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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노동자들 결의 믿고 한국으로

공장 문 열릴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릴 것


고동민┃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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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떠났다. 7년 동안 해보지 않은 투쟁이 없었다. 지부장 단식이 길어지는데 이제 쌍용차 대주주 마힌드라가 있는 인도에 원정투쟁이라도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 통역을 구하지도 못했고, 인도 내 우호적인 단체와 소통한 곳 하나 없이 떠나야 했다. 준비과정에서의 촉박함은 있었지만 그 곳이 어디든 진심은 알아줄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 하나로 5,600km를 날았다. 하지만 인도 뭄바이 공항에서 숙소까지 지나친 거리의 풍경은 내 절박함을 넘어선 것이었다. 우뚝 서 있는 건물 밑에 건물 폐자재로 얼기설기 지어 만든 판잣집이 쭉 늘어서 있었다. 도로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와 사람이 뒤엉켜서 가고, 문도 없는 전철에는 사람들이 문밖에 매달려 다녔다. 인도노동자들이 한 달 일해서 받는 최저임금은 대략 4,000루피, 한국 돈으로 8만 원가량인 이곳에서 다른 나라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이해 할 수 있을지, 나아가 연대할 것인지가 이 원정투쟁의 관건이었다.


악조건에서도 해고자들 절박함 알려내

먼저 쌍용차 해고자들의 투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하고 바로 마힌드라 본사 앞에서 농성과 선전전을 진행하고, 면담에 응하지 않으면 삭발, 3보1배, 단식투쟁까지…우리가 마음먹고 온 투쟁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집회신고를 하고 기자회견 실무준비를 하고 농성 때 결합 할 수 있는 단위들에 간담회를 제안했다. 돌아 온 대답은 비수 같았다. 인도는 기업 건물 앞에서 농성은커녕 집회신고 자체가 불허되어 있다고 했다. “관광비자로 온 주제에 바로 연행되든지 강제 출국 당할 것인데 무슨 투쟁을 하냐”며 한국과 인도는 투쟁 방식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선회 할 필요가 있었다.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고 또 물었다. 또한 우리에게 도움 될 만한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고 졸라댔다. 말도 안 통하는데 활짝 웃으며 질문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문전박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이후 그렇게 졸라서 만난 인도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투쟁계획을 먼저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인사를 하고 준비해간 영상부터 보여줬다. 그리고 선전물을 나눠주며 물었다. “우리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쌍용차 해고자들이 아닌 인도 노동자들이 주체로 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때서야 인도 노동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다른 노조에게도 보여주겠다며 연락을 해서 다른 단체와 간담회를 진행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렇게 의견을 묻고 연락처를 이어받으면서 원정투쟁 6일 만에 뭄바이 지역 대표자회의를 진행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말도 안통하고 피부색도 다른 한국에서 온 쌍용차 해고자들의 이야기를 인도노총과 정당 대표자들이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칼날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교섭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던데, 왜 인도까지 왔나?” “2009년 해고 된 일이면 2011년에 인수한 마힌드라는 관계없는 일 아니냐?” “쌍용차 해고자들이 복직하면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낀다” 국내 상황에 대해 모르면 하지 못할 질문들이 쏟아졌다. 알고 보니 대표자 회의에 참가한 거의 모든 단위가 마힌드라 그룹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참석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고 했다. 원정단장 김정욱동지가 이야기했다. “우리는 지난 7년간 돌아가신 정리해고 희생자들의 상주다. 우리는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싸워왔다. 교섭을 했지만 너무 지지부진하고 그 교섭 와중에 2명의 희생자가 늘었다. 또한 공장 안 노동자들과도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우리를 도와 달라,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삭발을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쌍용차 해고자들의 절박함을 알아주길 바랐다.


확신도 해결도 없는 귀국이라 아쉬움 남아

진심은 통했다. 뭄바이가 있는 마에스트라주 소속의 모든 정당과 노동조합이 공동명의로 마힌드라 그룹에 서한을 보냈다. “쌍용차 해고자들과의 면담에 응하지 않으면 공동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마힌드라 그룹과의 면담이 전격 이루어졌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요구사항인 해고자복직 시점 명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손배가압류 철회, 희생자 유가족 재단 설립에 대해 설명하고 마힌드라 그룹의 전향적인 결단을 요구했다. 또한 파엔 코엔카 쌍용차 이사회 의장은 입원중인 와중에도 면담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쌍용차 해고자들과 만나 “국내 노노사 교섭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지시하겠다”고 확언했다. 이에 인도 노조와 정당 대표자들은 3차 회의까지 거친 뒤 10월까지 국내 노노사교섭을 지켜보고 그때까지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쌍용차 해고자들과는 별개로 11월부터 마힌드라에 대한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곧이어 국내 노노사교섭이 진행됐고 쌍용차 경영진의 진전 있는 교섭을 약속했다.  

인도원정단에 대한 귀국 지침이 내려졌다. 노노사 교섭에 대한 확신도 크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는 애당초 다짐과는 다른 귀국이라 아쉬움은 남지만,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쌍용차 해고자 투쟁에 앞장서겠다는 인도노동자들의 결의를 믿기로 했다. 함께 인터내셔널가를 소리 높여 부른 인도의 밤을 우리는 믿기로 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고 또 두드릴 것이다. 더 넓고 더 깊은 연대로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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