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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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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10.15 02:15
 

새로운 세계통상체제로 이행 가능성

이해득실 넘어 노동자민중에게 재앙


이종회┃공동대표


현재까지 한국은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이후 총 15개, 전 세계 50개가 넘는 국가와 FTA을 체결했다. 그 중 11건은 이미 발효됐고, 4건은 곧 발효된다. 김대중정부 이래 역대정권은 FTA를 체결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경제영토가 74%에 달하는 FTA 선도국가임을 정치적 치적으로 내세워왔다. 그런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이 체결되자 한국정부는 함께 하지 못한 회한을 내비치면서 산업별 이해득실 산수에 여념이 없다.

TPP 체결국가 12개 중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멕시코뿐인데도 TPP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박근혜정권의 지지율이 흔들릴 정도로 타격인 모양이다. 그 산수를 들여다보면, 일본의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2.5%의 관세를 적용받아 왔지만 80%의 부품에서 관세가 즉시 철폐된다. 특히 누적원산지 규정에 따라 일본 기업이 TPP 회원국에서 생산되는 값싼 부품을 사용해도 일본산으로 인정되는 무관세 혜택을 누리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한국 자동차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 속내는 최근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로 가뜩이나 힘든 한국 자동차산업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일 것이고, 이는 그동안 FTA를 통해 농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시장을 열어둔 자동차산업이 이제는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반면 베트남에 생산거점을 둔 한국 의류 및 섬유기업은 일본과의 경합도도 낮고 관세 철폐로 가격경쟁력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식시장에서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TPP가 타결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이는 일본 아베 수상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아시아·태평양에 자유와 번영의 해역을 이룩할”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드디어 개막했다”는 것이 그 요지다. 동북아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정치적 긴장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볼 때, 아베는 TPP 타결로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의 핵심 틀이 완성됐다는 정치적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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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통상규범 기준 설정에 긴장 높아질 것

TPP가 체결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무역질서, 즉 초국적 거대기업들의 착취와 수탈이 가능한 세계무역질서로의 전환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가 체결되고 출범한 WTO체제는 씨애틀 이후 칸쿤, 홍콩 등에서의 각료회의 저지에 나선 지구적 수준의 노동자 민중의 반대에 부딪히고 한편으로는 개도국의 반대에 따른 만장일치체제를 넘지 못해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 이번에 합의한 TPP는 이러한 현실을 넘어 DDA(도하개발어젠다)에서 인정한 지역무역협정을 활용하여 새로운 무역질서를 재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 소련권, 남미, 아프리카, 아랍 등에서 다양한 지역무역협정이 합의되거나 추진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역규정하고자 하는 지구적 수준에서의 무역을 좌우할 거대 통상협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 합의한 TPP와 미국과 EU가 추진 중인 범대서양경제동반자협정TTIP, 그리고 아세안과 한중일 등 아시아 16개국이 추진 중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그것이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GDP를 기준으로 TTIP는 45%, TPP는 40%, RCEP는 30%에 이르고, 모두 합치면 세계 GDP의 80%에 달한다. 인구대비로 본다면 RCEP만으로도 세계인구 대비 50%에 이른다. 이렇듯 거대 3대 무역협정이 모두 체결된다면 세계통상질서가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TTIP는 TPP보다 개방수준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통상규범의 기준을 정하기 위한 대립과 긴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각 나라들이 이들 지역무역협정에 부분적으로 교차되어 있어 통상규범을 강제할 가능성은 충분하고 이는 WTO체제의 우회적 재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TPP가 없으면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중국 같은 경쟁자가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TPP가 있다면 미국이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 21세기를 선도할 것”이라는 백악관 주례연설은 그 상징적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WTO체제 재편 지렛대 역할 할수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TPP는 생물의약품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이 강화되어 의약품접근권이 제한되고, 표현의 자유마저 제한되는 것은 물론 농업부문의 피폐를 가져올 조항까지 담고 있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 정도에 제한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은 관세를 포함한 서비스와 투자에 있어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어 시장을 확장함으로서 거대자본의 착취와 수탈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산업별 이해득실을 넘어 노동자 민중에게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TPP가 자유무역체제 재편의 지렛대 역할을 할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주자 클린턴은 ‘환율 조작 사항이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비준을 반대한 반면, 한국 상공회의소 대표 박용만은 자유무역의 확대가 산업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자본 간의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을 우려하면서 TPP 참여 제고를 언급한 것은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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