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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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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무생물은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박석준ㅣ한의사(우천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인류는 지구를 정복했지만 질병은 인류를 정복했다고 한다(로이 포터, <의학 콘서트>). 과연 인류는 자신의 지배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왔지만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pathogen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병원체가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숙주인 인류를 잘 키워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마귀와 연가시, 기니아충과 사람과의 관계를 보면 이런 관점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사람만큼 매력적인 숙주도 없다. 사람은 단일 생물 종 중에서는 지구의 가장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고 대부분 군집생활을 하고 있어서 전염되기 쉽다. 또한 매개가 필요한 경우에도 사람 가까이에는 가축이라고 불리는 동물이 풍부하게 있다(파리와 모기, 쥐 등은 자연히 따라간다). 거기에다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동물의 먹이영역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여 스스로 매개와 접촉하거나, 벌목 등으로 매개를 자신의 주위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따로 매개를 찾아 힘들일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일단 숙주 안에 들어가면 영양분이 풍부하고 위생의 개선과 기생충의 박멸 등으로 숙주의 몸 안에는 경쟁자가 적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것은 사람이 매우 빠르게, 그리고 대규모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집중과 이동’은 전염병 확대 조건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인류가 집중하게 되는 것은 신석기 시대의 농업과 함께 시작되었다. 농업은 자연이라고 하는 열린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력은 갇혀 있어야 한다. 폐쇄된 공간인 토지에 묶여있어야 하는 것이다. 농업의 사유화가 진행될수록 토지의 규모는 커지고 그 토지에 얽매인 노동력 역시 커진다. 전염병이 전염될 수 있는 일차 조건, 숙주의 집중이라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염병은 농업과 함께 시작된다.

이러한 인구집중은 도시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도시는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 주변의 생산지를 수탈하여 살아간다. 인구도 끊임없이 끌어들여야 살 수 있다. 도시는 확장되지 않으면 소멸하기 때문이다. 확장은 도시의 운명이다.[존 리더,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도시의 확장을 위한 전쟁은 인구의 이동을 강제한다. 이 과정에서 피난을 떠나든 먹고 살 것이 없어 떠나든 황금을 찾아 떠나든, 도시는 끊임없이 사람을 이동시킨다.[기 리샤르, <사람은 왜 옮겨 다니며 살았나>] 이로써 전염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인 숙주의 이동이라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이동의 근원적인 추진력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이윤추구다.

‘집중과 이동’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실현된다. 자본의 집중은 지역과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의 전쟁을 낳는다. 이동 역시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오늘날의 유통의 발달은 이런 자본이동의 전제이자 결과다. 도로의 확장과 정비, 비행기 등 대형 고속 유통 수단의 일반화 등이 이루어짐은 물론 그러한 유통을 위한 주소의 정비(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닌 자본이 유통하는 도로의 주소)와 도량형의 통일 역시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 하 의료체계는 이윤 창출 유통망으로 작용할 뿐

끝없이 집중되고 이동하는 자본에 따라 의료체계 역시 재편된다. 자본의 집중 결과 대형병원이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중소자본의 이익을 반영하여 의료전달체계가 도입되지만 그 본질은 편의점과 대형마트, 백화점의 관계와 같다. 의료전달체계는 결국 자본 일반의 이윤 창출을 위한 그물망이자 유통망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환자들의 이동 경로는 의료 부문에서 자본의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대의 의료자본이 집중된 삼성병원이 메르스 감염의 진원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중과 이동이라는 조건은 전염병을 확대하고 확산한 중요한 조건의 하나다. 그래서 노자는 인구가 적고 규모가 작은 나라, 개나 닭 울음소리가 들려도 서로 오가지 않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라는 관점이다. 오늘날 사람 유전자의 많은 부분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에서 생긴 것이다. 사람 자체가 바이러스를 비롯한 외부 물질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어떻게 보면 바이러스는 사람을 만드는데 기여한 ‘보이지 않는 창조주’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제니퍼 애커먼, <감기의 과학>]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각종 기생생물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일부이다. 아니 우리 몸 자체다. 우리 몸의 100조 개의 세포 중 90%는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기생생물에 대한 우리 몸 관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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