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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쌓아올린 재앙이

주택시장에서 내몰린 사람들을 덮치다

 

정주희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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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14일(현지시각) 런던의 24층 아파트인 그렌펠 타워에 화재가 발생해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614일 새벽 영국 런던 켄싱턴의 24층짜리 공공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화재가 발생해 현재까지 적어도 79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특히 보수당 정부가 펼쳐온 재정긴축과 사회보장 축소로 서민 주거권이 날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까지 피할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그렌펠 타워에는 왜 서민과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나

그렌펠 타워는 1974년 완공해 2016년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한 120가구중 대다수는 서민들과 이민자들이었다. 영국에서 공공임대주택은 유서 깊은 주거형태다. 세계대전을 거치고 전쟁에 동원된 노동계급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비롯한 사회복지정책을 전격 확충했다. 특히 양당 체제의 일원으로 부상한 노동당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로 반 세기 동안 재생산 영역에서 국가 역할을 대폭 확대할 것을 공약해왔다. 주택을 구매할 자금이 없는 서민이 임대 형태로 안정적인 주거권을 누릴 수 있게끔 하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무상의료, 무상의무교육 확대와 함께 노동당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정책이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의 골간은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가 1980년대부터 공공임대주택 구매권(Right-to-Buy) 개념을 도입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서민이 자기 주택을 아예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일견 주택소유 기회를 허용하는 친서민 정책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주택 소유권 도입은 공공주택으로 영위할 수 있는 주거권을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시킨 것과 마찬가지였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국가 책임의 연금, 보험제도를 약화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이 주택을 구매하여 개인이 자기 자산을 확보함으로써 노후와 질병에 대비해야 하는 체계를 재등장시켰다. 주거권은 공공적 형태로 누릴 수 있는 권리에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대과제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임금 수준으로는 주택을 구매할 수 없으니 빚을 내야하고, 자금동원력이 없으면 불가항력으로 값싼 저질의 주거환경에 내몰려야 했다. 보편적인 주거형태가 변화하면서 자산규모와 소득수준에 따라 주택의 질이 층층이 구분되어갔고 나아가 주거권을 상실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국가 책임 하에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주택 공급은 건설사들의 몫이 되었다. 주택공급의 시장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주택건설사들은 60만 호가 넘는 신규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를 보유하고서도 주택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 반면 홈리스 규모는 2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변형된 민영화가 위험을 가중하다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1997년 집권했을 때 그들은 주거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효율적인 분배를 단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방법으로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관리를 정부와 지방정부가 아닌 별도의 비영리회사를 설립하여 맡기기로 했다. 그렌펠 타워 역시 마찬가지인데, 켄싱턴-첼시 임대관리회사(KCTMO)라는 잉글랜드 지방 최대의 공공임대주택 관리기구 관할의 아파트다. 정부가 적정주거기준(Decent Homes Standard)을 설정하여 임대주택의 질을 높이는 대신, 그 임무를 임대관리회사 형태로 수행할 것을 독려했다. 정부는 임대주택 관리구조에 효율성을 기하며 주거의 질도 높이겠다고 선전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임대관리회사들은 이왕이면 일정한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지역의 자산을 매입하기를 원했고, 이러한 기조의 매입정책은 특정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에 기름을 부었다. 또한 주택시장 시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했기 때문에 빈 주택이 있더라도 이를 싼 값에 공급하기보다 비워두기를 택했다. 회사가 적자를 낼 수는 없으니 일정한 수익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시장 질서에 복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렌펠 타워 참사의 희생자가 대부분 서민, 이민자였던 까닭은 주택 구매력이 없는 계층이 임대주택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무리해서라도 주택을 구매하여 임대주택 시장에서 탈출했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임대주택 시장에 남자 가뜩이나 수익을 내기 어려운 공공임대주택 관리회사는 본연의 업무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임대료를 극대화해야 했다. 그렌펠 타워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소방경보도 작동하지 않았다. 15분 만에 전층으로 화재가 확산될 정도로 위험한 외장재를 사용했다.

몇몇 국내 언론들은 그렌펠 타워 화재를 두고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인재라고 평했지만, 영국은 킹스크로스역 화재와 같은 사고를 몇 차례 경험하며 체계적인 방재체계를 구축해온 나라다. 재원이나 매뉴얼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무너뜨린 방재체계가 공공임대주택을 덮친 것이다. 심지어 정부는 이미 2009년 런던 라카날하우스에서 6명이 사망하는 노후주택 화재를 겪고도 방재대책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또한 그렌펠타워 인근 세 개의 소방지서가 폐쇄되는 등 긴축정책이 민중의 안전을 슬금슬금 긴축해오고 있었던 데서 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영국 민중이 보수당 정권이 야기한 참사라고 분노를 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적인 소유를 늘리고 관리를 시장에 맡겨야 실현할 수 있다던 효율성 논리는, 결국 서민과 이민자를 한 건물에 몰아넣고 위험도 집중시켜 계급에 따라 죽음을 갈라놓는 효율성을 의미했음이 다시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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