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미친자본의 감성훈련과 

‘30분 일 더 하기 운동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76-이땅노동운동사.jpg

1990년 서울지하철에서 실시한 장례교육 현장.

# 서울지하철에서 벌어진 일

영정과 까만 휘장으로 장식된 지하골방, 촛불과 향냄새,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 상복 입은 노동자들. 두세 사람이 염을 해 가상 사망자를 입관하고 그이 유서를 다음 사람이 낭독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상주와 조문객 역할을 하며 곡을 하고 절을 했다.

지난날을 반성하라.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라감수성훈련 직무교육이었다.

 

서울지하철을 예로 들었지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자본의 자기반성훈련 교육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명성전자는 노조간부 15명을 수련회에 끌고 가 관 속에 집어넣고 못질까지 하며 노조활동 포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자본은 노동자의 인간성까지 파괴하고자 했다.

이렇게 시작된 기업교육은 한마음교육, 가족교육 등 이름은 다양했지만 노사 간 대립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다물교육이나 가나안교육처럼 왜곡된 역사의식과 윤리정신을 강요하는 교육도 있었다. 자본의 목적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기업주체를 형성하려는 것이었다.

 

# ()대봉에서 벌어진 일

1991126일 신발 제조업체인 대봉에 근무 중인 생산직 노동자 권미경이 회사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권미경 열사 왼쪽 팔에는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노동과정 장악, 현장권력을 되찾기 위해 시간을 둘러싼 전쟁도 시작됐다. ‘5대 더 하기 운동이 그것이다. 19911122일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자본단체들은 기업체 10% 더 하기 운동 추진요령을 발표했다. 내세운 명분은 과소비 척결, 경제 살리기였다. 5대 더 하기 운동이란 “10% 절약 더 하기, 10% 저축 더 하기, 10% 생산성 더 제고하기, 10% 수출 더 증대하기, 자발적으로 일 더 하기였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자본단체와 관변단체들은 전진대회를 개최했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 9시 뉴스는 신발업계 노조 구사운동, 초등학생들의 절약운동, 일요일에도 일하는 노동자 등 보도를 통해 자본을 적극 거들었다.

‘30분 일 더 하기 운동19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 이전으로 노동조건을 되돌리려는 노동통제 정책이었다. 하지만 조회시간이 당연히 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일 더 하라면 더 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30분 일 더 하기 운동은 주로 노조가 없거나 어용노조인 곳에서 힘을 발휘했다.

세계 자본의 산업구조조정 흐름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한국 자본은 위기를 맞게 된다. 신발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산지역의 신발 사업장 기업주들은 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지만 그 이윤을 기술이나 신제품 개발 등에 투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애사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삼화의 ‘10분 일 더 하기 운동’, 진양의 불황극복 50일 작전’, 대신교역‘3무운동(무불량, 무이탈, 무미달)’, 세신의 무임금 1시간 일 더 하기 운동등 노동 착취가 극에 달했다. 대봉은 아디다스 등의 신발을 제조하여 수출과 내수를 겸하고 있는 전체 사원 3,500명 규모의 대규모 수출 업체였다. 이 회사는 작업강도를 강화하기 위해 ‘30분 일 더 하기 운동을 모방한 관리방식을 취했다. 그 속에서 여성 노동자가 죽어갔다.

 

노동자 의식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멈출 수 없는 투쟁

노동자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노동자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그 중심에 교육활동이 있었다. 자본은 노동조합보다 유리하게 노동자를 동원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의식을 전취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자본의 교육 대상은 노동자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 가족, 지역사회 구성원에까지 확장되었다.

노동자는 생활임금 쟁취,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투쟁해왔다. 해방 직후 전평이 하루 8시간 노동제 쟁취를 내걸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8시간 노동제를 위한 해태제과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전노협의 주 40시간 쟁취 투쟁, 민주노총의 주5일제 쟁취투쟁으로 노동자들은 결국 2000년대 법 개정을 이뤄낼 수 있었다.

지금도 실제 현장에서 노동자 의식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사 대립은 끊이지 않는다. 회사 교육을 확대하고 노조의 개입을 차단하려 한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자본이 노동시간을 가지고 꼼수를 내기도 한다. 의식과 시간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대립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참고 및 인용

- 정경원, “30분 일 더 하기 운동과 권미경 열사”, 노동자역사 한내 뉴스레터 2017.12.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