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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개악,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깎는다


밤송이┃서울



지난 2018년 7월 16일, 문재인은 2019년도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된 후 자신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실현이 어려워졌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그보다 앞선 5월 28일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시키는 데 앞장선 바 있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2월 14일, 문재인은 자영업자‧소상공인과의 만남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의 시차로 인해 고통을 줘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며칠 뒤, 실제로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임금을 삭감한 현대그린푸드*에서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사측의 답이 걸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것이니 정부를 원망하라.” 조합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무시당했다.


산입범위 확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개악 ‘버전 2’, 바로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이 다가온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 상황 등”을 추가하는 게 골자다. 정부‧여당은 이 개편의 목적이 최저임금 인상 폭을 억제하는 것임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노동부 장관 이재갑,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목희 등 주요 인사들이 최근 잇따라 ‘내년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기 쉽지 않다’며 압박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 노골적인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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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무력화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 [출처: 금속노동자(임연철)]



최저임금 인상 ‘원천 봉쇄’


한국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저임금 체제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 결정적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에 ‘경제 상황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한다는 것은 얼핏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위기의 책임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주요 재벌 사내유보금이 900조 원에 달하고, 국내 기업이 한 해 배당금으로 뿌리는 돈만 2018년 32조 원을 기록해 2014년 16조 원보다 2배로 늘었다.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아울러 결정구조를 이원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른바 ‘전문가’들로 구성하는 구간설정위원회는 자본의 요구와 이해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결정위원회는 그렇게 정해진 구간 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제도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다. 저임금 노동자는 계속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라는 강요만 남는다.


무엇보다 정부 개악안은 그동안 자본과 보수세력이 계속해서 유포했던 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위기의 원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막대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자영업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던 구조적 원인은 어마어마한 임대료,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불평등한 관계 등에 있다는 점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통계상으로도 ‘고용원을 두지 않은 자영업자’의 폐업은 늘어난 반면,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 수’는 늘어났다. 물론 자영업 위기는 이미 오랫동안 지속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최저임금 인상 폭이 늘어났다고 자영업 위기가 새롭게 나타났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결국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경제 위기의 비용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특히 최저임금 개악의 결정타를 맞는 저임금‧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정부와 자본에 제일 만만한 건 결국 최저임금이다. 왜 그럴까?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노동자 대다수는 노동조합이 없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동결이나 삭감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귀족노조’, ‘강성노조’라며 악담을 퍼붓는 자들이, 가장 취약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제일 먼저 제물로 삼는다.



‘더 세밀하게 차별하자’


이것조차 끝이 아니다. 현재 보수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최저임금 개악안들을 보면, 모두 자본이 오랫동안 요구했던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포함하고 있다. 지역, 업종, 규모, 연령, 국적 등 구분할 수 있는 모든 구분을 총동원해 최저임금을 차별적으로 주자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빌미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자들이, 가뜩이나 차별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더 세밀하게 차별하자’고 주장한다.


저들은 ‘해외에서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일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 대표 사례로 종종 거론하는 일본을 보자. 최저임금의 지역별‧산업별 차등적용을 오랫동안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장기불황, 노령화, 인구감소가 맞물리면서,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수많은 지방이 황폐화‧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도시와 지방간 소득 격차 역시 극심하다.


결국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 적용은 가뜩이나 현재의 인구 감소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방에 활력을 가져오기는커녕, 인구 감소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산업‧업종별 차등 적용은 노동자 사이의 차별과 위계를 고착화하고 더 심각하게 만든다. 국회가 악착같이 최저임금을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개악안들을 줄지어 세워둔 지금, 국회 담장을 무너뜨린 분노가 어찌 ‘과한’ 것일 수 있겠는가!



* 현대그린푸드: 범 현대그룹인 현대백화점그룹 소속 계열사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백화점 사내식당 등에서 급식과 식품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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