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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전략과 사회화┃① 사회화 운동의 역사적 사례들


전략 수립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정치운동의 첫 발을 내디딘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제18차 전국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 강령초안의 첫 구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 어느 시대에 못지않게 철저한 자본주의적 방식의 착취와 수탈로 고통 받고 있다. 인류가 지향해 온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자본으로부터 파괴되고 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폐업 등 노동자를 쓰다버리기 위한 갖가지 장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부문에서의 사회화를 현실의 투쟁과제로 해야만 한다. 잘나가던 조선산업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졸지에 백척간두로 내몰리고 있다. 조선산업의 국유화 말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있는 교육, 의료, 교통통신, 물 등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가 사회화라는 큰 이정표가 없는 한 방어될 수 있을까? 사회화라는 대전제가 빠진 속에서 복지는 자본이 노동자민중을 통제하기 위한 시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자본주의체제에서 만악의 축으로 행세하고 있는 저 거대한 금융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통제가 실현되지 않는 한 투쟁은 코끼리 다리만지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화전략은 곧 사회주의다. 그러나 ‘사회주의’ 네 글자만으로는 사회주의의 대중화가 요원할 것이다. 때문에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사회주의를 향한 구체적 실천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사회화전략이 수립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발을 내디딘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는 강령초안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의 여러 구성부분 중에서 주요한 내용이 될 사회화전략을 구체화하고, 대중투쟁을 펼쳐 나갈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변혁정치>는 이번호부터 사회화전략을 다루어 나가기로 한다. 그 첫 시작으로 지난 6월25일 사회화전략 토론회에서 발표된 ‘사회화에 대한 역사적 개괄과 전략적 과제’를 싣는다. 이 글은 향후 구체화할 사회화전략 수립을 위한 서론으로써 그간의 사회화에 대한 기본적 문제의식과 오늘날의 핵심방향 및 과제를 제출한다. 다음 호부터는 노동자계급정당 창당기획사업 중의 하나인 ‘노선과 전략 대토론회’ 사업에 발맞추어 사회화전략을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될 ‘사회화전략 총론’이 이어지고 그 후부터 10월말 경까지 각론으로 재벌과 국가기간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부문의 사회화전략, 금융부문의 사회화 전략, 재생산부문의 사회화 전략을 차례로 실을 예정이다.


‘사회화’ 정치

역사적 개괄과 전략적 과제


선지현┃충북


왜 다시 사회화인가

약간의 진폭은 있으나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 경제위기는 새로운 대안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물적 토대다.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고쳐 쓰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바꿔내든 현재의 구조를 극복하려는 대안이론과 크고 작은 실험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 속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 ‘사회화’이다. 2014년 볼리비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에보 모랄레스는 “선거는 사유화 대 국유화의 대립이었고, 국유화가 승리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남미에서는 많은 좌파정권들이 주요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 조치를 실행하면서 ‘사회주의적 개혁의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신자유주의 예찬론들은 이를 두고 대중영합주의라고 비판하고, 국유화 조치 이후에도 수십 년간 계속된 빈곤문제들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신자유주의 실패 속에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구소련의 사회화정책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공공부문의 파괴와 노동자민중들의 삶 후퇴 등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이행의 과정’으로써 사회화를 논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시키고 있지만 지난 역사 속에서 사회화의 실험은 결코 ‘성공적’이지 않다. 구소련을 비롯한 역사적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험은 체제의 몰락과 함께 실패로 귀결됐고 자본예찬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이야기했던 유럽의 좌파 정치세력들의 사회화 실험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전제로 실행됐고, 결과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살펴보자. 구소련에서 전개됐던 사회화는 국유화, 노동자통제, 민주적 중앙집중제 원칙 속에서 실행됐다. 그러나 1918년 이후 노동자통제는 기업장 단독책임제로 변화됐고, 공장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전시공산주의의 강력한 국유화와 통제정책, 그 물적 토대 위에서 실행된 네프정책은 소비에트에 의한 통제를 국가 통제로 바꾸는 것이었고, 민주적 계획 경제는 관료적·명령적 계획경제로 변질됐다. 국유화조치가 일정한 기간 동안 생산력의 발전을 이뤄냈을지는 몰라도 노동자통제와 민주적 계획경제의 변질은 이행의 물적 토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구소련은 더 이상은 1917년 혁명을 통해 실현코자 했던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시장사회주의, 유고의 자주관리

구소련 실험에 대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비판적 평가는 새로운 실험을 고민케 했다. 유고의 자주관리로 대표되는 시장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당시 유고공산당은 자주관리 정책에 대해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고 생산수단을 연합 직접 생산자의 통제 하에 둔다는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구현한 모델’이라고 평가하며 “국유화는 단지 사회주의의 첫 단계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의 사용과 그로부터 발생한 소득의 분배에 대해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61년부터 시작된 유고의 자주관리는 ‘기업활동 주요 내용에 대한 의사결정권한을 정부에서 기업으로 이전’하고 ‘개별기업의 노동자들은 노동자평의회를 조직해 기업영영에 관여해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대외시장도 개방하면서 일정하게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유고공산당의 주장(바람이었을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중앙정부의 개입과 통제는 지방정부의 개입과 통제로 대체됐고, 경영진은 노동자평의회로부터 독립했다. 기업마다 노동자간의 소득 격차가 발생했고 지역불균등과 민족적 경쟁을 낳았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자주관리’라는 지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는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기업의 집단적 소유자’로 전락했다. 자주관리 실험은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이윤동기와 시장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켰고, 그 결과는 세계자본주의로의 편입이었다.


소유문제를 우회했던 기금을 통한 사회화

사민주의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아 사회화 정책을 실행해 옮기는 경험들 중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도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 정책일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1920년 최초 집권이후 강령에 기초해 사회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사회화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이후 전개된 사회화 논쟁은 사민당의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포괄적 계획경제 지향’이라는 기존 기조를 ‘케인즈 정책에 기초한 복지국가’로 바꾸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위에 임노동자기금 실험이 있었다. 임노동자기금운동은 1960년대 말 정세적 변화(유럽에서의 신좌파 등장, 노동자들의 비공인파업, 학생운동 등)속에서 당내 급진파들과 노총LO의 적극적인 주도아래 시작됐다. 이 정책은 ‘주요기업들이 세전 이윤 최소 20%를 의무적으로 기금 전환’하는 것으로, 민주적·평화적으로 ‘주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인 통제를 제거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사회화 전략을 사실상 폐기한 사민당 주류의 계급타협에 기초한 복지국가주의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임노동자기금정책은 1976년 사민당에서 채택됐지만 후속논의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고, 7년이 지나서야 의회를 통과했지만 ‘7년 한시적 시행’에 그쳤다. 그마저도 부르주아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면서 아예 폐기됐다.

그 후 스웨덴은 1990년대 보수당 연합의 집권으로 ‘계급타협체제에 기초한 복지국가’에 대한 ‘체제 전환’이 선포되고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속화됐다. 이후 1994년 다시 사민당이 집권했지만 보수당의 기조는 계승됐다. 임노동자기금을 통한 사회화는 “고수익을 내는 (독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할 수 있도록 그들을 설득하기 위함이기도” 했던 것처럼 독점자본의 자본축적을 지원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정책으로, 애초부터 반자본주의 전략과 다른 것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자본과의 협력 전략은 결과적으로 자본의 권력을 강화시킴으로써 자본의 위기에는 그조차도 해체시켜버린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 외에도 1945년 영국 노동당의 국유화 실험,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종업원지주제 등 사회화의 실험으로 평가받는 사례들이 있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경영권에 대한 의결권한이 전혀 없는 채 노동시간 배분 문제를 건드리거나, 소유권의 일부양도조차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일환으로 실행되는 등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이행의 길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국유화 조치들 역시 자본주의를 합리화하는 정책으로써 자본주의적 사회화에 지나지 않는다.


반자본·사회화 전략 재구성

짧게나마 검토했던 사회화 실험들은 그 이행의 경로가 무엇이었던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정치세력과 노동자계급의 치열한 고민과 실천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역사 속에서 다양한 논의와 실험들을 짧은 지식을 앞세워 몇 줄로 평가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특히 한국사회 반자본·사회주의운동 세력들이 역사 속에서 전개된 운동처럼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을 해내고 있는가에서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사회화’의 정치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 과거를 보다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이를 통해 역사적 사회주의 국가(당)들의 실험과 실패, 유로꼼 및 사민주의 한계와 실패,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2008년 이후 세계자본주의 공황(위기)과 자본주의 4.0의 문제 등을 관통하는 반자본-사회화 전략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는 이행의 물적 토대를 만든다는 관점 아래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넘어 공공서비스에 대한 소유, 조절, 통제를 포함하는 사회화의 ‘상’을 마련하는 것이며, 자본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 문제를 정치화해냄으로써 반자본의 물적 토대를 갖추는 운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실험 속에서 제기된 오류와 한계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체제 변혁의 대안으로서 ‘사회화의 정치’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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