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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주거복지’라는 

거짓말


고근형┃학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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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주거복지”

지난 2017년 11월 국토교통부가 야심 차게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의 슬로건이다. 중앙정부만 나서지는 않았다. 지난 17일, 서울시 역세권 청년 주택 583가구 입주 신청이 시작되었다. 경쟁률은 무려 140대 1. 자취생들이 그만큼 살기 어렵다는 뜻이고, 정부도 주거권 보장이 제 역할임을 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월 5일, 사상 최초로 자취생이 총궐기에 나선다.



이렇게 비싸면 어쩌란 말인가요?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가 서울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341명을 대상으로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생활비 93.2만 원 가운데 주거비만 49만 원에 달해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가 권고한 월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인 20%를 훌쩍 넘는 수치다. 한국의 대학 1년 평균 등록금은 800만 원 수준이고, 연간 주거비는 600만 원 남짓이다. 즉, 자취하는 대학생은 수업 듣고 자취방에서 잠만 자도 1년에 1,400만 원을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할 때 주 35시간씩 계속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아뿔싸, 수업은 언제 듣지.


자취방 월세는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제44조에 따르면, 민간임대주택의 최초 임대료는 임대사업자가 정한다.* 임대사업자, 그러니까 건물주가 소유한 건물이니, 그 건물의 임대료도 건물주 마음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임대료를 정하는 기준은 자취생의 소득 수준이 아니다. ‘건물주가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가 지금 임대료 책정의 기준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 수도권 기숙사 수용률은 17.2%에 불과하다. 그러니 대학 인근 자취방 수요는 항상 차고 넘친다. 학생들이 노숙할 순 없는 노릇이니, 월세가 아무리 비싸도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 신촌, 홍대, 건대 주변 원룸 월세는 웬만하면 50만 원을 호가하는데,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해야 한다.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주거복지” 정책이라던 <주거복지 로드맵>은 청년․학생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수가 적고 절차가 복잡해, 대다수의 학생에게 선택지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 17일 서울시 역세권 청년 주택 입주 신청이 시작되자 접수가 폭주했다. 140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이 청년 주택도 실효가 있는지 의문이 따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세보다 절대 싸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세권 청년 주택의 약 90%는 민간임대주택이다.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시세의 85%로 공급한다지만, 부동산 업체들은 같은 면적의 주변 원룸보다 오히려 비싸다고 입을 모은다. 하다못해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임대주택조차 자취생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머지 10%가 공공임대주택으로 월 7~10만 원 수준이다.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게 싸고 좋은 방 구하는 일이다.


이게 자취생이 총궐기하는 첫 번째 이유다. 최소한의 조치로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에서 임대료 상한제는 임대료 ‘증액 비율’ 상한제가 아닌, 최초 임대료에 대한 상한제다. OECD의 주거비 기준을 적용한다면, 자취생의 월 주거비는 15만 원을 넘어선 안 된다. 그리 무리한 요구도 아니다. 앞서 소개한 역세권 청년 공공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 임대료는 이미 월 10만 원 이내다. 물론 임대사업자가 알아서 임대료를 낮춰줄 일은 없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민간임대주택에 공적 통제를 도입하라는 요구다.


물론 정부가 알아서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할 의지가 있었다면 진즉에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도, 박원순 시장의 역세권 청년 주택 정책에도 임대료 상한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정부도 안다. 건물주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일은 자신들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자취생도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초년생이니까 참으라고요?


자취생 총궐기를 기획한 두 번째 이유는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면적은 1인당 14m2다. 4.2평 정도인데, 자취생 5명 중 1명은 이 최저 주거면적도 안 되는 방에서 사는 것으로 확인된다. 면적이 충분하더라도 냉난방이 안 되거나, 방음이 안 되는 방이 부지기수다.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기준도 못 지키는 방이 주택시장에 나오는데,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참고로 옥탑방, 고시원 같은 비주택시설은 아예 최저 주거기준 적용 대상도 아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지옥고’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서울시 역세권 청년 주택이 공개되자 SNS에서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고, 거기에다 시설도 열악하다는 것이었다. 역세권 청년 주택은 최저 주거기준을 준수한 시설(1인당 5평 내외)이긴 했다. 그래서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더 열악한 고시원에 사는 사람도 있다”라거나 “사회초년생에게 이 정도면 괜찮은 방 아니냐”며 서울시를 옹호했다. 그런데 이게 청년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사실 5평 남짓한 방에서는 빨래건조대 하나만 펴도 남는 공간이 별로 없다. 최저 주거기준 4.2평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수준이지, 인간다운 주거의 보편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5평짜리 방을 준다고 선심 쓰듯 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그마저도 안 되는 주거시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임대사업자들이 알아서 시설을 개선하길 기대할 수도 없다. 예컨대 방의 크기가 작을수록 같은 건물에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즉, 더 많은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시설 개선을 통해 최저 주거기준을 충족한다면, 월세도 같이 올라간다. 민간임대시장에서 ‘싸고 좋은 방’은 없다. 쾌적하지만 비싼 방이냐, 값싸지만 열악한 방이냐, 이 두 가지 선택지를 강요받을 뿐이다.


주택에 대한 공적인 통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간임대주택이라고 건물주 마음대로 관리하게 해선 안 된다.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최저 주거기준 미달 시설에 대한 개선을 강제해야 한다. 물론 시설을 개선했다는 명목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임대료 상한제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 자취생 총궐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가 바로 임대료 상한제와 최저 주거기준 보장이다. 이렇듯 민간임대주택에 공적 통제를 도입하는 한편, 양질의 공공주택을 확충하는 게 정답이다.



함께 가요, 자취생 총궐기!


임대료 상한제, 최저 주거기준 보장, 공공주택 확충.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 요구를 학생들만 내걸 이유가 없다. 소수의 다주택 보유자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주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국토부 통계를 보면 46%가 여전히 무주택자다. 주택 소유자라고 그 집이 과연 ‘온전한’ 자기 집인가.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경제부총리 최경환은 국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권했다. 부채 없이 자기 돈으로만 주택을 마련하는 ‘현금 부자’는 많지 않다. 2018년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6.9를 기록했는데, 이는 7년 동안 숨만 쉬고 돈을 모아야 내 집 마련에 성공한다는 의미다.


사실, 거주하는 집이 꼭 자가주택일 이유는 없다. 기간의 제한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면, 주택이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보장해야 할 주거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각자가 주택을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체제에서는 자가주택이 아니면 주거 안정성이 극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은 사회변혁의 핵심 과제다.


그래서 자취생 총궐기가 중요하다. 당장 자취생들의 요구 실현을 위해서도 각계각층의 연대는 필수다. 또한, 자취생 총궐기의 성과를 사회 구성원 전체의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 임대료 상한제, 최저 주거기준 보장과 양질의 공공주택 확대가 모든 시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건물주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일인 만큼, 분명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취생 총궐기를 통해 소유권보다 주거권이 더 중요하다는 합의를 마련한다면, 전체 주거 운동으로의 확장 역시 가능할 것이다.


자취생 총궐기 기획단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모든 시민이 인간답고 안정적인 주거권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역할을 다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자취생의 권리 또한 쟁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취생 총궐기가 청년․학생들만의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될 이유다. 인간답고 안정적인 주거를 꿈꾸는 모든 사람이 함께 투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자취생 총궐기에 함께 하자. 모든 시민의 주거권을 쟁취하는, ‘자취생 총궐기’라는 출발선에 함께 서자. 10월 5일 오후 1시 30분, 장소는 청계광장이다.




* 임대사업자가 임대 기간 중 임대료의 증액을 청구하는 경우, 증액 비율은 5%를 넘을 수 없다. 그래서 임대사업자가 마음대로 정하는 건 ‘최초’ 임대료다. 물론, 최초 임대료가 높다면 증액 비율이 5%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비싼 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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