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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6.1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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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한주]



20년 만에, 울산이 다시 꿈틀거렸다


김한주┃민중언론 <참세상> 기자



“이런 분위기는 20년 만에 처음 느낍니다.”


1987년 현대중공업에 노동조합이 탄생할 때부터 노조에서 활동해 온 박 모 조합원이 말했다. 박 씨는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다. 민주파 활동가로 활동해 오며 이런 투쟁을 간절히 원해 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5월 31일 밤. 그는 후배들을 등에 업고, 경찰과 용역에 맞선 파업 대오 최선두에 나섰다.



# 5월 30일 오후 5시


노동자들이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으로 물밀듯 밀려왔다. 한마음회관은 회사의 물적 분할을 의결할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 수백 명이 점거한 상황. 파업에 나선 조합원 2,500명은 한마음회관 광장에 모였다. 또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을 포함해 전국의 노동자 2천 명이 연대로 자리했다. 5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용역과 경찰의 농성장 침탈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투쟁의 각오를 다지고 모인 것이다.


기자가 이날 한마음회관 인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 도착 10분 전부터 이미 인근 도로는 경찰 버스로 가득했다. 한마음회관 건물 주변으로는 보호구와 헬멧, 방패를 가진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정도 경찰 규모를 목격한 것은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모인 경찰은 64개 중대 4,200명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 의경 절반이 이곳에 모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기세는 더욱 강렬했다. 여느 집회에서 느끼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집회 무리 안에서 휴대폰을 하지도 않았고, “투쟁”이라는 대답 구호는 집회 무대 스피커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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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한주]



# 5월 30일 오후 10시


30일 오후 10시 시민문화제까지 마치고, 현장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사측이 용역 1천 명을 고용해 전날 밤 현대중공업 내 체육관에 단체로 투숙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 취재원이 직접 이날 아침 현대중공업 체육관에서 널브러진 담요 수백 장을 확인했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또 31일 작업자에게 오전 6시까지 출근하라는 통보도 왔다. 31일 오전 현대중공업 정문을 바리케이드로 막는다는 이유에서다. 보통 출근은 8시까지다. 주총장 변경 가능성을 두고 조합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취재를 종합했을 때, 지부가 설정한 주총 강행 예상 장소는 세 곳이다. 예정된 한마음회관, 정문 봉쇄로 조합원을 차단한 현대중공업, 그리고 울산대학교다. 한 조합원은 지부가 울산대 앞 집회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강해졌다. 비도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조합원들과 연대 노동자들은 한마음회관 광장 바닥에 돗자리만 깔고 몸을 뉘었다. 비가 거세지자 비닐을 덮었지만, 바람이 이를 모두 날려버렸다. 날씨 탓인지 긴장 탓인지, 잠이 든 조합원은 많지 않아 보였다.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광장을 배회하거나 불을 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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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한주]



# 5월 31일 7시 43분


용역이 한마음회관 앞에 도착했다. 노동자들은 오전 5시에 일어나 모든 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용역과 함께 나타난 현대중공업 상무는 “법대로 하는 것이니 물러나라”고 으름장을 놨다. 상무 뒤에는 경비업체 직원 100여 명, 경비업체 직원 뒤로는 용역 수백 명이 따라붙었다. 경찰은 용역과 나란히 그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노조는 용역의 등장에 목장갑을 끼고 스크럼을 짰다. 조경근 지부 사무국장은 “조합원의 뜻이다. 물러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8시 30분. 현대중공업 상무가 주총 검사인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주총 검사인은 지부 측에 주총을 진행하는 데 어떠한 법적 미비도 없다고 강변했다. 노조는 사측 임원과 주총 검사인이 올 때마다 구호를 외쳤다. 9시 5분에 사측 임원이 다시 와 노조를 압박했는데 “(한마음회관 주총이) 어렵다면 거칠 건 거쳐야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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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한주]



# 5월 31일 오전 10시


예정된 주총 시각을 넘겼다. 10시 14분, 양복 입은 10여 명이 한마음회관 앞에 나타났다. 사측 임원은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이들에게 “주주냐”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은 노조를 앞에 두고 어떤 미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10시 35분. 갑자기 용역들이 “주총장 우리가 먹었습니다!”라고 날뛰며 주총 변경 안내문 종이를 흩날렸다. 다른 용역은 ‘자칭’ 주주 무리에게 “빠지세요”라고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다른 한쪽에선 팻말을 급히 세웠다. 주총장 시간과 장소가 11시 10분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바뀌었다는 안내문이었다. 지부 간부에 달려가 상황을 묻자 그도 뒤통수를 맞았다는 듯 분노를 표출했다.


조합원들은 더 큰 분노를 보였다. 곧 조합원 약 200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대로 향했다. 기자가 울산대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는 11시 40분경. 주총은 끝난 뒤였다. 남겨진 건 주총 현수막과 부서진 의자, 물에 젖은 주총 자료집, 용역이 뿌린 소화기 분말 가루였다. 주총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조합원의 말에 따르면, 용역들은 후문 쪽으로 주총장 진입을 시도한 조합원들을 향해 소화기를 뿌리며 의자를 던졌고, 소화전 호스로 물바다를 만들었다. 같은 시각 정문 쪽에선 경찰이 노동자들을 물리력으로 제압했다. 용역의 폭력, 경찰의 비호로 주총은 3분 30초 만에 끝나고 주주들은 장소를 빠져나갔다. 주총을 목격한 조합원은 한 명도 없었다. 조합원들은 물론 현장을 확인하지 못한 취재진도 무력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취재진은 체육관에 CCTV가 있고, CCTV는 KT텔레캅에서 관리한다는 학교 관계자의 말을 전해 들었다. 곧바로 CCTV를 확인하고자 울산대 본관으로 갔다. 울산대 본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안쪽에 총무팀 명찰을 단 관계자가 있었다. 닫힌 문 사이로 그에게 질문을 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안쪽에는 또 CCTV 관리자인 KT텔레캅 직원도 있었다. 울산대학교는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이 설립한 학교다.


주총은 막지 못했지만, 노동자들은 분노와 열기를 확인한 투쟁이었다고 전한다. 위법 주총 직후 한마음회관 앞 정리 집회에서 지부는 현장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지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지금도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4일 역시 7시간 파업을 진행하고, 시청 앞에서 ‘1987 행진’을 재현하는 대행진을 벌였다.


다시 박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투쟁으로 민주노조 역사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 섰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동안 노조에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어용노조 시절부터 금속노조 제명, 횡령 사건까지…. 주총 저지 투쟁을 계기로 노조 집행부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회복됐어요. 십수 년 만에 투쟁으로 밤을 지새운 것 같네요. 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현대중공업이 한 일이 있잖습니까. 우리부터, 나부터 다시 실천해 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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