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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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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수(국제포럼 운영위원)┃기관지위원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1905)에서 정치조직으로서 전위당의 개념을 정립함과 동시에 그 조직화의 매개로서 전국적 정치신문을 강조했다. 100년도 넘은 옛날 얘기다. 1980년대 남한에서도 레닌 숭배자들은 전국적 정치신문을 통한 당 건설을 주장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전국적 정치신문도 없었고, 전국적 당도 없었다. 어설픈 대중정당이 등장해서 정치적 자살의 길로 달린 비극은 잘 알려져 있다.

21세기 초반인 현시점, 운동의 지형도 변했고 운동의 매체인 기관지 또는 정치신문의 위상도 변했다. 자칭 혁명좌파들은 왜 여전히 전국적 정치신문만 들먹이고 있는가? 좌파의 비판자들 또는 내부 비판자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 변화된 매체지형을 강조하며, 이 변화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좌파 또는 진보세력을 질타하고 있다.

혁명적 좌파의 인쇄매체는 변화된 운동지형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21세기 변화된 지형과 환경 속에서 새로운 좌파운동과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전선동의 수단으로서 기관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간단한 답은 없지만 20세기 좌파운동 매체의 풍부한 역사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이스크라>의 신화

불행히도 레닌의 주장과는 달리 <이스크라>는 당건설의 수단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당 분열의 도구가 됐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기관지로서 러시아 맑스주의ㆍ좌파운동의 신구세대 지도자들이 결합한 <이스크라> 편집부는 당 개념을 둘러싼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 투쟁의 장으로 변했고, 결국 레닌의 희망과 달리 <이스크라>는 실패였다.

2차 당대회 이후 사실상 항상 소수파인 볼셰비키는 <브폐료드>(Vperod : 전진)와 <프롤레타리>(Protetari)를 발행했고, 1차대전 이전부터 새로운 기관지가 된 <프라브다>(Pravda : 진실)는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 이후 노동자, 농민과 병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볼셰비키당의 기관지가 됐다. 소비에트 연방정부의 관지와 <이즈베스티야>(소식)와 더불어 러시아 공산당의 기관지로 60년간 지속됐다.

<이스크라>의 희망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궁극적으로 그 희망은 <프라브다>가 실현했고,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끄는 기관차가 됐다. 그러나 혁명의 왜곡 및 변질과 더불어 <프라브다>는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혁명적 기관지가 되기보다 소련공산당(CPSU) 관료주의의 선전수단으로 전락했음은 20세기 좌파운동의 비극의 한 측면이다.


20세기 좌파운동과 정치신문

1917년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분열ㆍ정립한 공산주의운동과 그 조직적 표현으로서 코민테른은 운동적으로는 실패였다. 노동자계급 또는 노동운동에서 사민주의의 지배를 넘어 공산주의운동을 다수로 전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전간기(1차 대전 종결에서 2차 대전 발발까지) 좌파운동의 비극은 1935~37년 에스파냐 내전에서 정점을 찍었다.

역설적으로 2차 대전과 소비에트 연방의 영향력 확대가 국제적으로 공산주의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에서 대중적 공산당이 좌파의 주력이 됐으며 노동조합운동의 다수파가 됐다. 그러나 중국혁명의 희망은 중소논쟁과 이후의 왜곡을 매개로 공산주의운동의 분열과 탈급진화로 이어지자, 공산주의운동 안팎에서 신좌파운동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신좌파운동은 조직적으로 실패했고, 궁극적으로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와 사민주의의 신자유주의로 전환 이후 역사적 구좌파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종말을 고했다.

이 역동적 좌파운동의 굴곡 속에서 좌파의 매체 역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찌라시 수준의 주간지에서 수십만 부를 발행하는 대규모 일간지까지 다양한 기관지는 노동자계급과 기층민중의 희망을 대변함과 동시에 좌파운동의 역량과 영향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척도)이기도 했다.


전후 공산주의운동의 성공 : 대중정당과 일간지

좌파의 언론매체 역시 소식지에서 대규모 일간지로의 성공적 발전을 경험했고, 프랑스 공산당(PCF) 기관지 <뤼마니테>와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루니타>는 대중적 일간지로서 대중정당으로서의 성공을 반영했다. 이에 비해 영국공산당CPGB 기관지 <모닝스타>는 소규모 정당임에도 일간지로 발행됐다.


● 프랑스 <뤼마니테>(L'humanite : 인류)

1904년 프랑스 사회당의 기관지로서 장 조레스가 창간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당의 기관지가 됐다. 2차 대전 후 레지스탕스 투쟁에 힘입어 프랑스 공산당이 대중정당으로 성장하면서 일간지로 발전했고, 최고 하루 50만부까지 발행했다. 현재는 공산당으로 독립해 발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프랑스 공산당의 쇠퇴로 현대에는 5만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2006년 52,800부).


● 이탈리아 <루니타>(L'Unita : 단결)

1924년 안토니오 그람시의 주도로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기관지로 창간됐다. 전후 일간지로 발행됐으며 1980년대 30만부 수준을 유지했다. 1990년 이후 공산당의 변신(사민주의화) 이후 발행부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결국 2만부 수준으로 발행부수가 폭락한 2014년 폐간했다. <루니타>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 150만 명이었음에 비하면 발행부수가 적었고, 이탈리아 공산주의운동의 자멸 이후 기관지도 그 운명을 같이 했다.


● 영국 <모닝스타>(Morning Star : 새벽별)

1930년 <일간 노동자>(Daily Worker)가 영국공산당CPGB 기관지로 창간됐다. 1945년 이후로 인민언론인쇄협회 소유의 일간지로 전환했고, 1947년 최대 12만2천부를 발행했다. 1966년 영국공산당의 분열로 이탈파 영국공산당(CPB)이 기관지를 장악하고 <모닝스타>로 제호를 변경했다. 소련 해체 이후 영국공산당이 해소하고 영국 공산주의운동이 사실상 사멸한 가운데, 노동조합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살아남아 현재 1만7천부를 발행한다.


68혁명ㆍ신좌파와 새로운 매체의 실험

전 지구적 68혁명으로 구좌파에 비판적인 신좌파가 등장했고, 공산당 안팎의 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등 다양한 신좌파 정파들의 투쟁의 정치가 활성화됐다. 신좌파운동은 공산당을 대체할 대안적 세력화에 실패했다. 제도권에 갇힌 구좌파에 맞서 가두투쟁과 비제도적 투쟁을 주도한 신좌파는 소규모 정파의 기관지 이외에도 대부분 주간이지만, 일간지 발행의 실험에 도전하기도 했다.


● 프랑스 <리베라시옹>(Libération : 해방)

68혁명의 여진 속에서 1973년 장폴 사르트르와 세르주 쥘리의 주도로 창간됐다. 68년 운동의 신좌파를 대변해, 협동조합 소유 아래 1980년대 초반까지 상업광고를 거부하는 한편, 전직원 동일임금 등 평등주의적 운영을 시도했다. 이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현실적 운영으로 선회했고, 1985년 일시 발행 중단, 2005년 내부 분규 등의 위기를 겪었지만 2010년대 1일 10만부를 발행하며 공산당의 <뤼마니테>와 차별적인 좌파적 경향을 대변한다.


● 이탈리아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 : 선언)

1969년 이탈리아 공산당에 비판적인 신좌파 지식인들 중심으로 월간지로 창간됐고, 1971년 일간지로 전환했다. 신좌파의 감수성을 반영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으로 유명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우경화 이후 재건공산당(PRC : Rifondazione)을 지지했다. 현재는 발행부수 감소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 독일 <타게스 차이퉁>(Die Tageszeitung : 일간신문, 별칭 taz)

1978년 독일 신좌파들의 주도로 창간돼, 협동조합 소유 아래 노동자 자주관리로 운영됐다. 1970년대 운동과 밀착했고, 사민당에 비판적이었고 녹색당을 지지했다. 현재 8만7천부를 발행한다. 이에 1947년 동독에서 공산청년동맹의 기관지로 140만부까지 발행했던 <융에벨트>(Junge Welt : 청년세계)는 1994년 독립적 좌파일간지로 재창간해 현재 1만7천부를 발행한다.


● 극좌정파의 일간지

신좌파 정파들은 대부분 주간지, 월간지의 형태로 신문과 잡지를 발행했다. 이들 중에서 일정한 조직력을 갖췄던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 그룹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과 이탈리아의 <로타 콘티누아>(Lotta Continua : 투쟁은 계속된다) 등은 1970년대 일간지를 발행했다. <로타 콘티누아>의 경우 1969년 주간지로 출발해 일간지로 전환했고 조직 자체는 1976년 해소했지만, 일간지는 1982년까지 발행을 계속했다.


21세기 좌파운동의 매체전략은 긴급한 과제

20세기 후반 냉전시대에 주요 매체의 탈기관지화 현상이 보편화됐다. 한편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 탈정치화로 부추겼고, 다른 한편에서 좌파정치ㆍ운동은 제도화됐다. 냉전질서 속에서 재편된 구조 아래서 당-노조 양날개론이 고착화되면서, 좌파운동은 선거정치와 정파적 가두투쟁으로 왜소화됐고, 그 이외의 영역, 특히 언론매체와 문화는 자본주의화ㆍ상품화의 영역에 포섭됐다.

비록 68혁명을 계기로 신좌파운동이 구좌파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의 전복을 시도하고 혁명의 개념을 문화혁명으로 확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일상의 자본주의적 상품화는 더더욱 가속화되고 급진적 반문화까지 자본주의적으로 포섭됐다. 따라서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등장한 좌파의 다양한 매체들도 운동의 퇴조와 함께 자본주의의 힘 앞에 무력화됐다.

현재 21세기 좌파운동은 아직 자본주의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또한 좌파운동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만큼이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평가를 통해 미래지향적 발전전략의 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 새로운 매체환경 속에서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운동의 변증법적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주의를 현실적 대안으로 구체화할 매체전략은 긴급한 과제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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