로 연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실제로 일본의 대학 연구소에서 양돈장에서 나오는 돼지 배설물을 집파리를 이용해 분해해서 퇴비를 만들고 구더기는 양식 물고기의 사료로 쓰는 연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2017127일자). 구더기로 만든 사료를 먹여 키운 물고기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닭 배설물로 키운 집파리 구더기를 돼지 사료로 쓰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다. 집파리는 2주면 알에서 어른벌레로 자란다. 암컷 한 마리는 6001,000개의 알을 낳는다. 이렇게 번식력이 강하고 한 살이가 짧은 데다 기르기 쉽고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와 가축 배설물을 먹기 때문에 돈을 들이지 않고도 질 좋은 사료와 퇴비를 얻을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가축 배설물을 처리해서 골칫거리인 환경 문제도 덩달아 해결된다. 이뿐 아니다. 집파리 구더기는 질병을 옮기지만 스스로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데, 몸속에 항균 활성 물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더기 몸속에서 뽑아낸 항균 물질은 병을 치료하는 항생제가 될 수도 있다. 병을 옮기는 집파리는 병을 고치는 약이기도 하다.

집파리를 쫓으면서 밥을 먹고 나니, 집파리 한 마리가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다시 날아와 앉은 집파리를 보다가 우리는 집파리가 더럽고 귀찮은 해충이고 그래서 없애야 한다는 것 정도밖에는 아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눈으로 보면 집파리 한 마리 속에서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적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

 


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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