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11표제의 함정을 경계해야

 

김태연투쟁연대위원장

 

한국 자본주의체제에서 재벌문제를 그대로 둔 채 노동자민중의 삶은 변화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정권 퇴진운동 과정에서 재벌총수 구속투쟁의 전면에 서 온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재벌체제해체를 방향으로 제시했다. ‘재벌체제해체재벌해체재벌개혁과는 그 의미가 질적으로 다르다. 생산과정에서 분업과 협업이 유기적으로 연관관계를 맺는 기업집단은 생산력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생산과정과 직접적 연관관계가 없는 문어발식 집중은 해체되어 재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업집단을 무조건 해체해야 한다는 재벌해체는 그 해답이 될 수 없다. 반면, 재벌개혁은 기업집단인 재벌을 유지하면서 그 폐해를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이같은 재벌개혁 논리는 총수일족의 사적 소유와 시장질서 구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재벌해체나 재벌개혁과는 달리 재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벌기업의 사회화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w3.jpg


공정한 시장경제 앞세운 문재인정부

문재인정부는 그간 재벌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던 장하성교수와 김상조교수를 각각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포진시켰다. 장하성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한국인들이 바라는 자본주의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절차와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와 경제개혁센터 등에서 소액주주운동을 비롯해 재벌개혁운동을 주도해온 인물들이다. 이들은 재벌기업 전체 지분의 3%도 안 되는 지분으로 총수일족이 재벌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를 개혁한다면서 순환출자금지, 소액주주의 의결권 보장 등의 운동을 펼쳐 왔다. 이런 까닭에 이들의 재벌개혁운동이 결국 주주자본주의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받아 온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장하성교수는 주주자본주의도, 이해관계인 자본주의도 아닌 한국적 자본주의라며 자신의 입장을 두둔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장하성교수와 김상조교수를 내세운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은 1(1) 1표제 원리에 따른 시장 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 요건강화, 소액주주의 의결권 강화(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등을 통해 시장의 공정한 거래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현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축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민주화투쟁의 결과로 87년 개정헌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1192)이 신설됐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 조항에 의거해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금지 등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제한하는 시도들이 진행되었으나, 재벌은 독점적 지배구조를 온존한 채 97IMF외환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재벌개혁이 대두되었지만,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면서 재벌규제는 오히려 완화되었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불평등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같은 배경에서 다시 제기된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을 골자로 하고 있다. ‘11표제라는 근본적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장하성과 김상조로 대표되는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사람은 재벌개혁을 인위적으로 강제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재벌개혁 여론조차 광장투쟁을 통해 형성된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압력에 기반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을 배제한 채 어떻게 재벌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정부 시절 장하성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재벌 문제의 근원적 출발점인 소유 구조의 개선 없이 공정거래 정책이나 동반성장위원회 활동과 같은 곁가지 정책만으로는 지금의 재벌 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구조적, 제도적 개혁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의 행정조치로 할 수 있는 재벌개혁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상조교수의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운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이 미리부터 그 기준과 수위를 정하고 간다는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착취와 수탈로 완성된 재벌체제를 허물어야

장하성교수를 비롯하여 문재인정부는 재벌개혁의 궁극적 목표가 불평등 해소라고 주장한다. 이는 재벌개혁이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소득 불평등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20131,410조 원이었던 10대 그룹의 자산 총액은 2017년에 1,643조 원으로 증가했다. 4년 만에 233조 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재벌기업들의 이윤을 사내유보로 쌓은 결과이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 노동자민중의 임금과 소득 불평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장하성교수가 초과 내부유보세를 제기한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가 재벌 사내유보금 문제를 재벌개혁의 주요 과제로 다루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많게는 10차에 달하는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비정규직-저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착취-수탈 구조는 한국 재벌체제의 핵심이다. 재벌개혁은 이 문제를 비껴나갈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 문재인정부가 노동내부의 문제로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본가 내부의 11표제와 노동자 내부의 임금 양보가 교묘하게 조합된 모습으로 재벌개혁이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