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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투쟁 없이

자본주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어김없이 올해도 최저임금 결정 시즌이 돌아왔다. 최저임금을 향한 보수세력의 공세는 극에 달한다. 보수야당과 경영계는 동결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는 최저임금 인하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이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의 이론적 배경으로 내세웠던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족보 논쟁’도 거세다. 말하자면 소득주도성장론에 이론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인데, 보수세력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신봉하는 주류경제학과 맞지 않고 현실에서 입증된 적도 없다며 ‘좌파 이론’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한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등 애초 내세우던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을 이미 포기했지만, 정치적 경쟁 속에서 정권의 상징성을 내다 버릴 수 없기에 명목상으로는 ‘소득주도성장론을 포기한 적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난 5월 17일 <중앙일보>에 “마르크스 연구자도 소주성(소득주도성장) 비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앞서 5월 13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저임금·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접근방향: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의 한계와 대안”)를 두고 쓴 기사였다. 물론 좌파·사회주의자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간단히 말해 소득주도성장론은 케인즈주의에 근거해 ‘임금소득 증가 → 소비지출 증가 → 자본의 이익 증가 → 투자 활성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선순환은 일시적일 뿐이며, 이윤 창출을 위한 경쟁 과정에서 과잉생산과 이윤율 하락 경향이 발생해 투자 활성화가 아니라 자본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위 보고서는 소득주도성장론 비판에서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을 이기지 못하고 부정적 효과를 초래했으며, 저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아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중앙일보> 역시 보고서를 인용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잘못된 정책임을 주장하는 데 활용했다. ‘좌파도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한다’는 메시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을 앞둔 지금,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운동진영 내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관측된다. 소득주도성장론이 틀렸다면,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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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주노총]



최저임금 인상의 목적은 ‘자본주의 선순환’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소득주도성장론이 틀렸다고 최저임금 인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격이다.


먼저, 최저임금 인상의 목적은 자본주의 선순환을 만들거나 자본의 투자 활성화를 끌어내는 게 아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론의 내용은 그것이었고, 운동진영 일각에서 그 맥락에 동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는 자본의 투자 활성화 이전에 생계유지 자체가 곤란한 전반적인 저임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령,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자. 여기에서 최저임금위원회가 추산한 비혼 1인 가구 노동자 실태생계비는(2017년 연간 기준) 1달에 193만 원이었다. 2017년 당시 최저임금은 물론이고, 올해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약 174만 5천 원)보다도 많다. 즉, 현재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1인 가구 노동자 생계비조차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이 실태생계비도 빠듯하다. 예컨대 생계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주거·수도·광열비인데, 그 액수를 44만 6천 원으로 계상했다. 지역마다 주거비 격차는 있겠지만, 이 조사가 자가 보유자가 아닌 전월세 세입자를 대상으로 했음을 고려하면 이 정도 액수로는 원룸 셋방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이 생계비는 비혼 1인 가구 노동자를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가족 수가 늘어나면 생계비는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편견과 달리,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노동자의 80% 가량이 가구주나 그 배우자로서 해당 가구의 핵심 소득원이다. 1인 가구 생계비, 그것도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하루하루 벌어먹기 바쁜 최소한의 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최저임금을 끌어올리자는데 ‘나라가 망한다’라면, 대체 그 나라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이 사회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저임금 투쟁, 한발 더 나아가기


분명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영세 사업장 가운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사업이 망하는 게 아닌데도 이윤이 줄어드는 것에 반대해 호들갑을 떨면서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노동조합이 없는 상당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어쩔 수 없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액수를 감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최저임금 인상은 불가능하거나 실효성이 없는 걸까?


먼저 후자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을 포기할 게 아니라 오히려 단호하게 임금을 지키기 위해 싸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노동운동이 최저임금 투쟁을 중소·영세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만들기 투쟁과 결합시켜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만약 다단계 하청구조의 아래 단계에 있는 사업장이라면, 원청 대기업 노동조합이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로 내걸고 원청을 대상으로 투쟁하는 방안을 세울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나누자고 주장하지만, 이윤은 그대로 둔 채 노동자들끼리 제한된 임금을 쪼개는 게 아니라, 취약층․미조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와 임금 인상을 위해 자본의 이윤을 내놓으라고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 계급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 아닌가?


물론 전자처럼 정말 지불능력 자체가 없고 원청과의 공급사슬도 없어 최저임금 인상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장도 존재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쟁에서 밀려나는 이런 기업이 언제나 생긴다. 실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도 나온다. 생계비 수준도 안 되는 최저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과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실패다. 그렇다면 이 저임금을 강요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우회할 게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가령 실업자들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되 지금과 같이 단기․저임금 일자리가 아니라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공공부문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확충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혹은, 해당 저임금 산업부문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영역이라면, 국가가 나서서 공기업이나 공공시설로 운영하고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일자리를 만들도록 할 수도 있다. 예컨대 공영 식당이나 공영 숙박시설을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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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투쟁 없이 자본주의 넘을 수 있나


한지원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며, 저임금과 임금격차를 해결할 방안으로 제조업·대기업에서의 고용 확대를 제시한다. 그런데 “제조업과 대기업에서 고용이 증가하려면 이 부분의 임금이 조정되지 않을 수 없다”며,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당장의 이해관계를 포기하더라도… 원대한 사회개혁의 포부, 당장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요구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대범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막대한 이윤을 축적한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늘리도록 요구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간 사회주의자들 역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충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재벌 사내유보금 950조 원이 드러내듯 바로 그 천문학적 이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노동자들끼리 임금을 쪼개는 게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것인가? 이것이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와 다를 게 무엇인가? 무엇보다 그렇게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늘린다 하더라도,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모두 흡수할 수도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든 일자리 확충이든,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그 모든 것들은 자본의 반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을 이길 수 없는 게 아니라, 시장과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 방식의 투쟁을 반복한 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지난 2년간의 경험은 최저임금 인상이 여러 투쟁과 결합해야 함을 드러냈다. 앞서 거론했듯 중소 사업장의 노조할 권리 쟁취 투쟁, 취약층이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재벌·대기업의 이윤을 환수하는 투쟁,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충하고 대기업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는 투쟁 등 하나같이 이윤축적에 맞서 계급적 연대를 구축해야 할 과제들이다.


최저임금 문제야말로 현재 가장 날카로운 계급 대립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생계비에도 미달하는 최저임금조차 끌어올릴 수 없다는 이 체제의 현실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명 법적으로 최저임금 액수를 정하는 것만으로는 저임금 문제도, 이 자본주의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 문제를 우회한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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