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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1)

 

김혜진비정규교안작성팀

 

고통은 쉽게 수치화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비정규직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수치화된 임금차별로만 설명될 수 없다. 차별은 매우 전방위적이다. 작업복 색깔을 다르게 하거나 주차공간을 주지 않거나, 낡은 안전화를 주거나, 더 위험한 업무에 배치하거나, 불필요하고 단순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거나, 때로는 인격적 모욕을 가하는 등 회사 안의 시간과 공간 전체에서 차별이 이루어진다. ‘차별은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은 특정한 노동자에게만 권리를 주고 다른 노동자들은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를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차별철폐’,  동일한 임금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의 위계화

현장의 일상적인 차별은 노동자들을 갈라서 위계화한다. 위계 사다리의 위쪽에 있는 노동자들은 회사와 자신을 일체화하며 허구적인 우월감을 갖게 된다. 위계 사다리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차별 때문에 무기력해진다. 차별은 하위 위계의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사와 일체감을 갖기도 어렵다. 노동자들이 차별에 순응하는 것은 계약해지의 위협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하찮게 취급받는다는 것 때문에 자신감을 잃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될 때 차별받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회사를 떠난다.

기업들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해왔다. ‘생계부양자 논리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던 것처럼,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든다. 자동차 회사에서 왼쪽 바퀴를 정규직이 만들고 오른쪽 바퀴를 비정규직이 만드는데도 임금이 절반 밖에 안 되면 모두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규직이 차를 조립하고 비정규직이 부품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업무를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는 일이 다르므로 차별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을 하는 사람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차별이 있어도 된다는 인식을 암암리에 확산하는 것이다.

차별은 노동자가 권리를 빼앗긴 것이 그 노동자의 책임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기업들은 네가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여기에 시험성적이나 성별, 연령 등을 결부시켜 낮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재생산한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내가 적은 임금을 받거나 차별을 당하는 것은 내가 못나서라고 생각하며 차별의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차별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누구나 누릴 보편적 권리를 승자의 전리품으로 여겨, 능력 있거나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는 뜻이다. 가치가 전도되는 일이다.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논리 중에 시험을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있다. 본래 고용의 원칙이 정규직이며 비정규직 고용이 편법이고 왜곡된 것이라는 사실은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정상 고용이며, ‘정규직은 승자가 누리는 권리라고 인식하는 셈이다. 그야말로 철저한 신자유주의 논리이다. 높은 직무는 높은 임금을, 낮은 직무는 낮은 임금을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 직무기준이 대단히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필요한 일인가 아닌가가 중요할 뿐임을 잊고 있다.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논리는 당연한가?

끝없는 경쟁과 승자독식구조가 모든 이들을 짓누르는 사회 분위기가 회사 안에서의 차별도 정당화한다. 모든 업무는 연관되어 있고 서로 협동할 때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지금은 개별화된 실적 평가로 관계를 왜곡한다. 직무에 더해 고용구조와 성별, 연령, 학력에 따른 차별이 연계되면, 사람의 인격에 대한 차별로도 이어진다. ‘공부를 못했으니까,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니까, ‘어리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퍼지고, 경쟁에 찌든 개인들은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기업들이 위계만 만들어놓으면,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고, 무시하고, 서로 빼앗으면서, 노동자 권리 침해를 수용하니, 이런 위계화야말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초과착취의 수단이다.

그러니 차별철폐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만 말해서는 안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이제 다른 노동 다른 임금으로 해석되어 직무에 따른 임금격차를 정당화한다. 설령 임금이 같더라도 현장에서 계속되는 배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낙인과 인격 무시로 인해 여전히 비정규직은 주눅 들고 권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한다면서 차별철폐를 이야기하는 논리가 공허한 이유이다. 정말로 차별을 없애고자 한다면 이런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는 하나이며, 모든 노동자에게는 권리가 있음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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