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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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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10.15 02:13

민중직접혁명 추구, 폭력·테러 불사

허무주의·테러리즘과 동일하게 인식돼


김미화(노동자역사 한내)┃충북


아나키즘은 그리스어 아나르코anarchos에서 나온 말로, 없다an와 지배자arche라는 뜻의 합성어인데, 글자 그대로 “지배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나키즘은 어떻게 무정부주의로 불렸을까?

일본 제국주의는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을 제정했고, 제국헌법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권과 황실을 기축으로 봉건적 세습군주제를 부활시켰다. 명치정부가 헌법을 서둘러 제정한 것은 1874년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국회 개설을 촉구하며 ‘민선의원 설립 건백서’를 정부에 제출 한 후 전국으로 퍼진 자유민권운동을 차단하고, 민중이 정치의식에 눈뜨는 것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제국헌법의 확립에 따라 일본인 특유의 천황에 대한 가족주의 사상, 신성성의 사상, 상명하복의 획일주의,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성의 사상이 고착되어 갔다. 일본 사회의 이러한 분위기에서 아나키즘이란 용어는 1902년 동경제국대학 학생이던 게무야마 센타로의 책 <근세 무정부주의>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책은 제정 러시아의 나로드니키와 허무당의 혁명 활동, 역사, 서양의 아나키즘과 인터내셔널을 소개하고 있다. 게무야마는 아나키즘을 ‘지배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무정부주의’로 번역함으로써 단어 자체로 반국가적인 느낌과 폭력과 파괴, 무질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각인시켰다. 일본의 아나키즘은 시작부터 사상의 근원적 모색과 성격 규명 없이 책 속에서부터 오도된 낙인이 찍혀 허무주의나 테러리즘과 동일한 사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도 그대로 전파되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아나키즘은 폭력과 파괴, 무질서의 대명사로 자리 잡아 절대주의 천황제가 가장 죄악시하는 사상으로 인식되어 갔다.

 

11-아나키즘.jpg

중국에서 활동한 무정부주의 인사들 [출처 : 독립기념관]

 

일제하 혁명적 선구자로 나선 아나키스트들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한 민중직접혁명이란 무엇인가. 신채호는 “구시대의 혁명은 언제나 민중을 국가의 노예가 되게 하고, 특수지배세력만이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누가 어질고 폭력적인가, 누가 착하고 악한가에 따라 향배가 정해질 뿐 민중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중직접혁명은 민중이 민중자신을 위하여 직접 행동하는 혁명이다. 혁명을 위해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민중의 각오와 결의, 결단이다. 민중은 특정인물이나 영웅호걸이 민중을 결단하도록 지도해서 각오하고 결의하는 게 아니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의 불공평, 부자연, 불합리한 모순을 제거하는 투쟁에 떨쳐 일어나면서 집단적 각오와 결단이 생기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깨닫고 동시에 결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구적 이론과 경험으로 먼저 각오한 민중이 민중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자가 되어 앞장서 실천해야 민중직접혁명이 일어난다. 따라서 일제하의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적 선구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실천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된 조선반도 곳곳에서 민중들의 고통과 신음이 넘쳐나 조선 민중은 죽음 이외의 선택을 모색하고 있었다. ‘조선혁명선언’은 그 중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혁명의 길만이 남아있음을 깨달아 폭력혁명을 일으켜야한다고 주장한다. 폭력혁명이 일어났을 때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계속 전진하면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들의 폭력투쟁은 열렬하였지만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고, 3.1운동의 만세소리는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있었지만 폭력투쟁이 되지 못하여 실패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민중’과 ‘폭력’ 둘 중에 하나만 빠져도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당시 이천만 민중은 일치단결하여 폭력·파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다. 폭력(암살, 파괴, 폭동)은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고 민중은 혁명의 지휘부이기 때문이었다.    


암살·폭파 등 모든 수단 동원해 반일행동 실천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는 테러리스트인가? 테러의 사전적 의미는 “폭력을 사용하여 적이나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은 ‘테러’를 혁명수단으로 인식하여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의열단의 이론가였던 류자명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민중을 탄압·학살하는 상황에서 국가권력에 반대하는 것은 일제에 반대하는 것이며, 일제의 우두머리들을 암살하고 일제의 통치기관을 폭파하는 것은 반일애국행동이라고 했다. 아나키스트들은 목적만 정당하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수단은 정당하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민중직접혁명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테러’도 당연히 정당한 방법이라 여겼고, 설령 테러리스트로 불린다 해도 당당했던 것이다. 

 

[참고자료]

류자명 <한 혁명자의 회억록>

정창석 「절대주의 천황제와 아나키즘」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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