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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공성 지키려는 노동자는 외면

청주시․의회, 행정권력 쥐고 정치놀음만


최은예┃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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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2일 청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처절한 여성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 있었다. 이 울부짖음은 청주시와 시의회뿐만 아니라 잘못 돌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공공병원 폐원’과 ‘60여 명 집단해고’라는 파국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개정안’이 시의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청주시는 올해 7월 법제처로부터 병원관련 조례 개정안 중 일부가 상위법에 저촉돼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통보 받았지만 이를 개정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의회 복지교육위는 이를 문제 삼아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그동안 시나 시의회에서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시의회는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문제가 된 조항을 수정해 지방자치법에 따라 본회의에 재상정하기로 다시 약속했지만, 바로 다음날 이를 뒤집고 조례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폐회했다.

세금으로 지은 공공병원이 문을 닫아 환자들이 쫓겨나다시피 병원을 옮겨가고,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돼 거리에서 생활한 지 5개월이 되어 가는데, 청주시의 핵심현안으로 꼽히는 병원 정상화가 청주시의 어처구니없는 행정실수와 청주시의회의 무책임한 태도로 또다시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자신들이 배 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보호해야 할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몇 달이라는 시간 동안 고작 불량한 구조튜브를 만들어 내미는 놈이나, 튜브 색깔이 규정과 다르니 공장으로 반품해 다시 만들어 보내면 구조에 나서겠다는 놈이나…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행정 권력과 정치인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민주노조 2년…포기하지 않는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함께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인 2013년 10월이다. 노예계약서로 근로계약을 맺은 뒤 “내 임금이 어떻게 계산되는지는 알게 해 달라”는 너무도 소박한 요구로 뭉치게 됐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2014년 4월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로 밝혀진 20여 건의 불법행위와 9억 원 가량의 체불임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노동자라는 말이 낯설고, 노동조합이 두려웠던 여성노동자들이 600여 일 가까운 싸움을 이어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의료공공성이다. 당초 1명의 간병사가 1개 병실 환자를 돌보고 있었는데, 1명의 간병사에게 3개의 병실 환자를 간병하라는 데 맞서 파업을 시작했다. 병원 구조상 벽이 있어 옆 병실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명의 간병사가 3개 병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환자 방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임금과 복지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안녕을 생각하고 지켜야 하는 병원노동자로서의 마음이 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600여 일 동안 투쟁하면서 사측의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측은 17년 동안 노동조합만 파괴하고 다녔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전체조합원의 3분의 1을 징계해고 하는 등 48건의 부당한 탄압을 일삼았고, 각종 민형사상 고소고발 사건은 폐원이 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올 3월 온갖 불법․편법을 자행하던 병원장이 병원 운영 포기를 선언한 뒤, 두 차례의 위수탁 공모가 진행됐다. 4월에 진행된 1차 공모에 지원한 곳은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5월에 진행된 2차 공모에 선정된 곳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지난 5월30일 전 조합원총회를 열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조합원 88.8%가 “병원이 폐원되고 장기투쟁이 되더라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고용승계 쟁취 투쟁을 하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조례개정안 통과는 병원정상화 첫걸음

청주시의 폐원 협박에 맞서 병원 정상화를 촉구하며 청주시청 앞 노숙농성에 돌입한 지 벌써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대로변 자동차 소음과 먼지, 잠자리까지 파고드는 들쥐와 벌레 등 버티기 힘든 악조건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하지만 함께하는 조합원들이 있고, 병원에서 만났던 환자와 보호자들을 생각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요즘 들어 병원에서 함께 했던 환자와 보호자들로부터 연락이 잦다. 다름이 아니라 “재개원이 언제쯤 가능하냐?” “빨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들이다. 청주시민인 ‘노동자, 환자, 보호자’는 간절히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의 재개원을 바라고 있는데, 직접적인 책임당사자인 청주시와 청주시의회는 반성과 책임은 고사하고 천하태평 귀를 닫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오는 10월21일 청주시의회 임시회가 예정돼있다. 관련 조례개정안이 상정돼 통과되기를 6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례개정안 통과가 병원 정상화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조례개정안 내용에는 시립병원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병원운영위원회 설치 등 투쟁의 산물이 일정정도 담겨졌다. 그러나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을 정상화하는 길은 지금까지의 투쟁 못지않게 더욱 강고한 투쟁이 필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결의하고 다짐한다. “끝까지 투쟁해서 환자 곁으로 돌아가자!” 뼛속 깊이 냉기가 엄습하는 농성장에서 겨울을 보내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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