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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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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학생 주거,

공적 통제가 절실하다


학생위원회



대학생 자취방, ‘공공적’ 공간이다


흔히 자취방을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물론 자취방은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교육부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8년 대학기숙사 수용률(재학생 수 대비 기숙사가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의 수)은 전체 21.5%, 수도권은 17.2%다. 그런데 서울 대학생 중 절반 가까이는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이다. 문제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 중 저 17.2%에 포함되지 않는 약 30%의 학생이다. 집에서 통학하기는 버겁고, 기숙사에서는 자기를 안 받아주니 이들은 민간임대시장으로 달려간다. 즉, 서울 대학가에서는 기숙사 입주자의 두 배 가까운 수의 학생이 민간임대시장에서 자신의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 정부와 대학이 기숙사 확충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공적’ 기능이 민간임대시장으로 떠넘겨진 셈이다. 이래서 대학생의 자취방은 개인적 공간인 동시에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정부는 대학생 자취방을 다른 의미에서 개인적 공간으로 생각한다. 바로 건물주의 사적 소유물이라는 것. 자기의 소유물을 어떻게 관리하든, 어떤 값에 처분하든 개인적인 영역이라는 게 정부의 관점이다. 따라서 민간임대시장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다. 굳이 대학생 주거가 아니더라도, 정부는 누구나 주택을 구매·임차할 수 있는 수준의 분양가·전월세 상한제도 채택하지 않았다. 대학가 민간임대시장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숙사 확충이나 청년 주택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대학가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규제는 단 한 번도 언급한 바 없다. 즉, 기숙사에 수용되지 않는 약 30%의 대학생 주거권은 사실상 국가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사적 소유물. 자본주의의 이 고유한 딜레마는 대학생 주거문제에서도 발생한다. 자취방은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공적 통제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전혀 공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가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에서 진행한 <서울지역 대학 자취생 주거실태조사>에서 드러났다.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자치하는 주거비,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자취방. 채광도, 환기도, 냉난방도 되지 않아 병들고, 듣고 싶지 않은 옆방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는 대학생들. 공적 통제가 전혀 없는 민간임대시장이 낳은 끔찍한 결과다.



대학가 월세, 최소한은 지켜라


<자취생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대학 자취생의 월 생활비(주거비 포함)는 93.2만원, 월평균 주거비는 49.0만원이다. 주거비가 생활비의 52.6%로 절반이 넘는다. 즉, 대학생들은 주거비를 빼고 하루에 약 1만 5천원을 쓰는 셈으로, 과소비하는 주체도 아니다. 서울 물가에서 1만 5천원은 밥 두 끼, 등하교 교통비, 커피 한 잔 정도의 금액이다. 물론 이 생활비는 등록금을 제외한 금액이다. 1년 약 천만 원인 등록금을 포함하면, 대학생 월 생활비는 약 170만 원. 최저임금 노동자가 온종일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가 나온다.


물론 대학생이 종일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규학기 내에 졸업하려면 통상 주중 20시간 수업을 이수해야 한다. 즉, 지금 상황에서 대학생은 주거비와 생활비,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 하루 1만 5천 원 생활비를 줄일 수 없다면, 주거비와 등록금을 잡아야 한다. 주거와 교육, 가장 공적인 영역에서 대학생들이 돈이 없어 쩔쩔매서는 안 된다.


혹자는 주거비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자유로운’ 계약관계에 따라 정해진다고 한다. 물론 이 계약은 전혀 자유롭지 않다. 기숙사 신청에서 떨어진 대학생들은 민간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하면 길거리에서 노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을 집단 노숙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면, 대학가 임대료에 대한 공적 통제는 필수다. 물론 대학생들은 노동시장에 아직 진입하지 않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원칙상 주거비는 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요구로 대중적 움직임을 만들기 어려운 현실적 조건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실적 규정은 있다. OECD는 주거비가 월 소득의 20%를 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일 대학생이 수업을 들으며 최저임금 일자리로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주 40시간 중 20시간은 대학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니, 가능한 노동시간은 주 20시간. 월 소득으로 환산하면 약 70만원이다. OECD의 기준대로라면 약 70만원의 20%인 월 15만원이 대학생 주거비의 상한이 되어야 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대학생 자취방이라면, 4평~8평 정도의 시설이다. 틈만 나면 OECD 회원국임을 자랑하는 정부가 적어도 OECD 기준 주거비는 준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취생 임대료 상한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방 같지도 않은 방’ 내놓지 마세요”


임대료만큼이나 심각한 건 주거환경의 문제다. 국토부는 최저 주거기준을 1인당 14㎡로 규정했다. 정부가 보기에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주거환경이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간임대시장에는 이 최저 주거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주택이 버젓이 거래된다.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에 따르면 최저 주거기준 미달 시설에 거주하는 자취생은 22.6%나 된다. 최저 주거기준을 정부 스스로 정해놓고서 그 기준도 못 지키는 시설을 임대시장에 허용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대학생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취생들이 느끼는 불만을 조사해보니, 비싼 주거비(55.2%)에 이어 비좁은 주거면적(47.4%)을 지적하고 있었다.


방음, 채광, 환기, 냉난방도 주요한 지표다. 주거실태조사 응답자의 30%가 방음이 되지 않아 불편하다고 답했다. 옆방의 소리가 들리는 건 물론이고 집 밖에서 행인들이 떠드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한다. 옆방 소리가 들린다는 건 자기가 내는 소리도 옆방에 들린다는 뜻이다. 내밀한 공간인 자취방에서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건 개인의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문제다. 최소한의 방음도 되지 않는 주택이 임대시장에 나오도록 용인해선 안 된다.


채광, 환기, 냉난방은 거주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공기의 질은 말할 것도 없고, 습도 조절이 되지 않으면 곰팡이나 해충이 서식하기에 십상이다. 각종 질병을 옮는 매개체가 내 집에 사는 격이다. 게다가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둡고 습한 환경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도 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준다. 자기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영화 <기생충>의 기택 가족에게서 나는 눅눅한 반지하 냄새가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야 한다.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는 이번 주거실태조사에서 자취생들의 불만을 직접 들었다. 그중 인상 깊은 응답이 있었다. “‘방 같지도 않은 방’은 제발 내놓지 마라. 이런 방에 누가 살라는 거냐!” 정부는 대학가 자취생들의 주거시설 전수조사에 나서고,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시설의 개선을 강제해야 한다. 좁은 방의 칸막이를 뜯어내고, 냉난방이 안 되는 방의 에어컨과 난방기를 설치해야 한다. 창문이 없는 방은 벽에 구멍을 내서라도 창을 내야 한다. 물론 그 비용은 건물주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적 소유물’이라는 명분으로 공적 통제를 거부한 건 바로 건물주들이었으니 말이다.



정 안되면 공공주택으로 강제 전환


임대료 상한과 주거시설 개선. 분명 반발하는 건물주들이 있다. 근처에 대학기숙사만 지으려 해도 거세게 반발하던 이들이다. 신축 기숙사 문제로 불거진 대립의 경우, 정부는 주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인간다운 주거를 박탈당한 지 오래라, 중재하려고 해도 양보할 게 없다. 남은 것은 단호한 조치다. 임대료 규제와 주거시설 개선을 거부하는 건물주가 있다면, 그가 소유한 건물을 정부가 매입해 대학생 공공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차피 정부는 2022년까지 대학생 공공기숙사 5만호 공급을 약속했다. 그런데 공공기숙사 신축의 경우, 용지를 매입하고 건축을 마치는 데까지 막대한 금전적, 시간적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기존의 민간임대주택을 공공주택으로 전환하는 경우, 공급까지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집 없는 대학생들에게 공공기숙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방향은 국가가 모든 이들의 주거를 책임진다는 원칙에도, 주거가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도 맞는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민간임대주택을 국유화해 공공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 우리는 임대료 규제와 최저 주거기준 충족 의무에 반발하는 건물주들의 건물을 국유화하라는 것이다.


결국, 필요한 건 공적 통제다. 생산수단이든 주거시설이든 공적인 기능을 하는 시설이라면 당연히 공적인 통제를 받아야 한다. 공적 통제가 아닌 소수의 개인이 독점할 경우, 개인이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금 한국에서 자취방을 전전하는 대학생들처럼 말이다. 위기의 대학생 주거, 공적 통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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