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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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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이김춘택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경남



지난 5월 10일 12시, 거제 대우조선해양 PDC#1 광장으로 하청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점심밥을 거르고 광장으로 모여든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아래 ‘조선하청지회’)가 준비한 머리띠를 받아들고 줄을 맞춰 앉으며 광장을 가득 메웠다. 곧 2,000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들의 박수와 함성이 대우조선 야드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며 역사적인 ‘하청 노동자 총궐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모두 깜짝 놀랐다. 무법천지 조선소에서 매일매일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 못 하고 살아온 하청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모일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총궐기대회에 모인 2,000여 명의 하청 노동자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가슴 두근거리는 해방감을 맛봤다.



역사적인 하청 노동자 총궐기 대회


대우조선이 작년 말 정규직 노동조합(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과의 단체교섭에서 약속한 2018년 성과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3월 말 주주총회가 끝나면 지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주주총회가 끝나고 4월이 다 가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4월 26일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성과금이 지급됐다. 하청 노동자에게는 왜 지급이 안 되었는지, 언제 지급을 할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해명도 없었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원청 대우조선이 하청 노동자에게 성과금을 주면 불법이라서 못 준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참고 참았던 하청 노동자의 분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2019년 초부터 대우조선 현장은 하청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로 술렁이고 있었다. 2017년 7,330억 원, 2018년 1조 248억 원, 대우조선은 어마어마한 영업 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조선소가 어렵다며 몇 년 동안 하청 노동자 임금은 오히려 삭감됐고, 최저임금 인상을 편법으로 피해가기 위해 상여금 550%마저 없애버렸다. 더 빼앗길 것도 없었고, 더 빼앗아갈 명분도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하청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가 컸다.


도장업체 파워그라인더 노동자들이 먼저 나섰다. 2월 말∼3월 초 7개 업체 300여 명의 파워그라인더 노동자들이 일당 2만 원 인상을 요구하며 15일 동안 파업투쟁을 벌였다. 대우조선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하청 노동자의 집단행동이었다. 다급해진 하청업체들은 결국 일당 2만 원 인상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하청지회의 꾸준한 현장 활동은 하청 노동자의 요구와 분노를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했다. 빼앗긴 상여금 550%를 되찾기 위한 “되찾자! 550”운동을 2017년 말부터 지속해 온 조선하청지회는 2018년 말부터는 하청 노동자 임금인상 투쟁을 준비해왔다. 두 번의 설문조사를 통해 ‘시급 2천 원, 일당 2만 원 인상’ 등 하청 노동자 8대 요구안을 확정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원청 대우조선해양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파워그라인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파업투쟁을 함께하며 그것을 조직적인 투쟁으로 만들어나가려 애썼다. 대우조선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약속한 성과금을 지급하지 않자, 하청 노동자 총궐기대회를 결정하고 현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이번에는 꼭 하청 노동자가 뭉쳐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홍보하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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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


정규직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도 하청노동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총궐기대회로 모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9년 초부터 원하청 노동조합이 공동투쟁을 논의해왔기에, 이번 총궐기대회도 함께 결정하고 함께 준비했다.


점심시간 총궐기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뜨겁게 끓어오른 가슴을 안고 대우조선 대표이사가 있는 본관으로 행진했다. “대우조선은 모든 하청노동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라!” 하청노동자의 성난 목소리가 행진 대열을 따라 본관으로 향했다. 5월 14일까지 성과금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담긴 공문을 대우조선 인사총무 담당 상무에게 전달했다.


하청 노동자의 단결된 힘에 놀란 대우조선 원청은 결국 5월 14일 하청업체 통장에 성과금을 입급했다. 그러나 성과금이 아닌 ‘경영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합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업체별로 각각 차등 지급했다. 그리고 일당제, 직시급제, 물량팀, 이주 노동자에게는 성과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하청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우롱했다.


성과금은 지급되었지만, 5월 16일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는 2차 총궐기대회로 또다시 모였다. 비록 1차 총궐기대회에 비하면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800여 명의 하청 노동자와 2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 등 총 1천여 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참여했다. 특히, 2차 총궐기대회 현장에서 120명의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대규모 노동조합 가입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더 이상, 주면 주는 대로 받을 수 없다


조선하청지회는 1차, 2차 총궐기로 확인된 하청노동자의 힘을 바탕으로 하청노동자 임금인상 투쟁과 노동조합 가입 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두 번의 총궐기대회는 하청 노동자에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이제 현장에서는 눈치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동료들과 노동조합 가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주면 주는 대로 받을 수 없다. 2019년에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투쟁해서 ‘시급 2천 원, 일당 2만 원’ 인상을 꼭 실현할 것이다. 대규모 노동조합 가입으로 조선소에 하청 노동조합의 토대를 튼튼하게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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