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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차별과 배제가 

난민을 만든다!

 

권미정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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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2018년 초부터 6월까지 500여 명의 예멘 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왔고 난민신청을 했다. 난민신청 이후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예멘 난민들은 불안했고, 제주도민들은 관광객이 아닌 신분의 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서는 이집트 난민이 단식투쟁을 시작하였고 지난 91328일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유럽에서 난민 문제가 제기될 때에도 그건 국제뉴스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난민은 보트피플로 여겨지던 먼 존재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야 할 우리 곁의 사람이 되었다.

 

난민과의 동거, 왜 반대하나

예멘 난민신청자들 이전에도 한국사회에는 난민들이 있었다. 1992년 김영삼 정부 시절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2001년에서야 한국사회 첫 난민 인정자가 생겨났고, 20137월부터 국내법으로 난민법이 시행되었다. 2010423건이던 난민신청건수는, 세계분쟁이 증가하면서 한국으로의 난민신청도 늘어났다. 20142,896, 2017년에는 9,942건이 신청되었고, 2017년에는 121건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법에서는 자신의 국적국이나 상주국에서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 등으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고, 그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를 난민으로 지칭하고 있다.

요즘 한국으로 오는 난민이 늘어나는 이유가 취업을 위한 위장이거나 정부지원금 때문이라는 제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난민신청자는 난민신청 이후 6개월간 일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 기간에 한정하여 월 43만 원의 정부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6개월이 지나면 사업주가 3개월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등록을 하면 단순노동은 할 수 있다. 그리고 난민신청을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업을 핑계 삼아,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가 되기 위해 난민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2%대에 머물고 있다.

난민인권만 인권이냐, “무슬림 난민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성폭력과 테러 우려를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전 세계 인구의 1/4이 믿는 세계 3대 종교이다. 특정 종교를 믿는 이들이 전부 다 테러범일 수 없고 그들이 모두 잠재적 성폭력범도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편견이다. 한국인 중에 성폭력범이 있다고 모든 한국인이 성폭력범이 아니듯이 IS라는 테러단체가 있다고 하여 모든 무슬림이 테러집단은 아니다.

난민은 독재정권이, 경제적 불평등이, 다른 종교 가치관을 짓밟으려는 배제가,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제국주의에 의해 생겨나고 있다. 지역 간·종족 간 분쟁으로, 종교·인종전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삶터에서 쫓겨난 난민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폭력과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

 

편견을 걷어내고, 존재 그대로 받아들여야

난민은 종교적 자유를 위해, 정치적 탄압을 피해, 인권을 말살하는 상황을 피해 목숨을 걸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떠나온 사람들이다.

지난 914일 예멘 난민신청자 23명이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받았다. 예멘인들이 전쟁을 피해서 왔으며, 그것은 난민인정 기준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법무관은 정치적 견해 또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난민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난민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보다 난민심사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난민신청 서류를 내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난민들은 자신의 박해와 탄압을 증명해내야 한다. 증명할 문서나 증거서류는 있을 리 만무하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도 있다. 자신이 왜 난민인지를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데, 이제는 난민이라고 증명해 보이는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왜 다른 나라 사람을, 왜 다른 인종을, 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냐고? 왜 인간이 어울려 살아야 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하냐고 묻는 것과 동일하다.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 다름이 다양함으로 인정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무한착취를 위한 자본의 세계적 이동만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착취와 전쟁, 독재와 탄압이 난민을 만들었다. 우리를 찾아온 난민들에게 사회적 권리를 부여하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특정 종교나 인종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자.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은 인간 사이의 서열을 재생산하는 행위일 뿐이다.

난민신청자일 때부터 노동권을 어떻게 확보하고 보장할 것인지,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어떻게 해소해나갈 것인지. 또 젠더감수성, 민주주의 의식, 아동교육 등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과 공존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난민 없는 세상은 전쟁과 착취, 지배가 사라진 평화와 평등의 지구에서 가능하다. 난민을 우리와 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시작이다. 더 나아가 난민을 만들어내는 정치와 사회를 바꿔내야 한다. 난민의 보편적 인권·노동권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난민 없는 세상을 위한 국제연대투쟁이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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