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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0.15 19:02

미국 대선

: ‘도로 민주당’과 

샌더스 연합


민주당 대선 후보 바이든-해리스는 누구?

DSA와 좌파의 행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정은희┃기관지위원회



일 년 내내 세계 주요 뉴스를 차지했던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를 앞두고도 백악관에선 코로나19에 감염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방역 조치 없이 공개 일정을 주도하며 슈퍼 전파자가 됐고, 거리에선 극우세력이 무장한 채 활보한다. 오늘날의 미국 정계는 무슨 삼류 호러 필름 같기만 하다.


그런 만큼 현직 트럼프 대통령과 겨루는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의 판세는 현재로선 낙관적이다. 트럼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로 그 격차는 더 커졌다. 하지만 트럼프가 선거 불복까지 시사하면서 민주당은 ‘반(反)트럼프 선거운동’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최악 대 차악’이라는 구도에 좌파는 답답하기만 하다.



자본의 대리인,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는 민주당 기득권층이 버니 샌더스를 필두로 한 좌파 열풍을 제어하고 만들어낸 팀이다. 그들은 샌더스를 저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 기득권층은 일찌감치 바이든을 지지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 주목을 모았던 엘리자베스 워런이나 피트 부터지지는 조기 사퇴했다. 미국 대선의 풍향계로 알려진 아이오와주 코커스(정당 후보를 선출하는 미국의 주별 경선)에선 민주당 기득권층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부정선거 논란도 일었다. 결국 코로나19까지 닥치면서 유세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자, 샌더스는 지난 4월 8일 경선 후보직을 사퇴하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물론 ‘바이든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 속에서 나온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바이든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해온 버니 샌더스의 지지를 받을 만큼 대안적인 구석이 있는 후보일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바이든은 신자유주의자이자 이라크 전쟁에 열광했고, 낙태를 완강히 반대했던 정치인이다. 특히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며 반동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범죄법(Violent Crime Control and Law Enforcement Act)’을 지지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감금 국가(Carceral State)’를 낳은 이 법은 경찰 10만 명을 증원하고 교도소에 96억 달러, ‘범죄 예방’에 61만 달러를 지원하도록 했는데, 상원 발의안을 다름 아닌 바이든이 제출했다. 대신 사회복지를 축소하면서 더 많은 흑인과 라틴계 인구를 감옥으로 보냈다. 나아가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맡아 2007~08년 경제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위기관리를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비록 이번 대선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그는 성폭력 혐의도 받고 있다.


카말라 해리스는 ‘비(非)백인 여성 부통령’ 후보로 주목을 모았지만, 그 또한 친기업 정치인이다. 해리스는 특히 샌프란시스코 출신 정치인으로, 현지 실리콘밸리의 기술 자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정되자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8월 12일 “실리콘밸리는 카말라 해리스가 그들 자신의 하나라고 본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전 세계 흑인 여성과 소녀들에게 엄청난 순간”이라고 축하했다. 해리스의 처남인 토니 웨스트는 승차 공유 업체 우버의 최고 법률 고문이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했던 2011년과 2013년에는 심지어 트럼프의 후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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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오바마, 바이든, 해리스, 클린턴. [사진: Left Voice]



‘민주당 채널’ 된 

버니 샌더스


그러나 바이든은 지난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반(反)트럼프 선거’라는 점을 강조하며 샌더스 지지파 흡수 전략을 택했다. 지난 선거에서 샌더스 지지층의 이탈이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든은 경선을 마무리한 지난 7월 초, 샌더스와 함께 ‘통합 태스크포스(UTF)’를 꾸리고 민주당 정강‧정책안을 구성했다. 이 팀은 바이든이 대표하는 민주당 중도파와 샌더스가 대표하는 민주당 진보진영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 형사사법개혁, 경제, 교육, 의료, 난민 등 6개 분야의 태스크포스를 꾸렸고, 이 6개 그룹은 샌더스 경선 캠프 정치부장 애너릴리아 메히야(Analilia Mejia)와 바이든의 고문인 카멜 마틴(Carmel Martin)이 조율했다.


그러나 바이든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민주당 정강‧정책은 진보적 의제 일부를 수용한 것 외에는 ‘통합 태스크포스’가 제안한 내용과는 크게 달랐다. 지난 7월 말 발표된 민주당 정강‧정책은 “강하고 공정한 경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임금 인상과 권리 강화, 월스트리트 규제를 주요 사안으로 다룬다. 시급 15달러 최저임금을 비롯해 제한적이더라도 공공 의료보험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며, 유아 의무교육도 수용했다.


그러나 이 정강‧정책에는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건강보험)’나 그린뉴딜, 폭력 단속의 대명사인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와 프래킹(화석연료의 일종인 셰일가스 채취 공법) 금지 등 샌더스가 중점을 뒀던 공약은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바이든은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경찰 예산이나 기구를 종전대로 존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바이든이 실제 당선하더라도 일부 개혁조치를 추진할지는 미지수다. 역사적으로 민주당 정강‧정책이 선거 뒤 큰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다.


샌더스를 지지했던 미국 사회주의자나 진보진영은 이제 자신의 후보를 잃었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도 오는 대선에서 ‘아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반(反)트럼프’ 공세 속에서 많은 좌파가 올 11월 바이든에게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샌더스는 지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2번에 걸쳐 참가하며 2007~08년 공황 속에서 성장한 사회적 불만을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구호로 결집했지만, 이를 다시 민주당이 수렴하도록 하는 채널로 자리매김했다.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서야


물론, 지난 4년간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SA)”의 회원은 10배 이상 늘었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나 러시다 털리브 같은 민주적 사회주의자 정치인이 하원의원이 됐으며, 이번 하원의원 예비경선에서는 새로 선출된 코리 부시 등 동료와 함께 좋은 성적도 기록했다. 각 주에서도 여러 명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을 걸고 민주당 경선에서 당선했다.


이들의 승리는 2007~08년 경제위기와 긴축 속에서 자본주의에 회의적인 밀레니얼 청년, 40~50대 노동계급의 지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를 받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지난 4년간 과연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이번 경선에서 샌더스의 패배는 민주당 기득권층의 공격에 주요 원인이 있지만, 민주적 사회주의자 진영 자체의 책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샌더스가 이번 경선에서 패배한 주요 원인으로는 샌더스를 택한 히스패닉계의 표가 일부 늘어났더라도 흑인이나 노동계급의 표는 떨어진 반면, 부유한 교외 거주자들이 트럼프와 ‘극좌’의 진출을 막기 위해 민주당 경선 투표에 대거 참여하면서 바이든의 득표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샌더스가 노동계급 조직에 실패한 것은 우선 민주당과 흑인 커뮤니티 및 노동조합의 역사적인 유착관계에 돌파구를 내지 못한 한편, 미국에서 지난 수년간 “블랙 라이브즈 매러(BLM,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이나 노동계급 투쟁이 고조돼 왔음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수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민주당 경선에서 흑인 유권자층은 이번에도 기득권 후보 바이든을 선택했지만, 민주당에 비판적인 BLM 운동은 샌더스와는 거리를 두고 ‘경찰 예산‧기구 폐지’만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노동조합도 종전대로 바이든을 지지했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은 샌더스를 조직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으며, 산발적인 살쾡이 파업(노조 지도부가 승인하지 않은, 조합원들의 자발적 파업)만 벌였다.


이는 DSA가 지배계급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민주당 내 선거를 우선하면서, 민주당과는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을 정치화하고 대변할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 내 개혁’을 우선해온 DSA는 샌더스가 사퇴하자 무책임하더라도 ‘대선 후보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밖에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대선 담론에는 버락 오바마가 주도하는 ‘선거가 중요하다’는 구호만 남게 됐다.


DSA 창립자 겸 지도자인 마이클 해링턴은 ‘노동조합과 흑인운동이 민주당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정당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민주당 기득권층에 DSA는 완패했다. 물론 DSA 주류는 조직의 성장을 성과로 보며 민주당 내 개혁을 고수한다. 그러면서 ‘2032년경에는 50세 미만의 버니 유권자들이 다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단지 소수만이 사회주의 독자 정당 창당을 주장하며 토론 중이다.


그러나 자본가를 우선해온 민주당 내에서 ‘분배 중심의 사민주의 정책’에 의존하는 정치 집단에 과연 자본가들이 자기 자리를 순순히 비워줄까? 그런 정치 집단은 이미 기성정치에 신물 난 노동계급의 관심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DSA는 이번 경선에서도 샌더스의 패배가 민주당 기득권층의 공격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자체 전략이 부족한 데에서도 기인했다는 점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가계급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의 투쟁에 기초한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서야 할 때다.



* 정은희, “AOC, ‘민주당이 허락하는 사회주의’ 넘을 수 있을까?”, <워커스> 2020년 9월호.


** “Bernie Sanders`s Five-Year War”(버니 샌더스가 치른 5년간의 전쟁), <Jacobin> 온라인 2020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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