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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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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의 정신,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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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기를 맞고 있다. 노동자대투쟁은 오랜 기간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폭력적 노동통제속에서 고통 받은 노동자들이 현장으로부터 일어난 자주적이며 자발적 투쟁이었다.

노동자대투쟁은 전 지역·전 산업에 걸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노동자 대중투쟁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투쟁이 노동법의 울타리를 넘어 선파업 후협상이라는 법을 무시한 투쟁이었으며, 그 격렬함에 있어서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투쟁이었다. 노동자대투쟁은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이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진 노동자들의 대중적, 계급적 진출이었다. 이 투쟁은 3개월 만에 끝난 투쟁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을 예고하는 장엄한 역사이며 출발이었다. 87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전국적으로 투쟁의 파고를 높였으며,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는 연인원 2백만 명, 파업 건수는 3,341건으로 하루 평균 44건의 파업이 발생했다. 특히 8월에만 2,552, 하루 평균 83건의 파업이 발생했고 8월 중순에는 하루 평균 300여개 사업장에서 파업농성투쟁이 벌어졌다. 8월 한 달 동안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122만 명으로 당시 1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333만 명의 37%가 참가하며 전국에 투쟁의 불길을 지핀 투쟁이었다.

 

가두투쟁 양상은 노동자연대와 민중연대의 서곡인 동시에 노동정치

1987년 여름, 전국을 뒤흔든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은 그동안 한낱 기계의 부속품으로밖에 취급되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었고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민주노조의 부활이었다. 노동자대투쟁은 민주노조를 구축했고, 민주노조는 천만 노동자의 희망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을 뒤덮은 투쟁 과정은 민주성과 자주성, 투쟁성과 계급성 그리고 변혁지향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대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이라는 생존권 투쟁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인 노동조합 결성, 어용노조 민주화를 포함한 노동3권을 쟁취해야 한다고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익갈등의 측면을 넘어서 노·자간 역학관계를 재편하는 것이었다. 회사에 대한 요구를 내걸고 공장의 담을 넘은 가두투쟁 양상은 노동자연대와 민중연대의 서곡인 동시에 노동정치였다. 그 상이한 투쟁의 중요성은 노동자투쟁이 기존의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투쟁노선과 함께 노동해방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변화시킨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노동자 조직률이 15%선에 머물던 상태를 22%로 끌어올린 조직적 성과는 투쟁이 조직의 지름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아가 노동운동의 자생적인 동력을 복원하여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어용 한국노총에 의해 지배되어오던 노사관계를 변화시켰고, 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이나 재야세력, 그리고 학생운동이 주도해오던 사회운동에서 노동운동이 주도하는 변혁운동으로 변화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전국을 뒤흔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영화나 책이 아닌 실제로 목격하며 민주노조세력과 활동가들은 감동으로 대투쟁을 맞았다. 어떤 사람들은 혁명은 미래의 꿈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활동가들은 정치의식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목적으로 하고 투쟁현장으로 달려갔다. 투쟁현장에서는 각 그룹을 통해 지역의 투쟁 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자계급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평소와 달리 투쟁공간에서는 구조적 모순과 체제에 대한 이해가 빠르게 체득되었고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경계도 분명해졌다. 여기에 자본주의체제의 본질과 자본가들이 주장하는 가족의 개념은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나아가 87년의 정치세력들은 노동자 삶을 위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한줌 독점자본의 시녀임을 깨닫게 되었다. 노동자대투쟁에 대한 정치집단들의 입장을 노동자의 눈으로 비판하며, 민주노조의 당위성과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노동자가 누구이며,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통해 노동정치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나아가 노동자가 앞장서서 노동해방 쟁취하자는 외침을 통해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정당(진보정당)의 노선은 변혁노선이라는 결론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우리들 노동자에게 내부도 외부도 없다. 오직 단결된 하나의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이 경과하면서 많은 지형이 달라졌고 자본의 전략도 달라졌다. 그러나 자본의 본질과 노동자계급의 삶의 처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달라진 부분들도 있다.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는 물론, 정규노동자와 불안정노동자의 감정적 골이 깊게 패여 있는데 그 골을 어떻게 메울지 암담한 지경이다. ‘오늘 우리의 투쟁이 내일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투쟁성은 약화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투쟁이 매번 승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패배만 있을 수는 더더욱 없다. 비록 패배할지라도 성과를 챙기는 것이 노동운동이며 노동자투쟁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이념공세와 외부세력 개입주장에 대해 우리들 노동자에게 내부도 외부도 없다. 오직 단결된 하나의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창원 ()통일 노동자들의 외침은 흩어진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지난 30년 동안 노동자들은 구속, 수배,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 노동운동이 부러워하는 자주성과 민주성, 전투성과 계급성 그리고 노동해방으로 대체되었던 변혁지향의 희망을 안고 열심히 싸워 왔다. 그럼에도, 왜 오늘날 우리의 노동운동은 위기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조합원대중이 이해 못하는 투쟁과제를 지침으로 조직한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민주성의 앙상함이다. 노동자계급의 민주성은 절차적 민주성이 아니라 대중이 함께 토론하고 결의를 모으는 과정이다. 대중적 결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투쟁은 승리는커녕 성과조차 모으기 어렵다.

 

당면한 투쟁과제는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실업노동자가 늘어나고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노동현장에서 각종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의 90%가 미조직 상태로 결사의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 비정규노동, 불안정노동의 과제를 일자리기금이나 임금양보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노동운동의 태도가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민주노총이 확정한 사회적 파업의 요구(최저임금1만원, 비정규직철폐, 사회공공성강화, 노조 할 권리 쟁취)를 걸고 당면한 파업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투쟁을 통해 현장토론을 활성화시켜 내고,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인 자주성과 민주성, 계급성과 투쟁성 그리고 노동해방을 다시금 되살려 내는 것이 시급하다. 조합원의 결의가 뒷받침되는 투쟁은 승리는 아닐지라도 성과를 축적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문제로 사회적 파업을 성사시키는 것은 계급성을 복원시키는 과정인 동시에 노동운동의 전략이며 당면한 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 나아가 30년 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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