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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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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6.1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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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인기]



가난한 이들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송준호┃기관지위원회



지난 6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갤러리 브레송에서 ‘기록하는 빈민운동가’ 최인기 동지의 개인사진전이 열렸다. 작년 이맘때 낸 사진집 『청계천 사람들, 삶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청계천』 이후 1년 만의 사진전이다. 작가는 15년 전부터 도시 개발로 밀려나는 사람들의 투쟁과 파괴되는 삶의 터전을 기록해왔다. 이번 개인전은 사라진 청계천 삼일아파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87년부터 청계천에서 보석세공노동자로 일한 그의 발자취와 고민이 담긴 사진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다. 6월 12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손님맞이에 분주한 최인기 작가를 만났다.



Q. 사진집을 내고 1년이 지났는데, 이번 전시를 열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사실 전시는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전시된 사진은 15년 정도 걸쳐서 찍은 것들이다. 본격적으로 전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5~6년 전부터다. 작년에 사진집을 발간하고 비용과 여건의 문제로 개인전을 하지 못하다가, 작년 말~올해 초에 걸쳐 청계천-을지로 일대에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서 ‘이제 이 문제를 가지고 전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추진하게 됐다.



Q. 사진집을 살펴보면, 도시문제로 다양한 예술적 투쟁을 펼치는 액티비즘 콜렉티브 ‘리슨투더시티’나 최근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투쟁을 이끌어가는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곳들과는 운동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신지?


A. 청계천은 워낙 제가 오랫동안 사진도 찍고 청계천 복원공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투쟁에 결합해 싸우기도 했기 때문에, 청계천 관련 개발 문제에 개인적으로라도 같이 논의하고 참여해야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에 참여하고 있다.


‘리슨투더시티’와는 청계천 문제로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많이 했다. 제 초기 전시를 그분들이 도와주기도 하고, 리슨투더시티 활동에 제가 참여도 하면서 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제 사진집도 ‘리슨투더시티’에서 출판하게 됐고.



Q. 청계천 일대의 도시빈민, 투쟁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영향이 눈에 띈다. 지난 사진집과 이번 전시에도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는데.


A.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과 인연도 벌써 5~6년 됐다. 불암산 밑에 백사 마을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이발소 하는 분을 제가 취재해서 <참세상>에 기고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시고 노무라 목사님 측에서 ‘혹시 그분이 청계천에서 이주를 간 분이 아니냐’며 연락이 왔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그 경우는 아니더라. 그렇게 답신을 드렸더니 고마워하시며 ‘답례로 60년대 말에 본인이 청계천을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시면서 USB에 담아서 보내주셨다. 제가 그걸 보고 『노무라 리포트: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1973-1976』이라는 사진집이 나오게 중간다리 역할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분과 인연을 맺었다.


제가 담은 2000년대 초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습들도 그분이 담아낸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의 청계천의 연장선에 있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도 자신의 작품 활동을 제가 이어받는 것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곤 한다. 이번 개인전을 열기까지 그분의 재정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전시장에도 직접 방문해서 ‘고생했어, 수고했어’라고 해주셔서 뿌듯했다. 이번에 방문하시면서 서대문형무소에 가서 ‘종교가 이래서는 안 된다’면서 참회의 시간을 가지시기도 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분이다.



Q. 전시의 바탕이 된 사진집을 보면, ‘도시권 쟁취의 공간’, ‘삶의 공간’으로 청계천을 나누어놓았던데. 전시에서도 이러한 구분법이 반영된 것 같다. 전시를 구상하실 때 이런 것을 염두에 두셨는지?


A. 말씀하신 대로다. 전시장에 들어오면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진이 배열되어 있다. 청계천복원공사가 시작될 때인 2003년부터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투쟁이 한창인 2006~2009년, 2013~2016년, 최근의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가 시간순으로 놓여있다. 이것은 공간으로 보자면 청계천7~8가, 동대문운동장, 입정동 순인데. 청계천이 흐르는 공간적 특성을 시간의 흐름과 유기적으로 조응하도록 구성한 것이다. 각각의 주제도 청계천이라는 물질적 흐름이 시간이라는 개념적 흐름과 연계되어 있다. 실제로 와서 보시면 사건의 흐름, 공간의 위치를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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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인기]



Q. 어릴 때의 경험을 작가 노트에 쓰셨다. 작품 활동이 청계천에 천착하는 데에 어린 시절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A. 예전에는 동대문에 종합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호남선이 거기로 통했기 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은 다 그곳을 통해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지방에 고급물자가 귀했기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와서 2~3일간 머무르면서 반지·시계·원단 같은 혼수품을 마련해 내려가는 풍토가 생겼다. 자연스레 귀금속과 예물 등을 취급하는 가게가 많이 자리 잡았던 거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왔는데, 작은아버지가 청계고가도로를 보여주셨다. ‘서울 가면 차가 고가도로로 다닌다더라’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그때 도시의 스펙타클한 이미지에 대한 흥분이 깊이 각인된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대한 로망이 생긴 거다.


이후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청계천에서 살게 됐다. 청계천 일대는 제 유년기의 놀이터가 되었던 셈이다. 집안의 많은 대소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는 곳이어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공사 한다니까 내가 살던 터전이 바뀐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분노,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들지 않았겠나. 2003년 10월에 대대적인 청계천 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인근 노점상을 폭력적으로 밀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때는 그야말로 폐타이어에 불을 붙이면서까지 싸웠다.



Q.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개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A. 서울시가 개발 중심으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본다. 개발에 대한 문제는 어떤 시장이 취임하던 간에 그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개별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토지와 공간은 이윤과 자본의 논리로 재편되게 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땅과 건물과 집 등이 투기의 목적, 이윤을 창출하는 목적으로 이용되고,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더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해답이 요원하다. 근본적으로 바꿔야지.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개발은 무용하다는 게 제 생각이다. 여기 주변의 높은 빌딩들도 고층은 다 비어있다. 거품인 거다.



Q. 전시를 보면서 현대서울의 개발사는 청계천 수난의 역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시장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뀌어도 청계천을 가만두지 않고 건드리는 걸까?


A. 제 사진이 담은 시기를 보면 이명박-오세훈-박원순 시장의 재임 기간이 다 걸쳐있다. 청계천은 서울의 핵심이자 중심부다. 청계천을 건드렸던 것은 현대뿐만 아니라 왕조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도 기근이 오고 홍수가 나고 이러면 준설작업 등 일종의 공공부조 사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곳으로 삼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청계천은 한국의 근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 고가도로가 그렇고 삼일아파트가 그렇고 31빌딩이 그렇다. 그랬기 때문에 이곳은 끝없는 개발과 수난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은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저는 도시빈민운동사에서 60년대 말~70년대 초의 경기도 광주 대단위 투쟁, 청계천 복원 투쟁, 용산 참사, 최근의 청계천-을지로 공구상가를 규모나 의미 면에서 봤을 때 하나의 굵직한 흐름으로 본다.



Q. 사진을 투쟁의 도구로 삼으셨는데, 어떤 이유가 있나?


A. 기록에 있어 사진만큼 훌륭한 도구는 없다고 본다. 선전·선동도 잘해야겠지만, 현장의 기록을 남기고 대중에 알리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칫 전문가주의로 빠져 너무 예술로 치우치지 않고, 기록으로 현실을 알려낸다는 취지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실을 제안하고 기록을 남기고 그걸 통해 공감대를 넓혀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기본이고 본분이다. 앞으로도 주제를 가난과 공간으로 삼아 작품을 이어가려고 한다.



Q. 마지막으로 전시에 오실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저는 이 사진 속의 당사자들이 왔으면 좋겠다. 이 중에는 평생 전시장이나 갤러리를 찾아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많다. 농민, 노동자, 도시 빈민, 민중들이 이런 공간을 향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지역과 공간과 가난의 문제에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최인기 동지의 바람처럼, 이번 <청계천 사람들> 전시가 청계천 사람들의 삶과 밀려나는 터전에서의 투쟁을 복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찾아가시는 길

서울시 중구 퇴계로 163 지하 1층 

(명동역, 충무로역에서 도보 10분)


운영 시간

평일 10:30am–6:30pm

일요일, 공휴일 11:00am–6:00pm (전시 기간 휴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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