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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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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시작했던 그 때, 초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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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당이란

희망 같은 거죠. 동지들을 만나고 내가 원했던 ‘자본주의 깨부숴야 한다’가 단지 꿈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거라는 힘을 받았어요. 창당을 올해에서 내년으로 미룬 게 아쉬워요. 우리의 사회주의 정치를 현장에서 드러내는 노력이 늦춰졌다고 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추진위로 있는 것과 당을 띄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당을 띄우고서도 정치활동이 진척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일이겠죠. 재정을 비롯해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죠. 그렇지만 사회주의 정치를 현장에 드러내는 데 더 유리하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대중과의 교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지 오웰이 쓴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 “소책자에 글줄이나 쓰고, 마르크스를 술술 인용하면서, 우리는 너희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사회주의자를 비판하는 내용이 나와요. 근데 대중들이 우리를 보는 게 딱 그 정도 같다는 거죠. 운동권이 아닌 대중들을 만나면 한두 번 느끼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중을 많이 만나려고 해요. 현장에서 잘하는 거 하고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분들과 학습모임을 계획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죠. 바로 사회주의 이야기는 못하니까 어떻게 쉽게 다가갈지 다른 동지들하고 같이 고민하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고민이 있다

사안이 있을 때 우리 조직의 의견이 가장 올바른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는 게 아쉽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현대차 비정규직 8.18 합의 관련해서 논쟁이 많았는데 우리가 종합하지 못하고 지나갔잖아요. 우리 입장을 내지 못했고 정체성도 만들지 못했다는 거는 그만큼 우리한테 후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로 싸울게 있으면 싸우더라도 양보할게 있으면 또 양보해서 하나의 입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걸 못하면 당 띄우고 나서도 문제라고 보거든요.


동지들에게 한 마디

제가 결혼을 좀 일찍 한 편인데 말 그대로 무일푼으로 결혼을 했어요. 처음에 집을 구하는데,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원룸 월세도 어렵더라구요. 방 구하려고 아내랑 1~2주동안 정말 정신없이 돌아다녔어요. 전주에 원룸은 되게 많아요. “건물주는 저거 있다고 불로소득 버는데, 우리는 방 한 칸이 없어서 이 고생이다” “뭔가 잘못됐다 이거” 정말 화가 많이 났고, 그 때 사회주의 의식이 시작됐어요. 동지들도 각자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때의 순수했던 초심, 그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 앞으로 당 활동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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