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장미 대선?

노동이 꽃보다 아름다운 나날은

언제쯤 올까.

 

조남덕충북

  장미대선w.jpg


아침이면 왁자지껄 분주해야 할 커피자판기 앞이 오늘은 한산하다.

아침마다 흡연실에서 펼쳐지는 세상 돌아가는 개똥철학도, 주식시장 살펴보는 스마트폰 집단 눈팅도 오늘은 한산하다 못해 심지어 고요하기까지 하다. 대신 오늘아침은 노동조합 사무실에 설치된 TV앞에 조합원들이 모였다. 모든 시선이 어제 선출된 새로운 대통령을 향해 있다. 그런데 누군가 씩씩거리며 불쑥 내뱉는다. “어떻게 20%가 넘냐”, “저런 걸 밀어주는 경상도 사람들은 또 뭐냐소위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때려잡겠다는 후보를 두고 여기저기서 일갈한다. “그런데 형님은 누구 찍었소?” 동생 녀석이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누구를 찍었느냐고 채근한다. “나는 투표 안했는데?”, “지지하는 후보가 없어서슬쩍 웃으면서 넘기려고 하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형님은 심상정이를 찍어야 하는 것 아니요?”, “그래도 노동이 당당한 나라. 진보정당 후보인데.” 그래서 물어보니 동생은 심상정을 지지하지만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기 싫어서 문재인을 찍었다고 한다. 딱히 드라마틱하지도 그렇다고 피 말리는 접전도 아닌 누구나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대선결과를 두고 이후에도 우리는 한참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협치와 통합 목소리에 노동의 설 자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기간은 짧았다. 그래도 동네 어귀마다 틀어대는 후보들의 시끄러운 유세차량은 언제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심심찮게 유력한 대선주자들의 자식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고, 웃기지도 않은 가십거리 기사가 판을 쳤다. 여느 대통령 선거 때와 사실 별다를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촛불대선에 촛불민심은 온데간데없었고, 저마다 내가 촛불의 적자요라며 자랑을 늘어놓기에만 급급했다. 심지어 아침 운동을 함께 하는 도청에 근무하는 형님은 이미 오래전 문재인 씨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해서 그의 공약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획안을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아 벌써 그렇게 준비를 하나요?”하고 물어보니 5년마다 반복되는 그야말로 귀찮은 일 중 하나라며 대수롭지 않다고 답했다.

문재인 씨의 공약에도 노동은 있다. ‘노동 존중이 새로운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라고도 했다. 그런데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노총의 6.30 파업을 두고 민주정부를 흔드는 것이라며 두고 보지 않겠다는 협박과 공갈이 벌써부터 난무한다. ‘나라를 나라답게세우는 데 여전히 우리들의 노동은 걸림돌일 뿐이고 선거 공약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할 수밖에 없다.

지난 겨울, 나는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얼은 손 호호 불어가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뭔가 거창한 정치적 요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특별한 대의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가진 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그리고 노동자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소외당하고 차별받고 빼앗기는 그런 불공정한 세상이 조금은 바뀌리라는 절박함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광장의 힘으로 박근혜가 국회에서 탄핵 의결되고 헌재에서 마침내 탄핵이 결정됐을 때, 우리는 아이처럼 정말 좋아하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조합원들과 탄핵을 자축하는 기념 떡도 나누어먹고 조금은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19대 대선. 그러나 대통령의 협치통합이라는 당선 인사말을 들으며, 이번 정권에서도 케케묵은 도돌이표가 여지없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장의 시계는 여전히 노조파괴가 시작되었던 20128월에 멈춰 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노조파괴를 저질렀던 범죄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19대 대선이 장미대선일지 모르지만,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혹독하고 추운 겨울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권리라는 투표로 현장의 권리가 저절로 보장될까?

새로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이 뭐야라고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한 질문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현장노동자들에게 던져봤다. 그것은 마치 로또 당첨되면 뭐할 거냐 라고 묻는 부질없는 물음이었다. 그랬더니 조합원 형님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뭘 할 수 있겠어?”, “소수노조에게도 파업할 수 있도록. 딱 그거 하나야.”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서는 한 모금 털어 넣더니 파업할 수 있는 권리가 절실하단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속한 일상에서 언제나 치열하게 싸운다. 그리고 우리들의 불안한 일상이 결코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일거에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단식하며 고공농성을 했던 노동자들. 평생 비정규직이라는 억울한 꼬리표를 감내해야 하는 노동자들. 노조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

저들은 이처럼 참담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여전히 눈 가리고 귀를 틀어막을 것이다. 기대 반 걱정 반.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이라는 장안의 화젯거리는 결국 우리 모두를 불안한 눈초리로 TV뉴스를 지켜보게 하고 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