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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6.01 20:48

우리는 바람에 지지 않는

들꽃으로 피었다


김수상*성주글쓰기모임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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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경험이란 말에 우리는 빵 터졌다. 특별한 상상을 한 것도 아닌데 웃음이 났다. 대공장 정규직으로 일했던 세 명을 빼고 나면 모두 노동조합은 첫경험이다. 첫경험은 설렌다.”

- <들꽃, 공단에 피다>, 에필로그 부분

 

맞다. 모든 은 두렵고 설렌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설렘으로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 22명이 그동안의 투쟁과정의 이야기를 모아서 책을 냈다. 어떤 부분을 읽을 땐 웃다가 어떤 부분을 읽을 때는 울컥거렸다. 다 읽고 나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폭압을 견디는 것도 사랑이고 폭압을 이기는 것도 사랑이다.

 

구미공단에 들꽃이 흐드러질 때까지, 맨 처음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었다. 우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구미공단에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하나도 없었다. 금강화섬 투쟁을 할 때에는 정규직이었지만,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공단에 비정규직은 점점 늘어나고 생산 현장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예전에는 천만노동자 총단결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지금은 비정규직만 천만이 넘는다. 비정규직 투쟁이 살아나야 전체 운동이 살아난다고 나는 확신했다.” (차헌호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결성되기까지 차헌호 지회장의 노력은 대단했다. 그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을 조합원들이 믿어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투쟁을 지속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차 지회장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어려운 처지를 이렇게 토로한다. “천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엄호해야할 노동조합 운동은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었다.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노조 운동은 먹을 게 많아지고, 지킬 게 많아지면서 계급의식과 투쟁정신은 쪼그라들었다. 비정규직이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금속노조에 문을 두드려도 가입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화되면서 비정규직의 처지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노동운동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편가름이 존재하는 게 현실인 셈이다. 이런 이중의 억압구조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은 눈물겨운 일이다. 그러나 아사히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한다.

 

나는 결국 함께하기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여태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과 함께하는 게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겹다 해도 어려움을 돌파할 무기 하나쯤은 마련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조합원 안진석)

 

전지구적 세계화는 타자가 실종된 시대다. 타자가 실종된 시대는 사랑의 대상이 사라진 시대다. 이기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타자성을 확보하고 사랑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운동은 이렇게 눈앞에서 기적을 보여준다.

 

정의 따위 없는 법률가들의 지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법이라는 테두리에 갇히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동력을 스스로 잃어버리게 될 것 같다. 분명히 법은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서가 아닌, 모두 다 같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 법 때문에 너무 힘들고 지쳐만 간다.” (조합원 민동기)

 

자본주의에서의 법의 한계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깨닫는가 하면,

 

딸이 고2였던 작년,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며칠을 조르길래 학원 등록을 해주려고 학원 앞에서 만난 딸에게 니 진짜 할 끼가?’하며 몇 번을 되물었다. 곧 고3이 되는 딸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그것도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 말이 서운했는지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며칠 더 생각하겠다며 등록을 안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딸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등록시켜 줄 걸, 후회가 들었다. 딸아이에게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아빠가 아무 소리 안 하고 시켜준다고 약속하고, 이틀 뒤에 학원 얘기가 나와서 바로 등록을 해줬다. 학원비 첫 달은 내주었는데 둘째 달부터는 딸이 스스로 등록을 했다. , 일요일에 뷔페에서 친구랑 같이 연회장 정리하는 알바를 해서 학원비를 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딸이 시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너무 컸다.” (조합원 허상원)

 

생활의 어려움으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커지기도 한다. 나아가 이런 대목에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야 만다.

 

설날이 지나고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딸이 아빠, 돈 있나?’ 묻는 것이다. ‘?’ 하고 물으니, ‘그냥, 내 용돈 좀 줄라고. 아빠 돈 없잖아...세뱃돈 받은 거 있는데해서, 어이없이 웃으면서 됐다 마했다. 아빠와 딸이 반대가 돼야 하는데, 서글프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조합원 박성철)

 

이밖에도 조합원들은 어머니 같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와 연대를 하며 울산 민주노총의 형식적인 연대에 분노하기도 하고(조합원 이명재) 회사의 회유와 협박을 동지애로 이겨내기도 한다. (조합원 임종섭) 투쟁사업단 공동투쟁을 하다가 연행되기도 하고 후원주점을 열어 눈물겨운 생계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 사람들에겐 모든 게 투쟁이다. 생활도 사랑도 투쟁이다. 밥을 하는 사람은 밥으로 투쟁을 하고 이발하는 사람은 이발봉사로 투쟁을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밥까지 차별 당해봐서 밥을 하는 사람은 밥으로 투쟁을 한다.

 

밥이 너무 형편없어서 매일 라면을 준비해 놓았다가 밥에 라면을 말아 먹거나 라면이 없는 날은 그냥 맹물에 말아 먹어야 했다. 밥 때문에 불만이 엄청 많았다. 이게 사람 밥인지 개밥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많았다. 배가 고프니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조합원 최진석)

 

촛불 혁명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기대가 만발이다. 얼마 전 광화문 전광판 위에 스스로 하늘 감옥을 짓고 27일 동안 고공 농성을 한 여섯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새 정부는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촛불의 힘은 대단했다. 그 촛불의 선봉에는 우리가 있었다. 노동자가 선봉에 섰다. 박근혜가 쫓겨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 오히려 대선 후보들 밥상만 차려준 꼴이다. 대선 주자 어느 누구도 노동 관련 공약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쫓겨나는 현실을 저들은 외면하고 있다.” (대의원 오수일)

 

고공 단식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병원에 입원 중인 오수일 대의원의 뼈아픈 말이다. 그렇지만 아사히 들꽃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 패악의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고 사랑의 꽃씨를 심을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자,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알기 때문이다. 믿을 건 자신들의 사랑과 연대밖에 없으며 사랑으로 투쟁할 때, 저들도 비로소 사랑의 연대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문민정부의 5년 임기 동안 사랑의 들꽃 부대가 우리나라 공장의 담벼락을 다 뒤덮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 들꽃 부대원들의 아픈 고백록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의 뜨거운 국물을 두 손으로 받아내며 사랑으로 싸우는 아름다운 고백록이다. 많이 사서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 김수상 시인, 1966년 경북 의성 출생,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삶창), <편향의 곧은 나무>(한티재)가 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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