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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10.15 20:39

최종회


아직 다하지 못한

혁명가들의 이야기1


나영선┃노동자역사 한내



* 이번 호를 끝으로 “안녕? 사회주의자” 연재가 종료됩니다. 지난 1년간 글을 보내주신 필자 동지들과, 이 코너에 관심 가져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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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4월 17일 열린 조선공산당 창당 21주년 기념식



조선공산당 창당 21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1946년 4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 기독회관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회관 안이 비좁아 건물 밖 종로거리까지 수천의 인파가 몰렸다.2 날씨도 맑고 포근했다.3


오후 2시 반, 조선공산당 서기장 이주하의 사회로 행사의 막이 올랐다. 먼저 민족해방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선열들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대회사는 당수 박헌영이 커다란 박수 속에 등장해 1시간여에 걸쳐 진행했다. 소련군정에 구두로 보고된 정보를 참고해보자.4


연단에 선 박헌영은 이렇게 말했다: “거의 4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우리 당은 식민지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완강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수천수만의 공산주의자들이 국내에서 국외에서 헌신적으로 투쟁했다. 그들은 일제의 형무소 고문실에서도 이러한 투쟁을 계속했다. 어떠한 희생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다수의 참석자들은 울컥 솟구치는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국내에서만 수천의 희생자를 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을 모두 합하면 무려 6만 년5이었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오늘, 그간 이 지면에서 다루지 못했던 수많은 혁명가들을 그 이름으로나마 담아보려 한다. 다시금, 그들의 삶과 투쟁에 경의를 표한다.



<약어 안내>

- ‘고려공청’: 고려공산청년회

- ‘조공’: 조선공산당

- ‘꼬르뷰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극동부 산하 조선 전담기관

- ‘모플’: 국제 혁명가 후원회(MOPR)



조선공산당


박순병(1901~26) 25년 고려공청 가입, 중앙위원 후보로 선출. 26년 조공 입당, 7월 2차 조공 사건으로 체포, 8월 신문 도중 고문으로 사망. ▶김효종(1899~1927) 26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가입. 6월 2차 조공 사건으로 투옥. 27년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백광흠(1894~1927) 23년 꼬르뷰로 국내부 동래 야체이카(세포) 책임자, 25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가입. 26년 2차 조공 사건으로 체포, 고문으로 보석됐으나 27년 12월 사망. ▶박길양(1894~1928) 25년 고려공청 가입. 12월 1차 조공 사건으로 투옥 중 고문으로 옥사. ▶권오상(1900~28) 25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가입,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 26년 6.10 만세 투쟁으로 투옥, 복역 중 고문후유증으로 28년 6월 사망. ▶차금봉(1898~1929) 26년 조공 입당, 27년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 28년 조공 책임비서, 7월 체포, 29년 고문으로 옥사. ▶김재명(1901~30) 26년 전남해방운동자동맹 집행위원, 고려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 통일고려공청 중앙위원, 27년 고려공청 전남 책임비서, 28년 고려공청 책임비서. 4차 조공 사건으로 7월 검거. 30년 1월 고문후유증으로 병사. ▶권오설(1898~1930) 24년 꼬르뷰로 국내부 노농총야체이카 책임자, 25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집행위원, 12월 고려공청 책임비서, 26년 6.10 만세 투쟁으로 투옥, 복역 중 고문후유증으로 30년 옥사. ▶도정호(1900~30) 24년 일월회 간부, 27년 조공 경기도당 조직부장. 28년 3차 조공 사건으로 검거, 복역 중 30년 3월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오의선(1889~1931) 24년 화요회 가입. 25년 조공 입당, 12월 2차 당대회 참석. 26년 12월 3차 당대회 참석. 28년 이후 모플 간부로 활동. 31년 3월 체포, 4월 고문으로 옥사. ▶이낙영(1896~1931) 24년 서울청년회 가입. 27년 조공 3차 당대회 참석. 28년 조공 3차당 사건으로 투옥 중 31년 옥사. ▶김세연(1899~1933) 25년 일월회 결성에 참여, 27년 조공 중앙집행위원, 11월 조공 책임비서, 28년 2월 3차 조공 사건으로 검거. 30년 병보석 출소 뒤 소련으로 망명. 31년 재검거. 33년 고문으로 인한 폐병으로 사망. ▶주종건(1895~1935) 21년 상해파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25년 조공 입당. 12월 1차 조공 사건으로 투옥. 27년 병보석으로 출옥, 소련으로 망명. 9월 조공 후원회 조직 후 모스크바에서 모플 활동. 35년 소련 내무부에 체포, 예심 과정에서 사망. ▶진병기(1897~1935) 23년 꼬르뷰로 국내부 평양 야체이카 책임자. 25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가입. 11월 1차 조공 사건으로 투옥. 31년 만기출옥 이후 당 재건 운동에 종사하다 폐병으로 사망. ▶박일병(1893~1937) 25년 조공 입당, 26년 6월 2차 조공 사건으로 체포. 고문으로 시력을 잃고 정신질환을 앓음. 37년 사망. ▶구연흠(1883~1937) 25년 조공 입당, 26년 조공 중앙검사위원. 2차 조공사건을 피해 상해로 망명, 30년 상해에서 체포, 투옥. 만기출옥 후 37년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강달영(1887~1942) 24년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위원, 25년 조공 입당, 12월 조공 책임비서, 6.10 만세 투쟁으로 투옥. 고문으로 정신 이상이 되어 고통 받다 42년 사망. ▶서태석(1885~1943) 23년 암태 소작인회 결성, 암태도 소작쟁의 지도. 27년 조공 입당. 3차 당대회 참석. 28년 4차 조공 사건으로 투옥. 고문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43년 사망. ▶김재봉(1890~1944) 22년 극동민족대회 참가. 10월 치타 당대회 참여, 중앙위원 역임. 23년 꼬르뷰로 국내부 책임비서. 24년 당건설을 위한 13인회 결성. 25년 조공 초대 책임비서. 12월 1차 조공 사건으로 검거. 31년 만기출옥 후 향리에서 민중운동. 44년 사망. ▶김남수(1899~1945) 25년 화요회 상무위원, 26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가입. 27년 조공 중앙집행위원, 28년 체포 후 만기출옥. 45년 3월 병사.



당 재건 운동


한해(1900~29) 28년 조공 3차 당대회 조직부위원, 프로핀테른(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 조선대표, 코민테른 6차 대회 조선대표, 29년 조공 재조직 중앙간부 책임비서직 수행 중 길림에서 사망. ▶고광수(1903~30) 22년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입학, 25년 조공 입당, 26년 7월 고려공청 책임비서, 29년 5월 조공 재조직 중앙간부회 참여, 9월 함남 이원군에서 체포, 자결 시도, 고문으로 30년 1월 병보석, 2월 사망. ▶정관진(1902~31) 25년 고려공산청년동맹 가입, 29년 조공 재조직 준비위 가입, 학생전위동맹 담당, 30년 3월 체포, 31년 10월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최영춘(1903~31) 30년 6월 조공 재조직 준비위 참여, 7월 신흥 ‘장풍탄광 사건’으로 투옥, 31년 고문후유증으로 보석됐으나 사망. ▶오산세(1907~32) 27년 조공 만주총국 입당. 29년 조공 재건설 준비위 참여. 31년 3월 기존 준비위를 조선좌익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조직준비위로 개칭하고 공청 사업 지속, 투옥 후 32년 고문으로 인한 폐결핵으로 옥사. ▶박휘병(1905~33) 27년 고려공청 가입. 29년 고려공청 함남도간부기관 결성, 책임비서. 33년 3월 덕원적색농민조합 사건으로 검거, 고문으로 사망. ▶김용찬(1903~35) 29년 광주학생운동 관련 검거. 31년 영동에서 적우동맹 결성, 혁명적 농민조합운동 전개. 32년 검거. 35년 7월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장석천(1903~35) 26년 청년총동맹 간부 역임. 29년 조선공산청년회 전라도 책임자. 12월 투옥. 31년 12월 만기출옥. 32년 1월 전남노농협의회에서 적색노조운동 활동, 10월 투옥, 고문후유증으로 보석 후 35년 사망. ▶최재소(1914~37) 최익한의 장남. 33년 울진적색노조 결성에 참여. 34년 투옥. 37년 고문후유증으로 옥사. ▶이운혁(1895~1937) 24년 고려공산동맹 가입. 27년 조공 입당. 29년 조공 재조직 준비위를 30년 조공 재건설 정리위 개편. 12월 투옥. 36년 만기출소 후 고문후유증으로 37년 4월 사망. ▶김단야(1901~38) 21년 상해에서 고려공산당 입당, 24년 조공 입당, 고려공청 중앙위원, 29년 조공 재조직 준비위 결성, 30~33년 상해에서 <꼼뮤니스트> 발간. 34~36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한국학부장. 37년 ‘반혁명 스파이 테러단체 결성’ 혐의로 체포, 38년 처형. ▶윤자영(1894~1938) 23년 꼬르뷰로 위원. 26년 조공 만주총국 선전부. 29~31년 조공 재건설 준비위 조직부가 개칭된 조선좌익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조직준비위 집행위원. 32년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재학 중 38년 ‘반혁명’ 혐의로 처형. ▶김순원(1917~41) 38년 보성전문 재학 중 비밀독서회 가담. 39년 체포 후 40년 석방, 경성콤그룹 가입. 41년 경성콤그룹 사건으로 체포, 옥사. ▶윤기현(1902~42) 26년 고려공청 가입. 6.10 만세 투쟁 참여. 9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입학. 32년 조선공산주의자 전남북열성자협의회 참여. 적색노조운동과 당 재건운동 참여 중 33년 검거. 5년형 마치고 낙향. 42년 사망. ▶김덕연(1911~43) 38년 비밀독서회운동으로 검거, 39년 경성콤그룹 참여, 일본유학생부 담당. 40년 11월 검거, 10개월간 고문 끝에 41년 9월에 기소, 예심 상태로 43년 6월 고문후유증으로 옥사. ▶오문현(1910~43) 33년 전남사회운동협의회 결성에 참여, 8월 협의회를 적색농민조합건설준비위로 개칭. 34년 투옥. 출옥 이후 고문후유증으로 43년 10월 사망. ▶이재유(1905~44) 27년 고려공청 일본부 후보위원. 28년 조공 일본총국 입당 후 투옥. 32년 12월 만기출옥, 33년 당 재건을 위해 경성트로이카 조직. 34년 1월 체포, 탈출, 미야케 교수 집에 은거. 11월 경성재건그룹 건립. 36년 조공 재건 경성준비그룹 결성. 12월 투옥. 44년 10월 전향을 거부해 청주예방구금소에서 사망. ▶강창보(1902~45) 27년 조공 입당, 제주 야체이카 조직. 28년 조공 사건으로 투옥, 32년 제주해녀투쟁에서 결정적 역할. 3월 체포 이후 유치소에서 탈출, 일본으로 피신, 43년 체포, 45년 1월 옥사. ▶정태옥(1909~45) 32년 고려공청 재건을 위해 소련에서 1월 서신을 갖고 귀국. 8월 조선공산청년회 경성조직준비위원회 결성. 9월 조선공청 재건 인천조직준비위 결성 책임자. 35년 투옥. 징역 10년 구속 중 옥사.



1 지면 제한으로 조선공산당 창당 이전과 해방 이후 한국전쟁, 국외(중국, 만주, 러시아, 일본)에서 쓰러져간 이들은 싣지 못했다. 기록의 순서는 사망연월 순이다.


2 現代日報(현대일보) 1946년 4월 18일 자.


3 自由新聞(자유신문) 1946년 4월 18일 자.


4 러시아연방 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 문서군 172, 목록 614631, 문서철 12. > 23. 구두 정보 보고.


5 朝鮮人民報(조선인민보) 1946년 4월 18일 자. 『이정 박헌영 전집』 제2권, 역사비평사,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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