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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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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인정 넘어 

노동자 알 권리 쟁취로 

나아가는 초석 되길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기여하는 운동으로 도약해야


     좌담 일시 : 2018119() 11, 반올림 사무실

     진행 : 임용현 기관지위원장

     패널 :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민중공동행동 재벌특위), 조승규(반올림 상임활동가·변혁당 서울시당), 재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변혁당 사회운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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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일 삼성과 반올림이 2차 조정 재개 및 중재 방식 합의서에 서명하고, 1,023일 동안 이어진 반올림 농성을 해제한 지 근 100일 만에 최종 중재판정이 나왔다.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원회’, 조정위원장 김지형)>112일 공표한 중재판정 및 권고안에 대해 반올림 투쟁을 함께했던 활동가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이번 중재판정의 의미와 향후 반올림 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좌담을 열었다.

  

조정위원회 중재판정서의 사회적 의미

용현지난 112, 조정위원회의 중재판정서와 권고안이 나왔다. 중재판정의 경우 크게 보면 지원·보상삼성전자의 사과’, ‘재발방지 및 사회공헌’, 이렇게 세 축으로 이행과제가 도출되었는데, 이번 중재판정 내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각자의 견해를 나눠보자.

 

상수 다른 걸 다 떠나서 문제해결에 이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조정위원회가 1차 조정절차에 들어가고 조정안이 나온 뒤에도 삼성이 이를 거부하고 해결을 미루면서 반올림의 농성이 시작된 것 아닌가. 삼성직업병 문제해결이 지체되고 천 일 넘게 농성이 이어지는 동안, SK하이닉스나 LG디스플레이 같은 여타 전자산업 부문에서 보상대책이 만들어지는 등 굉장히 많은 진전들이 있었다. 이렇게 직업병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성과들이 있었고, 그런 변화 뒤에야 삼성이 버티고 버티다가 해결 국면까지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기약 없는 싸움을 끝까지 버텨주신 피해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든다. 어쨌거나 여지껏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텼던 삼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다.

승규상수 동지가 아쉬운 지점을 거론하셨으니, 저는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짚어보겠다. 이번 중재판정은 우리 사회에서 반도체·전자산업과 직업병 사이의 관련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조정위원회의 최종 중재판정이 언론보도를 통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저희 사무실에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특히, 오래 전에 반도체·LCD공장에서 일하셨던 분들은 운이 없어서 병에 걸린 줄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언론보도를 접하고 나서야 직업병이란 걸 알게 됐다는 말씀도 하신다. 물론, 다른 기업에서도 기업보상시스템이 구축됐지만, 아무래도 삼성이 국내 최대의 반도체·전자산업 기업이기 때문에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다 확실히 하는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재현일단 지난 11년간 삼성이 부정했던 세월을 좋든 싫든 인정하게 됐다는 게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지금까지 직업병 피해로 희생된 사람들이 몇 명이든 모조리 부정했던 삼성의 태도를 사회적 운동에 힘입어 바꿔냈다는 것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조정위원회와 각계 전문가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저는 무엇보다 반올림 운동의 사회적인 성과에 주목하고 싶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도 망한다’,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필요없다는 식의 신화가 공고한 현실에 반올림 운동이 균열을 일으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가 드러나는 것을 넘어서 산재 인정이나 대법 판결, 제도적 변화 등을 경유했던 반올림 운동의 그간 노력들이 지금의 중재판정으로 일정하게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상수지원·보상 내용 자체에 한해서 본다면, 폭넓게 보상하되 보상액은 낮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우리 사회의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수단과 함께 잘 조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조정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판단

용현중재판정에서 다룬 3대 의제(사과·보상·예방) 외에도 조정위원회는 조정당사자 및 국가와 사회에 대한 권고를 별도로 발표했다. 권고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승규아무래도 조정위는 중재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권고안 역시 조심스럽게 작성했다는 인상이 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안에 기재된 내용들은 의미 있는 대목이 상당히 많다고 본다. ‘유해화학물질 알 권리라든가 산재입증책임의 문제라든가, 이에 대한 조정위의 권고는 앞으로 반올림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상수사실 삼성이 사회적으로 했던 약속들을 제대로 이행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구체적으로 얼마의 액수를 출연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을 적시한 경우(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에도 입을 싹 닫고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조정위가 권고한 노동건강인권선언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록 노동건강인권선언이 구속력 있는 조약이나 규칙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분명히 들어가 있다. 가령, 유해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기업이 영업비밀로 보호해야 할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역사회와 노동하는 사람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권고가 그렇다. 이런 내용들은 추후 우리가 삼성에게 따져 물을 합리적 근거를 구성하기 때문에, 추후 이런 부분들을 삼성이 약속하게 만들고 그것을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종 중재판정에서 아쉬운 지점들

용현(조정위원회에서도 중재판정서 중재판정 이유항목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지만) 삼성과 반올림의 교섭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이번 조정(2차 조정)은 양 당사자가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기로 사전에 합의하는 중재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실상 조정위원회에 조정의 내용과 방식이 일임된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미완의 과제가 있다면, 향후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이야기해보자.

 

재현다소 조심스럽긴 하나, 중재방식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오랜 진통 끝에 결국 중재방식으로 삼성과 반올림이 합의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삼성이 사회적 대화를 통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제 없는 보상에 나설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재 발표나 합의서명식을 한 장소도 삼성전자가 아니었는데, 이것이 혹여 자기 책임이나 잘못을 면피하고자 취한 방식이 아닐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상수중재판정서가 나오고 나서 그간 반올림에 피해 제보를 하지 않았던 분들의 전화상담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이번 중재판정서에 담긴 내용들은 사실 삼성직업병 투쟁이나 법원 판결을 토대로 나온 측면이 있는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례들이 최근 전화상담을 통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질병이나 발병 시기, 근무기간 등 중재판정에 포함되지 않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진즉 이 문제가 알려졌더라면 중재판정에도 영향을 미쳤을텐데, 그런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아무튼 이번 판정이 나오고 나서야 반올림도 뒤늦게 파악하게 된 경우이고, 앞으로 10년 동안 지원보상위원회가 존속하는 동안 이 같은 사례들이 더 확인될 것이다. 그런 사례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아쉬움을 결과적으로 갖게 되고, 한편으로는 삼성전자 반도체·LCD사업장 이외에도 직업병 피해 사례들이 최근 들어서 더 드러나고 있다. 애초에 협상을 시작했던 상대가 삼성전자 DS부문이었다는 한계를 결국 뛰어넘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상범위가 삼성SDI, 삼성전기 등의 사업장으로 확대되지 못한 측면도 아쉽게 생각한다.

승규조정 결과의 아쉬움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반올림 운동이 어디까지 얼마나 왔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본다. 퇴직 후 발병기간이나 보상 대상 질환 같은 문제도 과학적 근거를 축적한 성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반올림에 피해 현황이 제보되고 산재신청하고 싸워온 사례들이 쌓여서 지금의 조정 결과가 나온 것 아닐까. 이번 지원보상 대상 영역에서 벗어난 분들의 경우, 앞으로 이 문제를 사회화하고 그 분들도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들의 남아있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반올림과 시민사회에 남겨진 과제

용현이제 1127()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앞두고 있다. 협약식에서는 삼성의 사과뿐만 아니라, 지원보상위원회 구성을 비롯한 이행계획들이 발표될 예정이다. 앞으로 중재조항 및 권고안이 착실히 이행되기 위해 반올림과 시민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상수우선, 삼성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 때까지 시민사회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비판과 감시를 부단히 이어가야 할 것 같다. 물론, 여기까지 온 데에는 삼성이 처한 사회적 위기와 조건도 분명히 작용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꽤 많이 왔다. 그래도 삼성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인 만큼 마지막까지 지켜보자고 부탁드리고 싶다.

재현시민사회도 반올림 운동을 함께 만들어왔던 주체이기 때문에, 중재판정에 대한 평가와 의미, 그리고 11년의 반올림 시즌1’ 활동에 대한 결산을 같이 나누는 시간을 조만간 가졌으면 좋겠다. 또한, 반올림 운동의 과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어떻게 이행해나갈 것인지, 이런 고민들을 나누며 함께 가야 할 것 같다.

승규중재조항이나 권고안을 이끌어냈던 현재까지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향후 이행 과정도 자동적으로 되리라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관심 갖고 또 의미 부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우리 뜻대로 관철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만큼, 이행과정 역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반올림 운동 11년의 소회

용현각자 반올림 운동을 시작하게 된 시기나 조건이 다르긴 한데, 이제까지의 소회를 들어보고 싶다.

 

상수농성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가장 크다. 제가 반올림 운동에서는 막차를 탄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제가 반올림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삼성직업병 문제가 이제 막 긴 터널을 지나 저 멀리서 빛이 살짝 보일 무렵이었다. 사실 출구가 보이지 않던, 승리의 전망이 불투명하던 그 오랜 시절을 버텨왔던 피해 가족들과 활동가들에게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재현반올림 운동은 노동운동이기도 하고 시민운동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권운동이기도 한 특별한 활동이었다. 정말 많은 의제들과 많은 연대들이 반올림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왔고, 이것을 함께 경유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산재 피해자들, 유가족들이 주체가 되고 활동가로 성장하면서 함께 투쟁을 만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피해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을 만났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반올림 운동 전체로 보나 앞으로 활동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승규상수 동지가 막차를 탄 것이라면 저는 대체 어디쯤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웃음). 제 경우에는 반올림 농성 거의 끝자락에 상임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투쟁에 대한 소회를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지금 이 성과를 마주하고 있고, 그 위에서 계속 운동을 해나갈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이 성과를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오신 피해자 분들, 시민사회 분들, 반올림 활동가 분들에게 정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앞으로의 구상과 계획

용현반올림에 부여된 사회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본다. 차근차근 중지를 모아나가야겠지만, 각자의 구상이나 욕심도 있을텐데. 마지막으로 향후 반올림 운동의 중심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재현너무 큰 바람일지 모르겠으나, 반올림이 11년을 보냈는데 실제 반도체·전자산업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방법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반올림 내부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다. 지금까지는 긴박하게 운영을 해왔고 사실 공대위 비슷하게 11년을 이어왔다. 앞으로는 운영이나 체계를 좀 더 정비해서 반올림 운동의 조직적 성과를 남기는 사업을 펼쳐나갔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승규상임활동가 각자의 몫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을텐데, 제 경우에는 특히 알 권리운동에 집중해보고 싶다. 그래서 오는 12월 인권주간이나 내년 2월 노동자건강권 포럼 같은 사업들을 통해서 알 권리 부분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는 운동에 좀 더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소송도 진행 중인데 이런 대응도 잘 해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알 권리를 높여보는 다음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상수반올림 투쟁이 아주 오랫동안 직업병 인정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었다. 어쨌든 직업병 인정의 폭을 넓혀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있다. 질환 대상부터 포함해서 그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꾸준히 계속해나가야 할 것 같고, 특히 반도체·LCD 사업장에 피해자들이 집중돼 있었는데 이제 전자산업 일반으로 확장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최근 이산화탄소 누출 사망사고에서 보듯이 삼성을 포함해서 화학가스 사고가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위험의 외주화문제도 중첩돼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감시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

삼성직업병 투쟁처럼 올해 대만에서도 RCA노동자들의 승리 소식이 있었다. 사실 대만 역시 한국처럼 반도체·전자산업의 중심지이고, 중국·일본을 포함하면 전 세계 반도체·전자산업의 심장부가 아시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반도체·전자산업의 노동안전, 노동권 문제를 대응하는 문제도 이제 정말 눈앞에 다가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

 

용현오늘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앞으로 반도체·전자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상으로 좌담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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